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0대 대선 결과는 참혹 그 자체였다. 사람들이 최소한의 도덕과 지성을 가지고 투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지나친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찬 사람 외에는 누구든지 의심할 여지 없이 옳은 선택을 할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바램은 헛된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적어도 수십년에 걸쳐 공들여 온 민주주의 자산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으며 파괴자들은 그 대가로 상을 받았다.
문명화된 국가에서 도대체 유권자가 무슨 선택을 한 거야? 퇴행의 지도자를 환영하는 사람들에게 의심할 여지 없이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은 도덕에 매우 냉소적이고 프레임 마케팅 속임수에 잘 넘어 간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계몽주의 목소리는 설 땅이 없다. 우리에게는 가혹한 슬픔이다. 그렇다고 주권자의 선택을 탓 할 수도 없다. 좋든 싫든 투표 결과는 존중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6월 민주 항쟁으로 얻은 1987년 구식 헌법이 21세기에 더 이상 한국 사회에 적합하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못하고 무제한적인 증오, 명백한 거짓말이 성공적인 정치 소통으로 둔갑 하면서 정당과 정부 조직이 엉뚱한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 환경의 변이는 파시즘의 유령을 불러내기에 적합한 토양이다. 이것이 단순히 민주적 시스템 오류의 결과라면 시스템의 재프로그래밍이 시급하다.
특수부 정치 검사들은 일명 ‘대호 프로젝트’를 통해 자기들을 신임하고 임명했던 대통령과 편의적 적대감을 만들어 그 분란을 이용하여 법 기술을 부리며 권력을 잡았다. 더 많은 책임은 그들의 난동을 부추기는 국민의 힘 당과 악의적 부정적 산소를 불어넣고 부채질하며 이를 불 피우는 타락한 보수언론에 있다. 이들은 자기들의 파이를 늘려 가기 위해 의심할 여지 없이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갈 것이며 국민은 훨씬 더 명백한 희생양이 될 것 이다.
233년전 미국 건국의 교부들은 행정부의 권한을 제한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마련했다. 미국 헌법 본문의 7개 조항 중 처음 3개 조항은 처음부터 삼권분립 원칙이 작동하는 방식을 설정하고 있다. 그들은 영국 왕과 절대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의회의 권력을 베끼는 입헌군주제 정부를 피하고 싶었다. 그 중에 핵심은 단연 대통령제와 ‘권력분립’(separation of powers)이었다. 선출된 대통령 권력을 또다른 선출된 의회 권력이 견제하도록 했다.
권력분립은 인간성에 대한 회의의 산물이다. 매디슨 자신이 말했듯이 수천 년의 인류 역사에 대한 지식을 통해 학습한 사실은 의심할 여지없이 "권력을 가진 모든 사람은 불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유주의’(liberalism)는 미국 땅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 헌법이 1787년에 작성되었을 당시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보다 자유주의에 대한 지지가 훨씬 더 많았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존엄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국민이 동의한 정부(elected representative government), 제한된 정부(limited government), 사유재산(priv ate property)과 기회균등(equal opportunity) 보호를 신념으로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극성을 부리기 전까지는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미국 민주주의 실험은 사실상 상상할 수 없는 자유와 번영을 가져왔다.
권력분립의 핵심은 독재자 출현을 봉쇄하는데 목적이 있다. 대부분 제임스 매디슨이 설계한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의 정교한 헌법 체계는 적어도 닉슨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전제주의로부터 미국을 보호해 왔다. 많은 미국인들은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을 시작으로 1974년에 처음으로 대통령의 손에 엄청난 권력이 부여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최근 트럼프 등장은 지난 4년간 거의 통제되지 않는 권력 남용으로 건국자들이 많은 사람들의 자유와 제한된 정부를 위해 세팅한 미국 민주주의 시스템을 크게 훼손시켰다.
사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통령의 권력은 건국자들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커졌다. 행정부의 권력이 역사적으로 확대되는 것은 복잡하고 다양한 의견이 표출된 사회에서 당연한 현상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의회가 제정한 법률 방향으로 노를 저어야 하며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벗어난 권한을 남용해서는 안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키를 다른 방향으로 조종하면 헌법 체제의 존속 가능성을 큰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 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 재직시 자신의 불법을 방해하는 사람을 공권력을 통해 겁주며 무자비하게 사냥한 전력이 있다. 그런 그가 대통령 취임식 연설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35번 사용했다. 당장 자유주의적 선동을 멈추야 한다. 자유주의 신념인 개인의 존엄성과 가치를 검찰 권력으로 파괴한 장본인이 할 말은 아닌 듯 싶다. 자유주의는 이미 세계 보편적인 가치가 된 지 오래다. 오히려 자유가 너무 확대되어 사회 계층을 서열화 하는 불평등을 악화시켜 이미 탈이 난 지경이다.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손을 봐야 할 상황에 자유 타령을 하고 있다. 현실감이 떨어진 엇박자 소음으로 들리는 이유이다.
무엇을 위한 어깃장인지 의심케 한다. 맹렬한 우파가 좌파를 비웃는 것은 부러움의 정치학이지만 ‘권력 남용’의 정치 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는 것을 윤석열을 선택한 유권자들은 지금이라도 깨닫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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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 정치 철학자,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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