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이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 “연방대법원에 여성법관은 몇 명이면 충분할까?” 긴즈버그의 답은 “9명”이었다. 연방대법을 여성이 독차지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수백년 차별로 벌어진 격차와 뇌리에 박힌 불공정을 바로잡으려면 여성법관 몇 명으로는 턱도 없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가 어수선하던 지난달 25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대법관 후보를 지명했다. 이번 회기를 끝으로 물러나는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의 후임으로 바이든은 흑인여성 케탄지 브라운 잭슨(51)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지명했다. 흑인여성이 대법관에 지명된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이다. 이로써 바이든은 대선 캠페인 때의 약속을 지켰고, 흑인사회와 여성 및 진보진영은 이정표적 사건이라며 환영했다. 후보를 ‘흑인여성’으로 못 박은 것과 관련, 공화당 일각에서는 차별적 비아냥이 있었다.
왜 ‘흑인’이고 ‘여성’이어야 하는가. 미국은 다인종 사회이지만 다양한 인종이 온전하게 공존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력이 거주지역을 가르고, 기득권 집단이 변화에 소극적이면서 사회의 상층부로 갈수록 하얗다. 최고권위의 상징인 연방대법은 특히 하얗다.
“오래도록 연방대법원은 미국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바이든은 잭슨 판사 지명 발표 중 말했다. 남녀 반반에 인종이 다양한 게 미국의 모습이지만 현재 연방대법은 남성 6명 여성 3명, 백인 7명 유색인종 2명이다. 대법 233년 역사를 돌아보면 역대 대법관 115명 중 거의 전부(108명)가 백인남성이다. 여성은 5명 비백인은 3명뿐이었다. 투표권, 교육, 취업, 거주지 등 미국민들의 삶은 백인남성의 관점에서 재단되었다는 말이 된다. 다양성 반영을 위해 바이든은 인종과 성별, 이중으로 소수계인 흑인여성을 지명했다.
인종이 다양하고, 인종편견이 엄존하는 사회에서 같은 생김새가 갖는 힘은 크다. 이민초기 한인학부모들이 낯선 미국학교에서 한인교사를 만났을 때의 안도감이 좋은 예이다.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각 인종과 민족을 대표하는 정치인 혹은 판사가 필요한 것은 공정성 때문이다. 집단이나 개인이 억울한 일 당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우받으려면 경험과 정서가 비슷해서 그 집단/개인을 대변할 수 있는, 같은 생김새의 대표가 필요하다. 흑인여성 대법관의 상징적 의미는 크다.
소수계가 판사석에 앉으면 재판은 달라질까. 답은 예스이자 노우이다. 연방법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판사의 인종이나 성별은 재판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미국 최초의 여성대법관인 샌드라 데이 오코너가 한 말이 있다. “나이든 현명한 여성과 나이든 현명한 남성이 도달하는 결론은 같을 것”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그러하다.
하지만 성차별이나 인종차별 케이스는 다르다. 판사의 정체성이 영향을 미친다. 성차별 소송에서 여성판사는 남성에 비해 15%, 인종차별 소송에서 흑인판사는 백인에 비해 38% 더 피해자 승소판결을 내린다. 3인 합의부 재판에서는 여성/흑인 판사가 한명만 배석해도 차별 관련 판결이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봄 연방대법에는 애리조나 학교 대 13세 소녀 케이스가 올라왔다. 소녀가 아이뷰프로펜을 팬티 속에 감췄다며 교직원들이 양호실에서 옷을 홀딱 벗기고 몸수색한 것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가리는 재판이었다. 당시 브라이어 대법관은 이런 말로 좌중을 웃겼다. “내 어릴 적 경험으로 볼 때, 아이들은 체육복 갈아입느라 하루에 한번은 학교에서 옷을 벗었고, 그때면 누군가가 팬티 속에 뭔가를 찔러 넣곤 했다.” 법정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때 웃지 않는 한사람이 있었다. 당시 유일한 여성대법관이던 긴즈버그였다. 그는 말했다. “그들 누구도 13세 소녀가 되어본 경험이 없다. 여자아이에게 얼마나 예민한 나이인지 그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이후 긴즈버그와 남성동료들 사이에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해 여름 연방대법은 소녀의 손을 들어주었다. 여성법관의 존재가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했다.
지난해 3월에는 연방하원에서 사법부의 다양성 관련 청문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 에드워드 첸 연방지법 판사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연방정부 대 코레마추’ 케이스를 예로 들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 후 미국은 2차 대전에 참전하면서 서부해안을 군사지대로 선포하고 일본계 주민들을 강제추방, 집단수용했다. 스파이 활동으로 국가안보를 해칠 위험이 있다는 논리였다. 이에 23세 일본계 남성 프레드 코레마추가 소송을 제기했다. 똑같이 적국인 독일계와 이탈리아계는 그대로 두고 일본계만 추방한 조치를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연방대법은 일본계가 더 위험한 경향이 있다며 연방정부의 결정을 옹호했다.
첸 판사는 물었다. “당시 법정에 일본계 판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다인종 사회에서 우리와 생김새가 같은 지도자들의 존재는 중요하다. 그들이 있어 우리의 권익이 지켜지고, 그들을 보며 우리의 후손은 꿈을 키운다. 흑인여성 대법관은 소녀들과 유색인종 아이들에게 롤 모델이 될 것이다. 조만간 우리와 같은 생김새의 연방대법관도 보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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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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