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春(춘)자는 따뜻한 봄날의 햇살에 힘차게 지표를 뚫고 돋아나는 풀의 모습을 뜻한다. 따라서 봄은 소생(蘇生)과 희망,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을 상징한다.
중국에서는 우리 인생에서 한창 때를 봄에 비유하여 청춘(靑春)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일년의 시작이 봄이다. 그 봄이 생기가 넘치고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듯이 우리네 인생도 청춘기에는 무한한 가능성과 힘찬 기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찌보면 봄은 바람 냄새로 부터 시작된다. 남녘으로 부터 불어오는 봄바람은 코끝을 간질이는 꽃향기와 풋풋한 풀내음을 실어온다. 계절이 담긴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는건 기분 좋은 일이다. 봄바람은 사랑의 바람이고 생명의 바람이다. 봄바람하면 가장 먼저 민태원의 수필 ‘청춘예찬’이 생각난다.
“얼음에 싸인 만물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풀밭에 속잎 나고 가지에 싹이 트고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의 천지는 얼마나 기쁘며,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것을 얼음 속에서 불러내는 것이 따뜻한 봄바람이다.”
그렇다. 생동감이 넘치는 봄의 기운은 따뜻한 봄바람이 가져온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실려 봄꽃들이 앞다투며 만개하는 4월이다. 꽃향기가 싱그럽다. 봄내음이 상쾌하다. 새생명이 솟아나는 4월은 활력이 넘쳐 신록이 점점 짙어진다. 꽃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어 봄을 만끽하기 좋은 계절이다.
셰넌도어 국립공원 스카이라인 드라이브(Skyline Drive) 산 아래로 펼쳐진 풍경은 눈부시게 정말 아름답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지만, 꽃이 사람보다 아름다운 계절이 바로 봄이 아닌가 한다. 연초록 푸나무와 활짝 피어나는 꽃으로 생명의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봄은 젊음이요, 희망이요, 사랑이다.
아름다운 봄은 우리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힘껏 불러일으킨다. 살아있다는 희열감을 느끼게 한다. 좌절에서 탈피하여 새꿈을 꾸게 하고 절망을 극복하여 희망이 솟게 한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 혹독한 추위도 봄바람을 이기지 못한다. 인간의 강한 의지는 봄바람 같다. 그러기에 어떠한 고통과 절망도 인간의 의지보다 강할 수는 없다.
봄바람 부는 날의 산행은 마음을 들뜨게 한다. 연두빛 수채화로 마구 칠한 듯 펼쳐진 산등성의 봄 색깔은 기분을 즐겁게 한다.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트레일을 따라 걷는 곳마다 달래, 원추리, 미역취, 고비, 당귀 등 봄나물이 봄바람에 실려와 싱그러운 손짓을 한다. 군락을 이루며 피어있는 꽃은 비단을 펼쳐놓은 듯 눈부시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산 계곡 사이로 맑고 청아한 물소리가 흘러내린다. 계곡에 졸졸 흐르는 물이 평화롭고 명경지수이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한 것은 봄바람에 실려온 아름다운 봄꽃이 피기 때문이다. 동네마다 아름다운 꽃들과 향기가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터질 듯 만발한 화사한 봄꽃들이 완연한 봄을 알리고 있다. 대지의 긴 침묵을 밀어내고 새움을 틔우는 봄꽃은 봄의 생명이요, 세상의 희망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꽃으로 산야를 물들이면서 생명을 새로 키워낸 봄은 버림받은 연인처럼 매정하게 훌쩍 가버린다.
텃밭의 농작물도 봄바람 맞고 오롯이 피어 오른다. 머위가 살짝 고개를 내민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뼘 크기로 자랐다. 옆에 있는 부추도 저도 ‘이렇게 컸어요’하고 부르는 것 같다. 작년 봄에 처음 모종한 산마늘(명이나물)과 파드득 채소가 생기발랄하게 봄인사를 한다. 3월에 파종하여 올라온 물기 머금은 여린 새싹들의 파릇함이 더해 싱그럽게 느껴지는 봄날이다. 이른 아침에는 새끼에게 줄 먹이 찾는 어미새들이 찾아와 우짖는다. 4월은 고추, 깻잎, 오이, 호박, 토마토 등 생명을 심고 가꾸기 위해 각종 모종을 준비하는 달이다.
봄은 설렘이다. 설렘은 기다림이다. 다시 때가 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꿈을 가지고 기다려야한다. 엄동설한에도 땅 밑에서 봄의 따뜻한 햇살을 기다리는 씨앗처럼 참고 기다려야 한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듯이 기다리면 어둠을 뚫고 새날이 찾아온다.
봄바람은 스쳐 지나간다. 아름다움은 스치는 것이다. 흐르는 시냇물처럼 머무르면 안되고 스쳐 지나가야 한다. 가버린 날이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는 날의 향긋한 추억의 그림자도 봄바람에 살짝 실려와서 스쳐 지나간다. 오미크론 변이가 뺏어간 우리의 허물어진 일상도 봄바람처럼 스쳐 지나갈 것이다. 잃어버린 우리의 본래 일상은 봄의 설레임처럼 다시 찾아 올 것이다. 봄바람은 설레임이고 희망이고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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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모 / 워싱턴산악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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