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봄이 일찍왔다. 녹음 벌써 무성한 영화사다. 봄이 오면, 겨우내 비어있던 나뭇가지마다 다시 여린 잎새가 돋고, 그 잎 짙어지면, 영화사는 숲으로 변하고, 나무들이 울울이 담처럼 영화사를 감싸 앉아, 산속에 있는 듯 평온해진다. 그 나무를 처음 심은 뜻은, 그 옛날 선조들의 경우처럼, 봉황을 기다려서도 아니고, 장롱을 만들어 딸자식 시집보내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시원한 그늘이 필요해서 였다. 이 뜨거운 새크라멘토의 여름을 한 해 겪어본 뒤, 운동장 같이 너른 오천평 땅에 쏟아지는 강렬한 여름 태양에 그만 질려버려서다. 숲을 만들자. 그 때 단말마처럼 뱉어내진 말이다. 그렇게 시작하여 지난 십년 동안, 돌덩이 같은 이 땅에 무식하도록 나무를 심고 가꾸며 많이 울고 웃었다. 이젠 굳이 이 중이 심지 않아도, 지금은 나무들이 스스로 알아서 종족 번식을 한다. 무화과, 올리브나무, 벚나무, 뽕나무, 단풍나무... 쉬지않고 어린 나무들을 이곳저곳에 길러내고 있다. 심지 않은 어린 나무들이 자꾸 생기는 걸 보면서, 마치 이 세상 저 모든 숲들이 어떻게 생성되는지, 그 태초를 목격한 심정이다. 경이, 그 자체다. 큰 나무 옆에 가면 어린 나무가 반드시 자라고 있다. 이대로 몇십년 후엔 심은 나무보다 그들이 알아서 길러낸 나무가 더 많을 지도 모르겠다. 지금보다 더 거대해진 영화사의 숲을 보기 전에, 이 중은 세상 뜨고 없겠지만, 숲이 커져, 세상 공기를 조금이라도 맑히고, 세세생생 이 영화사가 천년 고찰이 될때까지 남아, 영화사를 고요히 감싸안고 있었음 좋겠다. 그때에 오는 이들은 숲속에서 명상을 하고, 늙은 벚꽃 나무 아래서 꽃비를 맞았으면 좋겠다. 흐린 공기 걱정 없이 싱그런 피톤치트의 공간을 평화로이 누렸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 중이 나무를 심은 뜻은, 이런, 본인도 몰랐던, 봉황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옛시조가 있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잤드니, 기다리는 봉황은 오지 않고 밝은 달 만이 나무에 결렸더라' 는. 전설 속의 봉황은 벽오동에만 집을 짓는다고 한다. 봉황이 오면 태평성대가 이루어진다고 하고,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해서, 예로부터 선조들은 봉황을 기다리며 벽오동을 심었다고 한다. 설마 진짜 봉황이 오길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 희망과 간절한 바램을 상상속의 봉황에 대신 담았을 것이다. 그 봉황을 기다리며 벽오동 심은 뜻은 아마도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 간절함이 무엇을 향한 것이었든, 봉황을 의지하여 현재의 고난과 고단함을 달랬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간절은 그 어딘가, 원이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말 인연처에 가 닿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러 봉황을 만나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봉황은 그리 쉬 오지 않았던 것 같다. 기다리는 봉황은 오지 않고 그저 무심한 밝은 달 한쪽만 나뭇가지에 걸렸다고 하니까 말이다. 희망은 희망으로 끝날 뿐,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들 한다. 이루어지진 않지만, 그렇지만 누군가는 희망의 끈은 놓지 않았기에 세상에 아직 벽오동이 남아있는 것일 게다. 지금도 지구 어느 곳에선, 오늘도 희망의 나무를 심는 이가 있을 것이다. 희망과 기대는 번번이 깨어지는 일이 더 많지만, 살아가는 데 아주 큰 의미와 힘이 되기도 한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삶이 고단할 수록, 봉황을 기다리는 일 같은, 희망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살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절 세상이나 바깥 세상이나 희망을 갖기엔 시절인연이 너무 힘들다. 그래도, 이 중은 부처님이, 불교가, 영화사가, 스님이, 누군가에든, 희망이 될 수 있었음 좋겠다는 희망을, 매일 마음에 심는다. 영화사는 아니어도 좋으니, 그곳이 어디든 봉황이 왔으면 좋겠다. 덕분에 세상의 모든 전쟁이 끝나고, 펜데믹도 이젠 좀 꺼져줬으면 좋겠다. 태평성대가 연이어 찾아와줬음 좋겠다. 십 년간 나무를 많이 심으며 지켜본 바, 어쨌든 뭐든 심으면 자란다. 그 나무 자라는 속도는 비록 늦지만, 심고 가꾸다보면, 모르는 새 숲이 되어 있다. 요즘 많이 힘들겠지만, 모두가 마음에, 벽오동 한그루씩 심고 살았음 한다. 언젠가 기다리는 봉황이 올 지도 모른다.
<동진 스님(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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