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 어느 나라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막연한 기대에 들뜬다. 정치가들의 현란한 공약과 화술 선동에 군중들이 도취하는 현상일 것이다.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등장하는 새 지도자에게 군중들이 ‘향상된 세상’을 기대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수순인가 보다.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세계 정복의 깃발을 내건 나치즘의 아돌프 히틀러가 등장하자 환호를 보냈던 게 군중들이었다.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로 시작한 박정희 장군의 5.16 쿠데타 구호가 “기아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라는 대목에 이르러서 일시적으로나마 일부 국민들이 열광했던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는 민주주의와 민권 수호의 상징이던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 선생까지도 초창기에 5.16 쿠데타를 지지했을 정도였다.
순진한 백성들이 새로운 정권 앞에 무비판적으로 기대에 부푸는 것은 흠일 것도 탓할 일도 아닌 자연스러운 전환기의 사회현상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윤석열 정권은 지극히 합법적이고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되었는데도 축제 분위기와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당연히 따라야 할 기대와 설렘 대신에 불길한 예측, 우울한 분석, 절망의 논평들만 난무하고 있을 뿐이다.
이 같은 정정의 불안은 먼저 윤 당선인의 ‘청와대 거부 집착’에서 기인한 것 같다.
집무실 이전의 여파가 엄청날 것을 예측, 상상도 못 한 것 같다. 새 정부 내각 후보 인선도 아마추어 수준이다. 지역, 성별, 계층을 총망라하는 통합 의지를 외면했고 특정 지역 편견, 학벌, 여성 배제 등 정실과 감정에 치우친 인선이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출발 스텐스(자세)가 이렇게 어색하니 호쾌한 장타를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신임 윤 대통령의 공약은 정의, 공정, 소통, 통합이었다.
한편 정권을 빼앗긴 야당(더불어 민주당)의 저항은 가히 횡포 수준이다.
검찰권의 요체인 수사업무를 사실상 삭제시켜 버렸다. 기소 업무만 수행하라는 것은 실제로 대서소 형태로 전락시켜 놓은 셈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집권 기간 5년 내내 무소불위의 막강한 검찰 세력을 순화시키겠다며 백방으로 수단을 쓰고 핵심부의 목을 조여왔다.
고위 공직자 수사처(공수처)를 신설하고 상설 특검도 2개를 설치하는 등 검찰 힘 빼기를 계속해 왔다. 그리고 정권 퇴진의 코 앞에서 국민과의 소통도 없이 ‘검수완박(검찰수사 완전박탈)’을 통과시킨 것은 검찰 ‘확인사살’ 폭거로 기록될 것이다.
물러서는 민주당의 검찰 무력화 의도는 지난 5년간 자신들의 갖가지 부정부패 비리를 덮어 버리려는 다수당의 횡포이며 흉계라는 지탄도 있다.
지금 여야는 문자 그대로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 절대 서로 화합의 길로 갈 수가 없는 상태다. 이 같은 국면은 수습하기 어려운 국가 혼란을 진단하게 만든다. 앞으로 닥칠 국민분열, 정치혼란을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의 프리미엄(우선권) 고자세와 권력을 장악한 소수여당의 열등의식(Complex)의 극한 대립은 끝없이 이어갈 것이다. 현 상황에서는 ‘합의’, ‘협치’ 대신 반 의회주의, 민주제도 파괴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예견되는 정치, 사회혼란을 수습해 줄 것으로 믿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마저 무산될 공산이 크다. 그는 윤석열 후보의 당선을 ‘아이러니(역설)’라고 비아냥거렸다.
미국 공화당 출신 부시 전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며 후임 민주당 오바마 당선자에게 메시지 한 장을 남겼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위대한 업적을 기대합니다. 당신의 성공이 곧 미국의 성공입니다. 힘 닿는 데까지 돕겠습니다” 이 메시지에 오바마 대통령은 감격해 한참 울었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한번쯤 음미해 볼 만한 일화다.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전임자로서 후임 대통령이 나라를 원만하게 이끌어 가도록 격려하고 협력해 주는 것이 국가와 국민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문 대통령의 비신사적이며 정파에 치우진 감정적 처신으로 미루어 ‘검수완박’에 대한 거부권도 행사하지 않을 것 같다.
이제 우리나라는 어려운 남북문제와 갖가지 국제적 여건들이 긴박하게 조여들어 다방면으로 한층 더 힘든 상태와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경제 전망도 밝을 리가 없다. 여기에 더하여 국내 정치까지 공중분해 될 위기가 임박해 오고 있다.
6월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 이후에는 정국이 더욱 혼미해질 조짐이다.
지금이야말로 난국을 타개하고 국정 질서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비상대책기구(명칭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같은 예비조직이 준비돼야 하는 건 아닌지 관심이 쏠린다. 진보, 보수의 지지 비율이 반반 비슷한 것도 극한 분열의 원인이다. 양측을 아우를 수 있는 그리고 국민들의 보편적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인사들이 각자의 철학과 사상을 초월하며 긴밀히 공정한 국정 정상화 방안을 도출, 제시해야 할 절박한 시기라고 건의한다.
(571)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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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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