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친께서는 공부하라는 말씀을 직접적으로 하시지는 않았다. 다만 국민학생 고학년 즈음에 발명왕 에디슨의 ‘천재는 1%의 영감(靈感)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그 얘기를 두어 번 하셨다. 에디슨이 한 말을 그대로 하셨을 뿐이지만 공부하라는 말씀인 것으로 알아서 받아들였다.
나중에 영어를 배우면서 에디슨의 그 말을 영어로 만났다. Genius is 1% inspiration, 99% perspiration. 이 영어 문장을 만나면서 이 문장이 가진 운율의 맛을 알게 되었다. 우리말의 ‘영감’과 ‘노력’은 발음상 아무런 연관이 없지만, 영어의 inspiration(인스퍼레이션)과 perspiration(퍼스퍼레이션)은 발음을 할 때 겹치는 부분이 많다. 즉 시작은 인(in-)과 퍼(per-)로 다르지만 양쪽 모두 -스퍼레이션(-spiration)으로 끝나는 단어인 것이다. 이것은 영어로 읽을 때에만 알게 되는 맛이다.
영어의 이런 맛은 다른 곳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핼로윈에 꼬마들이 사탕 얻으러 집집마다 다니면서 하는 소리인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이 그것이다. ‘과자(트릿)를 안 주면 장난(트릭)을 칠테야요’라는 뜻인데, 여기의 트릭과 트릿은 ‘트리’까지는 발음이 같고 끝에 가서야 ‘ㄱ’과 ‘ㅅ’으로 나뉜다. 트릭과 트릿의 절묘한 조합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자주 만나는 CLICK IT OR TICKET이라는 글귀도 그렇다. 안전벨트를 맬 때 딸깍하고 나는 소리가 클릭(CLICK)이므로 CLICK IT은 안전벨트를 매라는 말이다. TICKET은 범칙금 통고서 속칭 딱지이고. 즉 ‘안전벨트를 매세요. (CLICK IT) / 안 매면 딱지 뗍니다. (TICKET)’라는 내용이다. 여기서도 ‘크리깃’과 ‘티킷’의 발음 유사성을 이용했다.
가끔 거리 주차를 하게 되면 주차료를 내기 위해 주차요금 미터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 주차요금 미터기에는 이렇게 적힌 것이 있다. ALL MAY PARK / ALL MUST PAY. ‘누구나 주차할 수 있습니다. 주차하면 그 누구라도 주차료를 지불해야 합니다’라는 뜻이다. 양쪽 모두 올(ALL)로 시작하면서 M으로 시작하는 MAY와 MUST가 대응하고 P로 시작하는 PARK와 PAY가 대응한다. 무척 재미있는 표현이다.
어떤 쓰레기 수거 트럭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Think Green, Think Clean. 양쪽 모두 Think로 시작하고 ‘그린’과 ‘크린’은 시작만 G와 C로 다를 뿐 나머지 ’린’은 발음이 같다.
어떤 박스 트럭의 운전석 바깥쪽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 Driver does not carry cash. Only cashews. ‘이 트럭의 운전기사는 cash(현찰)를 carry(갖고 다니지) 않습니다. cashew(견과류인 캐슈)만 carry(배달)하지요.’라는 뜻이다. 비슷한 발음인 캐시(cash)와 캐슈(cashew)가 만났다.
그 트럭은 커다란 체인형 슈퍼마켓 소속인데 고객이 전화 또는 인터넷으로 주문한 상품을 집집마다 배달한다. 트럭 운전기사가 상품을 배달하고 받은 돈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오해하고 강도짓을 할까 봐 이 글을 적어 놓은 것이다. 배달 담당 직원은 범행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고객으로부터 상품대금을 받지 않고 오직 배달만 한다.
운율과 관련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 문장의 일부를 살짝 바꿔서 쓰는 경우도 있다. 대형 청과물 회사의 배달트럭 뒷문에 baby carrot on board라고 적혀 있다. 원래는 baby on board 즉 ‘이 차에는 아이가 타고 있어요’인데 baby를 baby carrot으로 바꾸었기에 ‘이 차에는 꼬마 당근이 실려 있어요’가 되었다. 이 경우의 꼬마 당근은 청과물을 대표하는 것이 되어 트럭 뒷문에 이런 문구를 적음으로서 ‘우리 회사는 청과물을 취급하는 회사입니다’라는 광고를 겸하고 있다.
원문인 baby on board를 ‘이 차에는 아이가 타고 있으니까 양보 부탁합니다’라는 뜻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게 아니라 ‘이 차에는 아이가 타고 있는데 덩치가 작아서 사고를 당하는 등 비상시에 잘 안 보일 수 있으니까 차 내부를 잘 살펴보시고 아이를 꼭 구출해주세요’라는 뜻이다.
이 청과물 회사의 트럭 중에는 ‘parsley, sage, rosemary on time’라고 적힌 트럭이 있다고 한다. 사실 이것은 노래 가사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의 마지막 부분을 살짝 바꾼 것이다.
그 옛날의 사이먼과 가펑클(Simon and Garfunkel)을 아는 사람은 그들의 노래 ‘스카보로 페어(Scarborough Fair)’를 기억할 것이고 그 노래가 Are you going to Scarborough Fair? /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으로 시작되는 것도 기억할 것이다. 이 노래에 나오는 허브 종류를 트럭에 적음으로써 청과물 취급 회사임을 알리면서 앤 타임(and thyme)을 온 타임(on time)으로 바꿔서 ‘우리 회사는 주문받은 청과물을 정시에 배달합니다’라는 말이 되었다.
맨 처음에 얘기했던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라는 에디슨의 그 말에 관한 이야기가 더 있다. 그 말은 선친께서 의도하셨던 것과는 좀 다른 얘기라고 한다. 선친께서는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뜻으로 말씀하셨겠지만 사실은 그 반대로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영감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즉 ‘1%의 영감이 없다면 99%나 되는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은들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이라서 99%의 노력을 강조한 것이 아니고 1%의 영감을 강조한 것이라고 한다. 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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