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과 10일은 확연히 다릅니다. 떠태와 지태의 파워는 천양지차입니다.”
한 정치학자는 취임하는 새 대통령과 물러나는 전직 대통령의 권력·정보력 차이를 하늘과 땅으로 설명했다. ‘떠태’는 떠오르는 태양이고 ‘지태’는 지는 태양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일인 5월10일 0시 합참의장으로부터 전화로 군 통수권 이양 사실과 군사 대비 태세에 대한 보고를 받는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여러 권력기관에서 갓 만들어낸 기밀 보고서들을 접하게 된다.
윤 대통령은 국정 상황을 보고받으면서 중압감을 느낄 것이다. 평소 좋아하던 약주를 절제해야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자칫 대한민국 호가 퍼펙트 스톰으로 좌초될 수 있는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경제지표에 빨간불이 켜졌다.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 남발로 나랏빚은 급증하고 나라 곳간은 텅 비었다. 확정 국가 채무에 연금 충당 채무까지 포함한 국가 부채는 5년 동안 763조 원이나 늘어 지난해 말 2,196조 원에 이르렀다. 여기에 공공기관·공기업 부채를 더한 광의의 국가 부채(D4)는 2,800조 원에 육박한다. 정부는 중앙·지방정부 부채(D1)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50%가량에 그쳐 괜찮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D4 기준 국가 부채 비율이 2018년에 106%를 넘었다는 점을 들어 “나랏빚이 위험 수위”라고 경고한다.
게다가 반 시장적 규제, 친 노조 정책, 편 가르기 등이 겹치면서 성장 동력이 멈췄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최근 2%선으로 추락해 이대로 가면 10년 내 ‘제로 성장’으로 접어든다. 요즘에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 글로벌 경기 침체, 무역 적자 등 3각 파도가 우리 경제에 몰려오면서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의 긴축 후폭풍과 우크라이나 사태, 중국의 성장 둔화 등이 세계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과감한 구조 개혁과 초격차 과학기술로 성장 엔진을 재점화해야 한다. 반도체·미래차·바이오·소형모듈원전(SMR) 등 전략산업에서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고급 인재를 키워야 글로벌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또 노동·규제·교육·연금 개혁으로 경제 체질을 바꿔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표를 잃을까 봐 구조 개혁에 손을 대지 않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숙제를 미루면 안 된다. 세계경제포럼(WEF)의 평가 결과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가운데 35위로 바닥이다. 노사 협력은 141개국 중 130위였다. 노동시장 유연성과 노사 협력 수준을 높이는 개혁과 함께 규제 혁파를 추진해야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고 신산업을 꽃피울 수 있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최고 지도자의 강력하고 일관된 의지가 있어야 한다. 2003년 독일은 ‘유럽의 병자’로 불렸다. 성장률은 -0.4%까지 떨어졌고 실업자는 넘쳐 났다. 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노동시장 유연화와 실업급여 축소를 골자로 한 하르츠 개혁을 밀어붙였다. 슈뢰더는 전통적 지지 기반인 노동자층의 이탈로 2005년 총선에서 패배해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하르츠 개혁으로 독일의 고용률은 2003년 64.6%에서 2019년 76.7%로 높아졌다. 슈뢰더는 정권을 놓쳤으나 나라를 살린 지도자로 평가받게 됐다. 슈뢰더는 “진정한 지도자라면 정권이 아니라 국가 미래를 위해 개혁을 추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저효율·고임금 등의 ‘영국병’으로 내리막길을 걷던 영국은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총리의 강력한 노동 개혁으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1979년에 집권한 대처는 개혁 성공으로 3연승을 기록한 뒤 1990년에 총리직을 넘겨줬다.
우리 경제는 최소 1~2년 동안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야 한다. 터널을 빠져나온 뒤 다시 점프하려면 대수술로 체질을 확 바꿔야 한다. 윤 당선인은 사탕 나눠주기식 공약을 걸러내고 한국병 환부에 메스를 대야 한다. 정권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면서 ‘담대한 희망’을 제시하고 인기 없는 개혁도 끈질기게 밀어붙여야 한다. 그래야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문재인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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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덕 서울경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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