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다시피 갈등(葛藤: conflict)은 칡나무 갈(葛), 등나무 등(藤)이 얽혀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칡은 왼쪽으로 돌며 올라가고, 등나무는 반대로 돌아감으면서 올라가는데 두 나무가 같은 곳에 있으면 서로 휘감으면서 강하게 얽혀버리게 된다는 뜻이다.
어느 조직, 사회에서나 있는 현상이요, 각 개인의 내면세계에도 존재하는 것이니 도저히 보기 흉해서 풀어야 할 정도가 아니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갈등이 말끔히 정리된다는 것은 언어의 유희에 불과할 수가 있다. 따라서 ‘갈등관리’, 즉 갈등은 다스리라고 했다. 남과 북도 그렇다.
교류구조분석의 창시자 에릭 번 박사는 1950년대 자아의 상태(ID)를 부모의 마음(Farents), 어른의 마음(Adults), 어린이의 마음(Childs)으로 구분하였다. 사람마다 이 세가지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데,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이 ‘어린이 마음’이다.
배가 고프다. 화가 난다. 덥다. 꾸중한다. 뭘 하지 말라고 한다. 이럴 때, 상대방의 반응은 필요 없다. 덮어 놓고 행동한다. ‘울어버린다’. 이게 어린이 마음이다. 대체로 개인이나 집단에게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흔하게 나타나는 1차 반응들이다. 그런 반응을 대하는 상대에 따라서 갈등이 촉발된다. 시도 때도 없이 먹을 것으로 달랠 것인가, 교육할 것인가, 같이 학습할 것인가, 같이 화를 내어 되받아쳐 버릴 것인가, 이럴 때 똑같이 ‘어린이 마음’으로 똑같이 상대하게 되면 해결난망이다. 국제관계도 그런 면이 의외로 많다. 남과 북도 그렇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린이 마음은 대체로 부정적인 언행이 주종이다. 또한 희비, 호불호가 확실하다. 세상이 온통 자기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다. 자기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금방 좋았다가도 돌아서면 토라져 있다.
‘어른의 마음’은 좀 다르다. 아니 좀 달라야 한다. 자본주의의 치명적 오류가 전세계적으로 나타나서 각국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인문학의 실종으로 ‘어른다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급속하게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 돈이 없는 어른의 마음은 비웃음거리다.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세상의 중심되는 공통가치는 ‘생명존중, 평화, 정의, 인류애, 공동번영’ 이런 것이었다. 이제는 돈과 경제 앞에서 거의 자취를 감춰버리고 있다. 하물며 여기에다 ‘부모의 마음’까지를 기대한다는 건 넌센스요, 구석기시대 취급을 받는다. 이제 그같은 자애, 희생, 사랑의 가치는 종교영역에서 마저도 공허한 느낌이다.
근자에 들어서 거대국가들의 움직임들이 심상치 않다. 세계를 움직이는 초대형 국가들도 생존을 위한 움직임들이 예사롭지 않다. 하물며 약소국가의 ‘국가운명’이라는 게 너무 쉽고 허무하게 순간적으로 결정되어버린다. 속수무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기축통화국들’조차 안심할 수 없는 지경이다. 기존에 ‘국력’이라는 개념에 포함되었던, 영토, 인구, 군사력 등이 모두 경제력, 그것도 개념조차 애매모호한 기축통화에 의해 철저하게 예속되어 버렸다.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역사의 연구’에서 그는 26개 문명의 등장과 쇠퇴를 연구한 뒤, ‘문명은 엘리트 지도자로 이루어진 창조적 소수의 지도 아래 도전에 성공적으로 대응’ 함으로써 등장한다고 결론지었다. 또 그 지도자들이 창조적으로 대응하기를 멈추었을 때 쇠퇴하며 민족주의, 군국주의, 전제적(專制的) 소수의 독재정치 등에 의해 몰락한다.고 하였다. 수긍이 간다.
그런데 칼 맑스가 ‘역사는 경제력에 의해서 지배될 것.’이라는 견해에 반해서 토인비는 ‘정신적인 힘에 의해서 형성될 것이라는 다소 막연한 신앙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이런 비현실적인 결론부분에 대해서 격한 회의감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현실세계는 대안제시에서 비록 실패한 이론이지만 누가 보더라도 맑스의 역사관이 훨씬 현실적이요. 통찰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현실로 되돌아와서 토인비 교수의 견해를 되짚어 보자. 너무나 허술하기 짝이 없다.’ 도덕과 정신의 자리를 이제는 거의 ‘법(法)’이 차지하고 있다. 법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법이 무기로 바뀐 지도 벌써다. 국제사회라고 특별하지가 않다. 그 법을 지배하는 것이 경제가 되어버린 마당에 ‘어린이 마음’ 어른마음이 어디에 있겠나.
국제법의 한계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경제로 윽박지르고 부딪치고 깨지고 수많은 국민들이 지도자 몇 사람들에 의해서 생사의 갈림길을 해매이는 게 현실이다. 한 국가의 리더들은 국제사회에서 우호적인 국가들을 많이 갖는 것 못지않게 치명적인 적(敵)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강자도 한풀만 벗기면 여지없이 약자가 된다는 걸 러시아가 보여주고 있지만 그 어느 국가도 예외가 없어 보인다. 미래와 운명의 불확실성 앞에 겸손하게 예의 주시해야 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북 지원을 놓고 이런 저런 말이 많자, 그것은 동포애, 인류애도 아니요. 그냥 ‘도리’라고 했던 말 속에서 우리는 보기 드물게 ‘부모의 마음’을 엿볼 수 있을 듯하다. 당시의 한반도에서는 갈등이 존재할 공간이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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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 민주평통 위싱턴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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