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향토예비군법이 어떻게 바뀌었는 지 잘 모른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군대3년을 마치고 5년정도 동원예비군 훈련을 매년 몇십시간씩 받아야 했고, 그 소집 훈련을 마치고 나서도 예비전력으로 거의 10년정도 ‘소집대기’를 해야 했다. 나이 40이 넘어야만 완전히 국방의 의무를 마치게 된다. 그 기간까지는 일단 ‘전쟁’이 나면 전쟁터에 나갈 준비를 하고 살았던 것이 필자 또래 한국 남자들이 태어난 조국을 위한 충정이었다. 그 어느 누구든 예외도 없었고, 그래서 특별한 불만을 가지지도 않았다. 유독 사회지도층 중에 군미필자들이 많다는 것은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남자들 모이면 군대이야기, 축구이야기뿐이고 이것이 ‘꼰대들의 아이콘’이라고 하니 이제는 하다가도 서로 눈짓으로 멈추어 버리지만 그래도 그만큼 할 얘기도 많고, 그게 눈치봐 가면서 피할 이야기도 아니려니와 군대 3년의 가치와 희생은 지금 생각해도 고귀한 것이다.
논산훈련소 기초훈련을 마치고 재경부대 열차를 타고 용산역에 도착하니 얼굴하얀 귀한집(?) 자제들은 한두명씩 호출해서 먼저 불려 나갔다. 국방부, 육본, 보안사, 헌병대 등 소위 특과(?)들이 모두 내리고 나서 모두 눈만 말똥거리고 있으니 열차 밖에서 군복이 특이한 까만 베레모 쓴 군인들이 왔다갔다 한다. 잔뜩 주눅 든 우리를 천정 가림막도 없는 군용트럭에 태우더니 서울 시내 한복판을 질주한다. 달리는 트럭 위 군가소리가 운전석에 안들린다고 느닷없이 시내 한복판에 차를 세우더니 내리게 해서 오가는 시민들이 모두 보는 아스팔트에서 좌우로 굴리는 기합을 준다. 목이 터져라고 군가를 부르고 도착한 곳이 남한산성 기슭에 있는 ‘일기당천’ 대한민국 최강 특수전 사령부(공수부대)였다. 하필이면 왜, 내가 이곳에 왔어야 했는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옆구리를 차면 배로 막고 주먹이 날아오면 어금니를 꽉 물면서 버티라고 했다. 노벨 문학상의 작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수용소의 하루’ 같은 생활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렇게 3년간 청춘을 저당 잡히고 몸뚱이 굴려 살아나와야만 했다. 그게 효도라고 배웠다. 몸 성히 제대하는 것이니 맞는 말이다.
2019년 가을에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가 아무리 국경을 막고 별짓을 다해도 전 세계 구석구석에까지 퍼져나가는 데는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극단적 민족주의가 횡횡하는 현 시점이지만 지구촌 어느 한 곳의 위험이 순식간에 전체의 위험이 되는 게 이제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우크라이나에서 발발한 전쟁이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가운데 전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징조(symptom)가 심상치 않다. 지구의 지각에만 판이 있는 게 아니다. 지상의 국경간, 대륙간, 안보동맹간에도 엄존한 판이 있고, 판과 판이 부딪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지진과 전쟁이 난다.
동아시아에서 세계 1, 2위 강국인 미국과 중국이 전선을 이루고 있는 한반도- 조어도(쎈카쿠 열도)- 대만- 남중국해(필리핀)를 잇는 지상의 판이 꿈틀거리고 있다. 미영패권, 미러패권, 미일패권의 시대에서 이제는 미중패권의 시대다. 그 동안에는 그 어느 국가도 미국 국력의 40%를 넘지 못했다. 그런데 중국은 현재 미국의 70%다. 그런데도 중국은 1990년대 환율 하나로 일본이 처참해진 것을 보고 절대로 서두르지 않고 납작 엎드려 있다.
세계 10위 경제대국, 6위 군사대국의 한국은 ‘통일 한국’ 이라면 모를까 세계 1, 2, 3, 4위국들에 싸여 있는 상황에서는 아직도 그 자체 위력이 주변에 비해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남북한 경제력 차이(60:1)도 이런 상황에서는 무의미하다. 이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더욱 안전할지도 모른다. 학자에 따라서는 향후 30년내 미중이 직접 충돌할 가능성은 적다고 한다. 그 사이에서 영리하게 생존해야 하는 이유다. 그 사이에 통일을 이루길 오늘도 소망한다. 그래서 홀로 마음이 급하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이 당장 휴전을 하더라도 그 후유증은 이미 상상 이상이다. 이는 약소국을 놓고 ‘줄세우기, 줄서기, 편가르기’가 낳은 비극이다. 상대적으로 강한 러시아와 NATO가 우크라이나를 서로 자기줄에 세울려다가 이 지경이 되어 버렸다. 그런 흐름에 당당할 수 있는 자주국가 건설은 해당 국민들의 로망이다. 그래서 조금 올드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국강병(富國强兵)’은 지도자들의 이데아였다. 아시겠지만 태권도 배워서 사람(약자) 두들겨 패라고는 절대 가르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게 모두 넋두리로 치부되어버린다. 생전에 꿈꾸어 벗어날 줄만 알았던 ‘야만의 시대’를 향해 거꾸로 한발짝 더 진입하는 듯하다. 강자들의 습관적, 즉흥적, 무의식적 반응은 여지없이 ‘평화’를 깨트려 버린다. 불쌍한 인류가 지금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강자들에게 백년하청 너그러움을 구하느니 ‘독사가’라도 부르면 마음이 좀 진정될까,
‘검푸른 복장 삼킬듯 사나워도 나는 언제나 독사같은 사나이 막걸리 생각날 때 흙탕물을 마시고 사랑이 그리울 땐 일만이만 헤아린다. 사나이 한목숨 창공에다 벗을 삼고 굳세게 살다가 깡다구로 죽으리라 아~아 창공은 나의 고향 창공은 낙원이란다.’
<강창구 평통워싱턴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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