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들은 사물이나 다른 사람들을 평가할 때 고루하고 편협된 사고방식 때문에 자신엔 한없이 후(厚)하고 자신 이외에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선 야박(野薄)하고 엄(嚴)함으로 요즈음 한창 유행어인‘ 공정과 상식’에 어긋나는 우(愚)를 범하게 됨을 본다.
하지만 말이 쉽지 매사에 적절한 평가를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게다. 특히 자신에 대해 평가하기란. 여러 사람들이 참여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 평가과정에선 좀 덜하겠지만 자신만의 잣대로 들여다보는 경우의 주관적 평가에선 더욱 어려운 과제가 아닐는지?
냉혹하게 자기 판단만 올바르게 할 수만 있다면야 무슨 일인들 어려울 소냐.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누구는 자신을 과소평가해 자신감, 자존심 결여가 심해 병적증세로 나타나는가 하면, 또 어느 누구는 지나친 과대평가, 자만으로 병적증세로 나타기도 한다.
하여튼 부족하건 넘치건 심할 때 병적으로 표현되지만 이쪽저쪽 어지간한 경우엔 본인은 물론 주위의 사람들 조차 느끼지를 못하고 좀 이상한 사람, 편협된 인간 정도로 치부하고 지내는 것이 이 세상사가 아닐까? 세상은 온통 그러한 사람들로 꽉 메어져 있어 끊임없이 분쟁과 불화의 연속으로 이어져오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어제는 천주교의 대규모 인원(1700명 추산)이 참가하는 11마일 걷기대회가 열렸다. 천주교회에서 아침 9시30분 출발해 오후 4시에 도착하며 대주교님의 축복으로 마무리되었다. 마치 누구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걸음 경험담을 연상하면서.
수년전 워싱턴의 한 지인(모니카 조 자매)이 산티아고 순례길 경험담을 열심히 해주던 생각이 난다. 발바닥 물집은 물론, 온통 발톱이 피멍이 들어 빠지는 고행, 수난의 순례여행이었다고, 단순히 호기심과 모험심 만으로는 아니 된다고.
또 한편으로 골드러시(gold rush: 1848-1855년)때건 1930년대를 휩쓸던 대공황 시절, 그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생각하면 이 정도 걷기 순례길은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필자로선 뜻밖의 일이 벌어졌음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의 여파로 일주일에 한 번의 산행도 못한지가 2여년이 되어 등산화 신어본 지도 꼭 그 기간처럼 되었다. 소복하게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구두약을 발라‘ 광’까지 내어 한껏 마음이 날아갈 듯 부풀어 있었는데 웬걸 걷는 도중 발에 온통 통증을 느끼게 되었다. 마지막 구간 2-3마일을 남겨두곤 차량신세를 져야만 했으니 이런 창피가 어디 있을까.
허나 극구 변명을 한다손 치면 창피한 것보다 순례의 의미를 더욱 되새길 수 있었지 않나 싶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순례길은 꽃길이 아니며 편한 것만 원한다면야 집안에서 편안히 지내는 편이 훨씬 나으리라. 아다시피 순례길 체험은 선각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보려는 심정과 그 분들의 성스러웠던 모든 사고와 행동들을 조금이나마 흉내 비슷한 것만으로라도 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아닐까?
등산 때 최고령자 그룹에 속하지만 늘 선두 그룹으로 정상까지 오르곤 했던 필자였기에 이 정도 순례길은 별 문제가 없으려니 당연히 여긴 게 큰 잘못이었다.
첫째 오래된 등산화이나 2년간 사용을 아니 했음으로 새 신발과 별 차이가 없고 낡아 원래의 보호 느낌과 효능 저하를 생각 못한 게 불찰이라면 불찰이다.
두 번째 산악지역은 돌이나 흙길이지만 도시 길은 콘크리트길이라는 걸 미처 생각 못했는데, 아무리 평지란 한들 쿠션(Cushion) 감각이 없는 콘크리트길은 결코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자만과 오판의 결과는 오직 참담할 뿐이다. 집에 와 보니 왼쪽 엄지발톱 아래는 검게 피멍으로 곧 빠질 것 같고 오른쪽 발바닥 앞쪽은 물집이 크게 생겨 터지기(발바닥은 원래 두툼해서 잘 터지지 않음) 직전이다. 이러했기에 그 아무리 상체와 다리가 튼튼해도 그걸 받쳐주는 발바닥의 기초가 엉망이었으니….
만사는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는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겠다. 베드로라는 말은 반석(Peter)이라는 튼튼함, 굳건함의 의미, 사상누각(砂上樓閣)은 허무, 허영의 대명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작은 순례길 참가기다.
<문성길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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