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 나가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가로로 쓰는 횡서 즉 가로쓰기와 세로로 써가는 종서 즉 세로쓰기가 그것이다.
가로쓰기 즉 횡서는 다시 두 가지로 나뉘는데 왼쪽에서 시작해서 오른쪽으로 써가는 방식인 좌횡서와 이와는 반대로 오른쪽에서 시작해서 왼쪽으로 써 나가는 우횡서가 있다. 지금 우리가 한글을 쓰는 방식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가는 좌횡서이다. 영문도 우리와 같이 좌행서이다. 우횡서 즉 오른쪽에서 시작해서 왼쪽으로 써 나가는 방식은 아랍권의 문자가 그렇다. 그들은 오른쪽에서 시작해서 왼쪽으로 글을 써 나간다.
다음은 종서 즉 세로쓰기다. 종서는 세로로 글을 쓰는 방식인데, 이름 그대로 위에서 시작해서 아래로 써 나간다. 그리고 한 줄을 다 적은 후 다음 줄로 넘어가는 방식이 두 가지가 있는데, 다음 줄이 오른쪽으로 넘어가는 것과 왼쪽으로 넘어가는 것이 있다. 첫 번째 방식은 왼쪽 상단에서 시작해서 세로로 한 줄을 쓴 후 그 줄의 상단 오른쪽에서 다음 줄을 시작하는 방식인데, 가능은 하지만 실제 그런 예는 극히 제한적이다.
세로쓰기를 할 때에는 오른쪽 상단에서 시작해서 한 줄을 적은 후 그 줄의 상단의 왼쪽에서 새로운 한 줄을 세로로 써 나간다. 한문을 적는 방법이 이렇고 한글이 가로쓰기로 바뀌기 전까지 세로로 쓸 때에는 이렇게 썼다. 오른쪽 위에서 시작한다고 해서 우종서라고 한다.
우리 한글은 가로쓰기를 해도 세로쓰기를 해도 불편함이 없는데, 영문은 세로쓰기가 몹시 불편하다. 직접 써보면 안다.
한글을 횡서로 쓰면 ‘대한민국’이 된다. 아무 문제없다. 친숙하다. 이번에는 종서로 써본다.
대
한
민
국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세로쓰기 한글이 많이 어색하겠지만 환갑을 지난 사람이라면 ‘아… 맞아… 전에는 이렇게 썼어…’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사실 일간 신문들도 1980년대에 들어서기 전에는 세로쓰기였다. 어린이가 보는 잡지는 가로쓰기였지만 대부분의 잡지나 단행본도 세로쓰기였다.
지금이니까 한글의 세로쓰기가 낯선 것일 뿐이고 예스럽게 보이기 위해서는 일부러 세로쓰기를 하기도 한다. 일본은 인터넷 같은 경우는 가로쓰기를 하지만 종이 인쇄물인 경우에는 지금도 세로쓰기가 널리 쓰인다고 한다.
이번에는 영문 차례이다. 가로쓰기의 ‘America’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America’를 세로로 쓰면 문제가 달라진다.
A
m
e
r
c
a
영문을 이렇게 세로쓰기로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좌우 공간이 워낙 좁아 가로쓰기를 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쓰지는 않는다. 실제로 영문을 위와 같이 세로쓰기 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가로쓰기를 한 후 그것을 옆으로 뉘이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것의 대표는 책 표지이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영어책을 생각해보면 된다. 두께가 두꺼운 전문서적이 아닌 대부분 보통 책의 제목과 저자가 그렇게 되어있다.
책꽂이 앞에서 서서 영어로 된 책을 들여다볼 때 제목과 저자를 금방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책 제목과 저자를 확인하려면 고개를 옆으로 꺾고 봐야 한다.
그래서 영어로 된 책은 책꽂이에 꽂는 것보다는 책을 눕혀서 쌓아 놓는 것이 책 제목과 저자를 더 빨리 알아보는 방법이 된다.
우리는 책을 만들 때 앞면과 뒷면은 가로쓰기로 하고 책꽂이에 꽂은 후 보게 되는 책의 옆면은 세로쓰기를 하면 되니까 꽂혀 있는 책의 제목과 저자를 알아보기 쉽다. 한글의 세로쓰기로 얻는 편익인 셈이다. 아 자랑스러운 우리 한글.
한글의 세로쓰기에 대해 추측 하나 덧붙인다. 한글 창제 이전에는 우리도 한문을 썼기 때문에 당연히 세로쓰기를 했다. 그러니 한글을 만들 때에도 세로쓰기를 전제로 했을 것이다. 얼마나 빨리 읽느냐 문제가 아니라 글자를 ‘쓴다’는 면에서는 한글을 세로로 쓰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을 쓸 때 각 글자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 글자의 시작하는 부분까지의 거리를 생각해보면 세로로 쓸 때 필기도구의 이동거리가 더 짧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대’의 마지막 부분은 ‘ㅐ’의 오른쪽 밑이고 ‘한’의 시작하는 부분은 ‘ㅎ’의 위에 있는 작은 줄 또는 점이다. 이 둘 사이를 이동하는 거리가 가로쓰기 할 때보다는 세로쓰기 할 때가 더 짧을 것이라는 생각은 나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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