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전쟁 대비 지휘통제기 ‘IL-80’ 등장은 “서방에 보내는 경고”
▶ 美전문가 “푸틴, 위협 실행 전력…바이든, 심각히 받아들여야”
러시아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푸틴 대통령[로이터=사진제공]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고전하고 있는 러시아가 연일 서방을 향해 핵 공격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실제로 핵 버튼을 누를지에 관심이 쏠린다.
러시아의 전승절 기념일(5월 9일)을 앞두고 진행된 공군 퍼레이드 리허설에서는 일명 '심판의 날' 항공기라 일컬어지는 공중 지휘통제기 일류신(IL)-80이 등장했다. 통상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이 지휘통제기를 '맥스돔'이라고 부른다.
IL-80은 핵전쟁이 발생해 지상 지휘통제센터가 파괴됐을 때 푸틴 대통령 등 군 수뇌부들이 공중에서 전쟁을 지휘하기 위한 용도로 개발됐다.
러시아 전승절 리허설에 등장한 IL-80 [로이터=사진제공]
전문가들은 전승절 퍼레이드 리허설에 IL-80이 등장한 것이 과시용일 수 있지만 푸틴 대통령이 고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실제로 핵을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 12년 만에 전승절 리허설 등장한 'IL-80'…"서방 향한 경고 메시지"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9일(이하 현지시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개최된 제77주년 전승절 퍼레이드에 앞서 7일 진행된 리허설 행사에서는 IL-80이 등장했다.
2010년 전승절 행사 이후 12년 만에 등장한 IL-80은 러시아가 1980년대에 개발한 공중 지휘통제기다.
핵폭발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핵전쟁 발발 시 대통령과 군 수뇌부가 탑승해 공중 명령센터로 사용할 목적으로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중 지휘통제기 내부에는 첨단 통신장비, 생존시설 등이 갖춰졌으며 조종석 창문을 제외하면 외부 창문이 없기 때문에 강력한 핵폭발도 견딜 수 있다. 국가별 통제기 관련 상세 정보는 기밀로 분류돼 있다.
현재 러시아는 IL-80 4대를 실전 배치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IL-96-400M 여객기에 기반을 둔 신형 공중 지휘통제기 개발에도 착수했다.
그러나 리허설에 모습을 드러냈던 IL-80은 정작 전승절 행사 당일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악천후 탓에 당초 예정됐던 공군 퍼레이드가 전격 취소됐기 때문이다.
붉은광장 상공을 수십 대의 각종 군용기가 열을 지어 비행하는 공군 퍼레이드는 통상 전승절 열병식 마지막에 펼쳐졌다.
크렘린궁은 9일 "공중 퍼레이드는 날씨 문제로 열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애초 공중 군사 퍼레이드에는 승전 77주년에 맞춰 모두 77대의 전투기와 폭격기, 공중급유기 등이 참여할 예정이었다.
전문가들은 비록 악천후로 전승절 행사에는 IL-80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IL-80을 선보인 것은 서방에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러시아가 전승절 행사에서 '심판의 날' 항공기를 띄우려 한 것은 서방에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라며 "만약 서방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개입한다면 핵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전승절 행사 당일 모스크바 상공에 바람이 불긴 했지만 과거 러시아 항공기들은 더한 악천후에도 행사 비행을 했었다며 항공 퍼레이드를 전격 취소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만약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 최고의 전투 비행사들을 빨아들이고 있다면 전승절 행사를 담당할 후보 비행사들은 완벽하지 않은 조건에서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곡예비행을 할 만한 준비가 안 돼 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포브스는 또 전승절 공군 퍼레이드가 돌연 취소된 것은 과대 포장됐던 러시아의 전략 군사력이 혼란에 빠졌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 러시아 국영TV "핵미사일 한방이면 영국 사라질 것" 위협
'심판의 날' 항공기 등장 외에도 러시아가 핵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다는 신호는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러시아 국영TV 채널 '로시야 1'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에 가장 적대적인 행보를 보여온 영국에 핵 공격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로시야 1은 지난 1일 극초음속 탄두를 장착한 '사르맛'(Sarmat) 핵미사일로 영국과 아일랜드를 공격하는 상황을 가정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유명 언론인 드미트리 키셀료프의 내레이션과 함께 방영했다.
키셀료프는 푸틴 대통령의 '대변자'로 통하는 인물로, 러시아 최고 선전·선동가 중 한 명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키셀료프는 "핵미사일 한방이면 영국은 사라질 것"이라며 "영국은 방사능으로 뒤덮인 최대 500m 쓰나미에 휩쓸리게 되고 바다에 가라앉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또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를 언급하며 "(핵미사일) 단 한 발에 영국이 사라졌다. 우리랑 한 번 해보겠는가"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키셀료프의 이런 위협은 존슨 총리가 최근 핵미사일로 크렘린을 위협했다는 러시아 언론의 허위 보도 때문이라고 WP는 설명했다.
로시야 1은 지난달 28일에는 토론 프로그램인 '60분'에서 유럽 주요 도시들을 핵무기로 공격하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 시뮬레이션에서는 러시아가 핵무기로 런던을 3분22초, 파리를 3분20초, 베를린을 1분46초만에 타격할 수 있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앞서 러시아는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RS-28 사르맛의 첫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핵탄두를 싣고 지구 어느 곳이든 1시간 이내에 타격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진 무기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핵전쟁 공포는 한층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사르맛에 대해 "당분간 이것과 비교할 만한 무기는 없을 것이다. 적들을 다시 생각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달 27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의회 의원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서방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할 경우 "전격(lightning-quick) 대응할 것"이라며 필요시 사르맛을 사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문제 전문가인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에 "바이든은 푸틴의 핵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푸틴은 자신이 했던 위협을 실제로 이행한 전력이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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