▶ 고속철도 운행시 탄소배출량 비행기의 77분의 1 수준 불과
▶ 각국 차세대 교통수단으로 주목
▶ 불, 2시간 반 이내 항공 취항 금지
▶ 독은 국내선 항공 전면 폐지 예정
▶ 우크라이나 사태에 ‘철도사업’ 타격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는 군사 안보 분야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커다란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전 세계 원유 및 천연가스 가격은 고공행진을 하고 있으며, 7월 이후부터는 그간 러시아, 우크라이나산 곡물에 의존했던 국가들은 식량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여기에 국한하지 않는다. 많은 국가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해 왔던 미래 신산업 육성 전략마저 변경해야 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중심으로 한 철도산업의 변경도 놓여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철도산업이 급부상하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철도가 친환경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 주요국가에서 탄소중립 선언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위한 대안으로 각국은 철도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계획을 대거 수립 중이었다.
기차는 비행기에 비해 탄소배출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다. 동일 운행 거리를 비교할 때, 고속철도가 배출하는 탄소량은 비행기의 탄소배출량의 77분의 1에 불과하다. 철도는 승용차에 비해서도 친환경 교통수단이다. 철도는 에너지 소비량이 승용차의 6분의 1,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9분의 1밖에 안된다.
철도가 친환경 교통수단이라는 점에 가장 먼저 주목한 곳은 유럽이다. 현재 유럽 각 국가들은 비행기 대신 기차 이용을 적극 권고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고속철도로 2시간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지역의 경우에는 아에 국내선 비행기 취항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해당 법안은 초기에는 ‘편도 4시간 이내 거리’의 비행기 취항을 전면 금지하는 방식으로 추진되다가, 항공업계 반발로 범위를 2시간 30분 이내로 축소했다. 독일은 더 강경한 입장이다. 2035년까지 국내선 항공편을 모두 없애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단순히 탄소제로 사회를 구현한다는 정치적 메시지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기술력이 뒷받침되어 실현 가능한 목표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는다.
실제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는 태양광과 지열발전으로만 운행하는 케르펜-호렘 철도역이 있다. 낮에는 자연광으로 채광하고, 화장실은 빗물을 재사용한다. 오스트리아 역시 직선거리 약 250㎞ 거리인 수도 빈과 서부지역 잘츠부르크 사이 항공편을 폐지하고 해당 노선에 고속철도를 증편했다.
구시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진 노면전차를 바라보는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현재 세계 각지 지자체들이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노면전차를 이용하거나 확대하려는 추세다. 우리나라 노면전차는 1899년부터 약 60년 동안 이동수단으로 이용됐지만, 자동차 등 대체 교통수단이 등장하면서 1968년 11월 운영이 중단됐다. 최근에 교통혼잡을 해소할 수 있는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다시 노면전차가 주목받으면서 이를 도입하려는 지방자치단체가 늘어나는 추세다.
기차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과거에 확보한 기술력을 재활용하는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미국의 터널굴착회사 ‘보링컴퍼니’는 연내 하이퍼루프 주행시험을 추진하고 있다. 하이퍼루프(hyperloop)란 대형 진공튜브에 자기부상 캡슐을 시속 1,000㎞ 이상의 초고속으로 운행하는 교통수단이다. 상업용 여객기보다 빠른 신개념 초고속 교통수단인 것이다. 하이퍼루프 역시 친환경적이다. 항공기 대비 에너지 사용량 8%, 고속도로 대비 건설비용 50% 수준이다. 하이퍼루프는 기존 철도 구축 사업에 비해서도 저렴하다. 미국 정부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연결하는 고속철도를 만들려면 1,000억 달러(약 111조 원)가 필요하지만, 하이퍼루프로 건설하면 60억~100억 달러(약 6조6,000억~11조1,000억 원)로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기존 철도 구축 비용의 10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철도산업의 활성화 요인은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대폭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것은 러시아가 철도가 운행될 수 있는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갖고 있는 국가이자, 전 세계 국제철도표준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세계 전체 면적의 8분의 1에 해당한다. 또한 러시아는 혹한기 기후조건으로 철도를 이용한 인적, 물적 수송이 크게 발달한 국가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지역에 대한 국가 통제력 확대를 목적으로 시베리아 횡단철도(TSR·Trans-Siberian Railway)를 건설했으며, 소련 시대에는 사회주의 국가 간 경제, 정치적 통합과 결속을 목적으로 철도 보급을 늘려왔다. 그리고 현재에도 국제적 철도산업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국제철도협력기구 OSJD(Organization for Cooperation of Railways)를 통해 행사해 오고 있다.
OSJD는 러시아, 중국, 북한을 비롯하여 중앙아시아 지역의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유럽의 폴란드, 슬로바키아 등 28개국이 정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국제기구다. 이처럼 많은 국가들이 OSJD에 가입한 이유는 시베리아 횡단철도(TSR·Trans-Siberian Railway), 중국횡단철도(TCR·Trans-Chinese Railway), 만주횡단철도(TMR·Trans-Man churian Railway), 몽고횡단철도(MGR·Trans- Mongolian Railway) 등 전 세계에서 가장 긴 구간의 철도 운행을 원활히 도모하고, 이러한 철도 노선을 함께 사용하기 위함이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지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오래됐다. 초기에는 경제적 이유가 컸다. 16세기 가장 값비싼 교역품은 모피였다. 당시 값비싼 금액으로 판매되던 모피를 획득할 수 있는 곳으로 시베리아를 상정하고 실제적으로 이곳에서 엄청난 모피를 획득했다. 이들은 국가재정에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준 모피 무역의 원활한 공급처인 시베리아를 의도적으로 지배했다는 관점이 일반적이다.
19세기 이후 시베리아에 대한 국가적 가치는 조금씩 변화되었다. 당시 러시아는 경제적 가치 이외에 군사 목적을 가지고 시베리아를 인식했다. 러시아 입장에서 횡단철도 건설은 군사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했다. 러일전쟁을 앞둔 러시아는 횡단철도를 통해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 혹한기에 다양한 군사장비를 원활하게 이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철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중심으로 산업 분야 중 특히 광업 분야가 발전하였다. 또한 일부 계절적 시점에는 농산품 수송이 급증했으며, 이에 따라 러시아 농업 발전에 이바지했다. 관광 및 여행업의 발전마저 가져왔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할 때,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 내부의 철도를 중심으로 한 경제발전 계획에 있어서도 커다란 악영향을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
악영향을 받는 건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OSJD 가입을 통해 국내 철도를 유라시아 대륙철도와 연결하기 위한 첫걸음을 시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었다. 하지만 OSJD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정회원 국가 모두의 만장일치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북한의 지속적인 반대로 인해 가입하지 못했다. 하지만 2018년 북한이 반대 의사를 거두어들여 가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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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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