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0일 제네바에서 러시아와 미국 주도의 NATO 안보 동맹간의 회담이 성사 없이 끝나자 푸틴은 기다렸다는 듯 2월 24일 이른 아침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을 시작했다.
미국은 즉각 우려를 표시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유럽연합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단지 미국은 전쟁의 유럽 확산과 러시아의 핵 사용을 막는데 주력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노선은 통찰력이 높이 평가되는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차관의 전략으로 알려졌다. 2차대전 이후 유럽연합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미국과 EU의 반대에도 왜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까? 러시아는 나토가 동쪽으로의 확장을 중단하고 구 소련의 우크라이나 및 그루지야 공화국과의 군사협력을 종료할 것이라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보장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제안은 미국과 서방에 의해 단호하게 거부되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러시아는 400년, 500년, 1000년 동안 적대 세력에 둘러싸여 있었다. 러시아가 팽창하지 않을 때마다 1237년 몽골을 시작으로 1708년 스웨덴(샤를 12세), 1812년 프랑스(나폴레옹), 1941년 독일(히틀러)의 침략을 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초원을 건너는 약탈자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변에 국가의 벨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정학적 완충지역은 팽창과 방어의 최후 방어막이다. 이러한 완충 국가에는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가 포함된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자1999년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체코·폴란드·헝가리 등이 나토에 가입했으며, 뒤를 이어 2004년 루마니아·불가리아·슬로바키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슬로베니아가 나토에 가입했다. 러시아는 구소련에 속한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했을 때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확대가 계속되면서 러시아의 우려는 점점 커졌다.
본격적인 첫 라운드의 게임은 2008년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를 나토 회원국으로 지명하기로 한 부시 행정부의 결정으로 시작되었다.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 모두 2008년 회원국 자격 기준에 근접하지 않았고 다른 나토 회원국들이 이를 포함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완전히 설명되지 않은 이유로 그들의 반대를 무시했다.
그 결과 나토가 그들이 원한다면 가입을 허락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그것은 러시아가 2008년에 그루지야와 전쟁을 하기 위해 준 정당화 중 하나였다. 그루지야가 서방에 너무 가까워지고 있었고 그것이 레드 라인이었다. 전략 요충지 카프카스를 둘러싼 미·러 세력 다툼에서 미국의 지원 속에 추진되었던 그루지야의 나토 가입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다음 라운드는 2013년과 2014년에 있었다. 2013년 우크라이나 대통령인 야누코비치는 친·러 노선을 걷다 미국과 서방이 지원한 유로마이단 시위단에 의해 축출되고 시위대는 친서방 과도정권을 수립했다. 하지만 친서방 정권에 반대한 크림 반도와 돈바스 동부에서 친·러계 주민들이 분리독립을 주장해 2014년 우크라이나의 영토였지만 러시아인이 다수 거주하였던 크림 반도를 러시아가 점령해 자국 영토로 합병해 버렸다. 그리고 푸틴은 계속해서 돈바스 분리주의 반정부군을 지원하며 우크라이나 전복을 시도해 왔다.
우크라이나는 1992년부터 2008년까지, 즉 나토가 어리석게도 우크라이나가 동맹에 가입할 것이라고 발표한 해까지 사실상 중립적이었다. 그 기간의 어느 시점에서도 침략의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은 권력과 안보를 놓고 친·러 v 친·서방 사이에서 무모한 정쟁(政爭)에 휘말렸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이 시작된 것은 두가지 잘못된 선택에서 비롯됐다. 올바른 판단을 했다면 이 모든 사건을 피할 수 있었다. 첫째는, 우크라이나는 벨라루스와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구소련 3개국 중 하나였으며,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자국 영토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1994년 러시아·미국·영국은 우크라이나 독립을 승인하면서 안보를 약속하고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핵무기를 포기하고 러시아로 보내 해체하는데 동의하는 조건을 요구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안보 보장을 제공한 부다페스트 각서(Budapest Memorandum)를 짓밟았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이 협정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불법 합병으로 깨졌다.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크림 반도를 지킬 수 있었다. 전쟁은 항상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결정은 큰 실 수였다.
둘째는, 현 젤렌스키 정부는 친·러 v 친·서방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지만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되자 미국과 EU 로부터 재정적·군사적 지원을 받으면서 반·러 노선을 표방하며 나토 가입 추진과 친서방 정책으로 돌아서 푸틴을 자극했다. 조금이라도 현실주의의 역학관계를 이해하며 핵심 통찰력에 의존했다면 현재의 위기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불행한 혼란의 평화로운 해결을 위한 최고의 희망은 우크라이나 국민과 지도자들이 러시아와 서방이 싸우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그들의 국가에 재앙이 될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는 ‘나토 회원국’이 되지 않거나 러시아 주도의 ‘집단안보조약기구’에 가입하지 않을 것을 공식적으로 서약해야 한다.
미국은 나토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서 러시아에 대한 적절한 균형 장치가 만들어지기 전에 유럽에서 주둔을 줄일 수 있는지 여부를 숙고해야 한다. 아시아로의 중심축은 유럽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유럽연합은 주권과 안보가 위태로울 수 있는 새로운 세계에 신속하게 대비해야 한다.
제재는 크렘린이 향후 몇 개월 및 몇 년 동안의 조치를 계획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역학을 바꿀 수는 없다. 기존 전략이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워싱턴은 이를 새로운 배열로 대체하는 최선의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초대륙인 유라시아(Eurasia)가 우리 눈앞에서 재편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유럽과 아시아는 새로운 질서를 맞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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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정치 철학자,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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