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오스카 후보작들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는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벨파스트’(Belfast)이다. 2021년 토론토국제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제94회 아카데미 7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벨파스트’는 흑백 영화지만 적절한 모멘트에 색을 뿌려 ‘컬러의 마법’을 활용한 수작이다. 영국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의 지명을 그대로 영화 제목으로 차용했고 “정말...벨파스트를 떠나야 하나요?”라는 아홉살 소년 버디의 대사는 잊을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추억을 곱씹게 한다.
맑은 날이면 골목에 나와 음악과 함께 춤을 추고 해질녘엔 큰 소리로 아이들을 불러 저녁을 먹는, 이웃 주민들 모두가 서로의 가족을 알고 아끼던 1969년의 벨파스트, 아홉 살 소년의 눈에 그의 부모는 눈부시게 매혹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사는 세상은 훨씬 더 크게 보인다. 찬란한 햇살 아래 골목을 점령한 아이들, 거리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주민들을 비추던 목가적인 풍경이 폭도들의 등장으로 혼돈에 빠지는 도입부부터 이 영화의 출발점은 아홉 살 소년 버디의 상상력이다. 벨파스트는 아홉 살 소년이 아는 유일한 세상이었고 그런 버디의 세상이 갑자기 들이닥친 시위대에 의해 바뀌기 시작한다.
영화 ‘벨파스트’에 등장하는 버디는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허구적 분신이다. 브래너 감독이 아홉 살이던 1969년 8월 벨파스트는 종교적 분쟁으로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벨파스트 북부는 극심한 타격을 입었으며 특히 많은 민간인들이 사망했다. 당시 벨파스트 시민들은 높은 임금을 주는 영국으로 통근을 했는데 폭동 이후 바리케이드가 세워지면서 가족과의 만남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역사적 배경을 보면 아일랜드는 1921년 북부 얼스터 지방의 6개주만 독자적인 의회를 구성하는 조건으로 영국의 일원으로 북아일랜드가 남았다. 1949년 아일랜드 공화국이 선포됐지만 영국에 남은 북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 구교 세력과 영국 잔류를 요구하는 신교 세력의 투쟁이 극심했다. 이로 인해 불안과 공포에 빠진 북아일랜드 노동자들은 가족의 반대에도 정든 동네를 떠나는 선택을 해야했다.
케네스 브래너 감독은 어린 시절 영화와 TV를 보면서 갖게 된 풍부한 상상적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을 알아가는 소년 버디의 이야기에 관객들이 즐거워하길 기대했다. 그리고 벨파스트의 정신과 활력, 생기 넘치는 유머를 통해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받기를 바랬다. 흑백영화와 컬러TV가 공존하던 시기 어린 시절를 보낸 브래너 감독은 마와 파, 그래니, 형 윌과 극장 나들이를 한 버디가 마주한 영화의 첫인상을 황금빛 순간으로 표현한다. 브래너 감독의 기억 속 벨파스트는 흑백 세상이었지만 극장에서 만난 ‘컬러’는 그 만큼 충격이었던 것.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브래너 감독은 ‘스티브 맥퀸 주연의 ‘대탈주’를 극장에서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압도적인 스크린, 웅장한 사운드에 빨려들어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치 다른 세계로 순간 이동한 것 같았다”며 “선명한 색상의 화려한 스펙터클을 통해 TV와 경쟁을 펼친 그 시대 영화를 ‘할리우드 블랙 앤 화이트’라 부른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고 설명했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화려하고 서사시적인 느낌을 내는, 앙리 카티에르 브레송의 흑백 포토저널리즘 같은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브래너 감독의 연출 의도는 적중했다. 게다가 ‘벨파스트의 전설’ 밴 모리슨이 담당한 영화음악이 레트로 감성을 충만하게 만들어 관객들로 하여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벨파스트’의 강점은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다. 버디를 실감나기 연기한 신인 주드 힐(12)을 비롯해 파역의 제이미 도넌, 마역의 케이트리오나 발피, 팝역의 시아란 힌즈, 그래니역의 주디 덴치까지 모두 아일랜드 출신이다. 케네스 감독이 표현한 그대로 ‘선물’ 같은 배우들이 유머와 인간애로 가득한 영화를 만들어낸 것.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벨파스트에 남기로 결정한 그래니(주디 덴치)가 떠나는 가족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뒤돌아보지 말라”고 혼잣말 하는 장면이다.
브래너 감독은 시력이 나빠져 더 이상 대본을 읽기 힘든 주디 덴치를 캐스팅하기 위해 직접 집으로 찾아가 1시간 30분 동안 그녀의 주변을 맴돌며 시나리오를 읽었다고 한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나일 강의 죽음’ ‘오리엔트 특급살인’의 감독이자 탐정 에르큘 포와르역을 연기한 배우인 케네스 브래너가 읽어준 ‘벨파스트’의 대사들에 주디 덴치는 1분도 망설이지 않고 출연제의를 수락하게 만들었다. 올해 87세의 명배우 주디 덴치는 지난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씨가 시상할 예정인 제94회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 부문 후보에 올라있다. 두 배우가 나란히 선 장면이 보고 싶긴 하지만 ‘벨파스트’의 그래니가 지닌 존재감은 이미 대체 불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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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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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야 한다면 뒤돌아보지 말아야 하것만 이 트 라는 저질 정신이상 사기꾼 차별주위자..는 아직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개골개골 더 요상한건 고걸 알만한자들 공화당의원님들이 저질 미 궁민들이 더나 요상한건 한인들이 아직도 그 트의똥무니를 따라다니며 트 자만나와도 길길이 날뛰며 입에 침을튀긴다는 겁니다...요게 어디 바보들이 아니고 또 무어리 설명할수있을까요....ㅉㅉ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