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가 밀피타스입니다(Leaving the City of Milpitas).” 코요테 크릭 트레일을 따라 부지런히 북쪽으로 걸었더니 어느새 도시와 도시의 경계에 다다랐다. 이제 몇 걸음만 옮기면 행정구역 상 프리몬트다. 프리몬트 대로(Boulevard)를 따라 테슬라 공장까지 가려다가 아쉬운 마음에 한참을 서성인다. <걸어서 실리콘밸리>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여건이 닿는 한 자연친화적인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만 코요테 냇물을 따라서 둘러가기로 결정한다.
신선한 공기를 기대하며 발걸음을 뗀 지 5분도 되지 않아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예상치 못하게도 샌프란시스코만(Bay)에서 거대한 쓰레기 매립지와 재활용 센터를 마주했다. 사람 키보다도 큰 압축 폐기물의 위용은 순식간에 도보 순례자를 압도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기계를 이용한 작업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됐다. 전깃줄에 줄지어 앉은 새들은 이미 익숙하다는 듯 태연하게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못볼 풍경이라도 본 것처럼 서둘러 현장을 빠져나왔다. 보도가 없는 곳에서 트럭의 행렬을 피하려니 절로 신경이 곤두섰다.
실리콘밸리와 쓰레기 매립지는 썩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지만 산타클라라 카운티에만 23개의 ‘슈퍼펀드(Superfund)’ 지역이 있다. 언뜻 진취적 느낌의 벤처캐피털이 연상되는 ‘슈퍼펀드’는 사실 정반대를 의미한다. 슈퍼펀드 프로그램은 미국 환경청(EPA)이 유해폐기물 오염지역을 지정해 복구하는 연방정부의 대표적 환경정화 사업이다. 다시 말해 슈퍼펀드는 유해폐기물에 의해 오염된 곳으로 공식 인증된 지역을 가리킨다. 카운티 기준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은 슈퍼펀드를 보유한 곳이 바로 산타클라라다. 반도체 산업의 부흥으로산타클라라 밸리는 실리콘밸리로 우뚝 섰지만 동시에 미국에서 가장 오염된(contaminated) 지역이 되었다.
샌프란시스코만을 따라가다 마주친 쓰레기 매립지와 재활용센터는 걷는 내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저 쓰레기더미에 내가 먹은 과자봉지와 내가 마신 음료수컵과 내가 사용한 커피빨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언젠가는 완벽한 재생과 순환 시스템이 구축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기술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실리콘밸리의 정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1인분 인생을 사는 개체로서 감히 자문해본다. 지금 나는 필요 이상의 소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소비가 미덕인 사회에서 절약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현존하는 대표 혁신가 일론 머스크는 기업을 세우기 전 ‘1달러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창업을 앞두고 만약 실패했을 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실험한 것이다. 일론 머스크는 수퍼마켓에서 30달러를 내고 산 핫도그와 오렌지로 한 달을 버텼다. 하루 1달러로 살면서 욕구를 통제해 나가는 자신만의 실험에 성공하고 창업을 결심했다. 비즈니스가 뜻대로 되지 않아도 한 달에 30달러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친환경 에너지와 우주개발로 지구를 구원하겠다는 원대한 비전을 가진 젊은이에게 돈은 꿈을 달성하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기술과 정신의 융합을 가장 잘 구현한 인물로 평가받는 스티브 잡스도 마찬가지다.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그가 인용해서 널리 알려진 슬로건 “늘 배고프게, 늘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에서 배고픔은 은유가 아니다. 1991년, 잡스는 자신이 중퇴한 리드 대학 명예 학위수여식에서 이미 ‘항상 배고플 것(Being hungry all the time)’을 촉구했다. 성공한 기업가가 되고도 자신의 철학에 따라 과일만 먹는 식단을 죽을 때까지 실험했다. 사망을 앞둔 잡스는 이윤이 아니라 위대한 제품이 최고의 동기 부여였다고 말했다.
잡스처럼 세상을 바꾸거나 머스크처럼 지구를 구할 도리가 없는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부터라도 덜 먹고 덜 쓰는 삶을 시작해야겠다. 어쩌면 배고픔이란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견뎌야 할 과정이 아니라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일생동안 추구해야 할 가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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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진 (KOTRA 실리콘밸리무역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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