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문민 정부의 출범 이래 진보, 보수 진영의 (감정) 대립이 첨예하다. 그중에서도 2000년도 초, 참여 정부 때부터 시작된 역사 바로잡기야말로 그 대립의 한복판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나 다름없었다. 소위 ‘친일인명사전’ 편찬 과정 등이 그것이었다. 물론 여기서 새삼스럽게 ‘역사 바로잡기’가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역사 바로잡기’야말로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 보다는 시대가 변천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따를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참여 정부가 이 역사 바로잡기를 민족의 백년대계를 위한 초석으로 삼겠다는 (장한) 의지에서 출발했는지 아니면 애국이란 이름으로 특정 집단을 비판하기 위한 술책으로 삼을 의도였는지는 앞으로 역사가 증명해주겠지만 아무튼 이 역사 바로잡기 때문에 애매하게 새우등 터진 사람들이 바로 홍난파, 안익태, 이효석, 김동인 등등… 일제 강점기에 문학, 음악 등으로 예술 활동을 했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예술가들일 것이다.
여기서 조금 불만을 얘기하자면 당시 정부가 이 역사 바로잡기라는 작업을 착수하기 전에 전혀 심사숙고한 면모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정치, 사회, 문화 등 분야별로 그 수위를 (미리) 정하거나 이로 인해 불거질 수 있는 여러 소모적인 논쟁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마구잡이식(보수 진영의 표현을 빌리자면 홍위병식) 마녀 사냥에 나섰다는 점이다. 물론 마녀 사냥이라는 표현은 진보쪽 입장에선 조금 과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그 취지를 충분히 이해한다고 해도 (일제강점 당시) 조선이라는 국토에서 일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던 사람이 거의 없었을 거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친일파 규정 과정은) 다소 무리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면 목숨 걸고 독립 운동을 한 사람은 뭐가 되냐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의 나라를 세우는 데 있어서도 나가 싸웠던 사람들이 있다면 또 뒤에서 뒷바라지를 했던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일제 강점기에 조선에서 한 민초로 살아갔던 사람들이 漢나라 때 소하처럼 후방에서 나라를 지켰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친일 인명사전’이라는 것이 왠지 승자들의 논공행상이라기보다는 패자들의 책임 추궁처럼 보이기에 하는 소리다.
칼을 들었다고 해서. 또 목숨을 버렸다고 해서 그들만이 모두 조국을 구한 것은 아니다. 작은 시 하나, 노래 하나로도 국민의 감정을 단결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의 힘이기도 하다. 2차대전 패망 때 독일 국민은 히틀러를 위해 울지는 않았다. 그러나 베를린 광장에 모여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들으면서 부둥켜 안고 울었다. 독일이 전후 가장 먼저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결코 자본이 많고 기술력이 앞서간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불굴의 예술 정신을 민족의 결속에 적용시킬 줄 알았던 선지식 때문이다. 작금의 조선은 어떠한가. 베토벤도 창출 못 하고 세익스피어나 톨스토이도 없는 조선이 자랑할 것이 무엇 있다고 그나마 애국가 한 토막 남긴 안익태 조차도 친일했다고 난도질하지 못해 난리다. 물론 안익태가 됐던 홍난파, 아니면 이효석, 김동인이 됐던 일본에 일부 조력한 것은 사실이다. 곡기를 끊고 목숨을 끊어서라도 지조를 지켰어야 조국의 후손들에게 더 큰 귀감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이라고 해서 임금과 백성 모두에게 성웅으로 남았던 것은 아니다. 그저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구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전쟁에서 온 몸을 던져 이기는 것 뿐이었다. 조선이 그를 충무공의 반열에 올린 것은 사후 50여년이나 지난 뒤였다.
음악가에게 음악을 잘 하는 것 외에 조국에 바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더 있을까? 문인에게 글을 쓰는 것 외에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물론 이보다 더 피끓는 애국심으로 일본에 반항하고 목숨으로 저항한 자들도 많다. 이들에 비교하여 변절자들을 단죄하는 것 또한 어쩌면 역사 바로 세우기의 그 첫 걸음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 바로 세우기에 우리는 이중 잣대를 갖다대서는 안된다. 조선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대원군 이하응의 행보는 어떨까? 우리나라에 판소리를 오늘날까지 이어오게 한 일등공신이요 비록 국력은 조금 소비했을 망정 경복궁을 재건해서 세계에 내보일 문화재를 남긴 자도 대원군이요 조선 5백년 내내 세습되어 온 양반들의 농지를 빼앗아 소작인들에게 고루 나눠 준(양전실시) 이도 이하응이다. 애국의 모습으로만 따지자면 대원군 이하응만한 이도 조선의 근대사에서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애국심은 쇄국정책으로 퇴색됐고 그의 전통 문화에 대한 사랑은 천주교 박해 등으로 그저 고집스런 한 한량의 외설스러운(?) 취미정도로 전락하고 말았을 뿐이다. 애국애국하지만 그 무엇이 진정한 애국인지 정말 선명하게 밝힐 수있는 잣대를 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작금의 조선은 어쩌면 매국노를 찾기보다는 희생양을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 바로 잡기가 어디 시대를 잘못 태어나 나라없는 땅에서 굶주려가며 서러운 예술가의 삶을 살았던 자들에게 손가락질 하는 것으로 바로 잡힐까?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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