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주일 전이다. 행사장에서 어느 한인 여자 분과 같이 사진을 찍게 되었다. 그런데 이 분은 나와 달리 제법 키가 컸다. 나하고 그대로 서서 찍기에 불편했는지 몸을 숙이셨다. 나는 그렇게 나보다 키가 더 큰 여자들과 같이 서서 사진을 찍는 상황이 어색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는데 그 분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내가 그냥 똑바로 서자고 한 다음에서야 제대로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를 닮은 나는 키가 작다. 팔다리도 같이 짧다. 그래서 옷을 사는 게 쉽지 않다. 직업이 변호사인 나는 양복과 와이셔츠를 입을 때가 많다. 그런데 나에게 맞는 와이셔츠를 구하는 게 힘들다.
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내 목둘레와 팔길이가 딱 맞는 와이셔츠를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목둘레에 맞추면 항상 팔길이를 줄여야 했다. 그러다보니 종종 옷이 볼품 없게 되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와이셔츠는 아예 한국에서 맞추어 입기로 했다.
한 번에 여러 장을 주문할 경우 맞춤 와이셔츠라고 해도 미국의 백화점에서 사서 수선해 입는 것과 가격 차이가 많지 않았다. 그리고 맞춤인만큼 팔길이 뿐 아니라 상체 길이와 품 둘레도 나의 몸에 딱 맞게 입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한국 방문 시 몇 장씩 맞춤 와이셔츠를 구해 미국으로 가지고 오고는 했다. 그리고 한국에 직접 나가기 힘든 경우에도 맞춤 상점이 내 치수 기록을 보관하고 있기에 옷감과 색깔만 선정해 알려 주면 준비해 주고는 했다.
그러나 와이셔츠 때문에 진땀을 뺀 적이 생각난다. 미국에서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였다. 미국에 갓 이민온 가정으로부터 저녁식사 초청을 받았다. 그 집에 나와 동갑인 딸이 하나 있었는데 대학 입학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다고 했다. 그 식사에 나 뿐만 아니라 내 부모님들도 함께 초청 받았다. 그러자 어떤 옷을 입고 가느냐가 고민 되었다. 그 때로부터 겨우 3년 전 쯤 가난했던 시절에 미국으로 이민 온 나에게는 입을 옷이 변변치 못했다. 겨우 학비를 마련해 대학교를 다닐 때였다.
그러나 겨울 양복이 한 벌 있어 그것을 입기로 했다. 양복을 입기로 했으니 당연히 와이셔츠도 같이 입었어야 했다. 제대로 맞는 와이셔츠가 없었다. 아버지 와이셔츠를 한 장 빌렸는데 팔이 많이 길었다. 그래서 임시 방편으로 와이셔츠의 양팔에 옷핀을 꼽아 길이를 줄였다. 그렇게 하고 초청한 집에 가서 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에 앉았다.
그런데 초청한 집의 아주머니가 나 보고 자꾸 웃옷을 벗고 편히 식사하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괜찮다고 했는데도 계속 벗으라고 하신다. 내 옆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도 당황하셨다. 불편하지 않다고 우기면서 저녁 식사를 한 나의 등에는 땀이 흘러 내렸다. 그것은 절대로 그 날 대접 받아 먹었던 뜨거운 국 때문은 아니었다. 그 날 어떻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갔는지 자세한 기억이 없다.
옷 길이를 줄이는 일로 또 한 번 크게 당황한 경험이 있다.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다. 내가 미국 이민 오기 전에 같은 교회에 다녔던 여자 후배 두 명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그런데 편하게 입을 바지를 몇 장 구할 필요가 있어 여자 후배들과 함께 남대문 시장으로 먼저 갔다. 바지 값은 워낙 저렴해 몇 번 입고 버려도 아깝지 않을만 했다.
그런데 바지도 역시 길이를 줄여야 했다. 바지 가게에서 치수를 재고 바지에 줄여할 위치를 표시해 옷 수선 가게에 갖다 맡겼다. 그런데 수선 가게 주인 아주머니가 깜짝 놀란 듯 한 표정을 짓더니 길이를 다시 한 번 재 보잔다. 바지 가게에서 잘 못 잰 것 같다고 하면서 말이다. 아이, 이 아주머니… 그냥 그대로 줄여 주면 되는데… 다시 재도 다르지 않았다. 다행히도 거의 45년 이상 전부터 나를 알던 후배들은 별거 아니라는 모습이었다. 고마웠다.
조물주는 인간 하나 하나 모두 다른 모습으로 만들었다. 창조 계획의 일부로 나에게 자족하는 여유도 배우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그리고 아담한 키와 팔다리로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공감의 지혜도 허락했다. 모두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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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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