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민주주의의 필수 불가결한 장치이다. 공직선거를 할 때 한국에서는 왜 선거를 하는지에 따라 선거하는 날이 달라지지만 선거를 하는 요일은 정해져 있다. 수요일이다. 공직선거를 수요일에 하는 것은 법률로 정해져 있다. 선거하는 날을 법률로 정하기 전에는 집권자 측에서 이리저리 계산을 해본 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선거일을 정한다는 공정성 시비가 있어왔다. 심지어 유명 역술인에게서 선거일을 받아온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래서 선거하는 요일을 법률로 정했다. 처음에는 목요일로 정했다가 나중에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수요일로 바꾸었다.
선거 요일을 법률로 정할 때 주목한 점은 선거일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었다. 즉 임시 공휴일로 지정된 선거일에 ‘선거일’에 초점을 맞추어 선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임시 공휴일’에 방점을 두어서 놀러가는데 치중해서 선거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한 의미를 퇴색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래서 주 6일 근무하던 시절에는 월요일과 토요일은 처음부터 논외가 되었다. 월요일이나 토요일을 선거일로 잡으면 선거를 하지 않고 일요일이 이어지는 연휴를 즐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같은 의미로 화요일과 금요일도 선거일로 정할 수 없다. 화요일로 정하는 경우에는 월요일 하루를 휴가 신청하면 일-월-화로 이어지는 3일 연휴가 되고, 금요일을 선거일로 정하는 경우에도 다음날인 토요일 하루를 휴가로 만들 수만 있다면 금-토-일로 이어지는 3일 연휴가 된다. 결국 투표장으로 가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처음에는 목요일에 선거를 하는 것으로 정했다. 선거일을 연휴로 이용하려면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을 휴가 신청해야 하는데 당시 직장 정서상 휴가 목적이 뻔히 보이는 이런 휴가 신청은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목요일을 선거일로 정했었다.
그러다가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수요일로 바뀌었다. 주 5일 근무제에서는 토요일이 쉬는 날이 되었기 때문에 목요일을 선거일로 유지하는 것이 조금 곤란해졌다. 선거일 다음날인 금요일 하루 휴가를 내면 목-금-토-일의 4일 연휴가 만들어져서 투표율이 현저히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화요일로 정하는 것도 좀 꺼려진다.
화요일을 선거일로 정하는 경우에는 선거일 전날인 월요일에 월차를 내는 방법 등으로 하루 휴가를 내면 토-일-월-화의 4일짜리 연휴를 만들 수 있어서 이 역시 투표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래서 연휴를 만들기 어렵도록 수요일에 선거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이제는 미국의 경우에 관해 알아볼 차례이다. 미국은 공휴일을 지정할 때에 ‘무슨 달, 몇 번째 무슨 요일’로 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2월 세 번째 월요일은 대통령의 날, 10월 네 번째 목요일은 추수감사절 하는 식으로 말이다. 선거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선거를 화요일에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1월 첫 번째 화요일, 보다 정확히는 11월 첫번째 월요일 다음 화요일(The Tuesday after the first Monday of November)이다. 화요일에 선거를 한다면 월요일 하루를 휴가 신청해서 토-일-월-화로 이어지는 연휴를 만들어서 투표율이 떨어질 것 같은데, 그건 그렇지가 않다. 미국은 선거하는 날이 임시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화요일에 선거를 한다고 해도 연휴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거일이 임시 공휴일이 아니라는 점이 한국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다.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시점도 한국과 미국은 다르다. 한국은 선거일 전날 밤 12시에 모든 선거운동이 종료되어 선거 당일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은 선거 당일에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선거 당일 투표장 부근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피켓을 들고 있거나 몸에 띠를 두른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한 사람만 뽑기로 한 경우 선거 결과 최다 득표자가 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당선인으로 정하면 된지만 최다 득표자가 두 사람 이상일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 누구를 당선인으로 할 것인지도 대비해야 한다. 이 역시 법으로 정해져 있다.
한국의 지방 자치단체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는 연장자가 당선된다. 즉 득표수가 같다면 나이가 많은 후보자가 당선인이 된다는 뜻이다. 나이가 무슨 벼슬이냐고 항의하지 말자. 그저 나이를 경험으로 환산해주는 우리의 미풍양속이라고 생각하자. 그런데 대통령 선거는 조금 달라서 연장자 당선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표결로 당선인을 결정한다.
미국은 최다 득표자가 두 사람 이상일 경우에는 각 주의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 나이가 많은 연장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하지는 않는다. 나이를 기준으로 당선인을 정하는 것은 차별에 해당한다. 인종이나 성별을 기준으로 차별할 수 없듯이 나이를 기준으로 차별해서는 안된다.
버지니아주의 경우 2017년에 뉴폿뉴스 선거구 하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의 득표수가 같게 나왔다. 이때 버지니아 주법에 따라 ‘추첨’(by lot)으로 당선자를 결정했다. 나이가 아니다. 필름통 두 개에 두 사람 이름을 적은 종이를 각각 넣은 후 큰 그릇에 담아 놓고 버지니아주 선거관리위원장이 필름통 하나를 뽑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추첨 즉 제비뽑기는 서양에서는 낯설지 않은 의사결정 방식이다. 기독교의 신약 성서에서도 선택을 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질 때에도 제비를 뽑았고, 예수의 12사도 중 배반자 유다를 대신할 사람을 선택할 때에도 제비를 뽑았다. 구약 성서에서도 지파별로 땅을 나눌 때 제비뽑기를 하는 얘기가 나오고 요나가 탄 배가 큰 폭풍을 만났을 때 누구 때문인지 알아보기 위해 제비를 뽑았다는 얘기도 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추첨을 통해 많은 공직자를 선출했다고 한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책인 정치학에서 ‘선거는 귀족적, 추첨은 민주적’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혼탁한 선거 운동 현장을 보다 보면 선거보다는 추첨이 더 민주적이라는 그의 말에 슬몃 마음이 기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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