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계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다. 지난 주말 두 개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LA 필하모닉과 ‘카메라타 퍼시피카’의 실내악연주회였다.
공연장을 다시 찾은 건 약 3개월만이다. 작년 가을 델타 코로나가 수그러들었을 때 많은 연주단체가 1년반의 공백을 딛고 2021-22 시즌을 개막했었다. 그러나 12월초 갑자기 들이닥친 오미크론 때문에 대부분의 단체들은 다시금 공연을 모두 취소하고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바이러스 확산이 폭발적이던 1월에는 거의 모든 콘서트, 뮤지컬, 연극, 댄스 공연들이 캔슬됐다. 1월31일 예정이었던 그래미시상식도 취소되었고 4월3일 LA가 아닌 라스베가스로 일정과 장소를 변경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LA필과 뉴욕필,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등 굴지의 예술기관들은 공연을 강행했다. 수퍼 확산의 위험과 관객 수의 급감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재개한 문을 닫지 않으려는 의지가 뚜렷했다. 그리고 오미크론은 찾아왔을 때만큼이나 급하게 물러가면서 2월 들어 상황이 훨씬 좋아졌다.
음악회들은 철저한 백신접종 확인과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된 가운데 열리고 있다.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의 경우, 작년 10월에는 실내 로비에서 백신접종을 확인했으나 지금은 모두 건물 밖으로 나가 한사람씩 카드와 ID를 보여주고 팔목에 확인 띠를 부착한 후 티켓 검표 역시 밖에서 하고 들어가도록 바뀌었다. 혹시라도 모를 실내 확산을 막기 위한 조처로 보이는데, 이 때문에 디즈니 홀 밖으로 긴 줄이 늘어섰고 연주회는 10분가량 늦게 시작됐다.
20일 콘서트는 에사 페카 살로넨 지휘로 바르톡과 시벨리우스, 그리고 현대작곡가 다니엘 비야르나손의 신곡을 초연하는 공연이었는데, 놀랄 만큼 청중이 많았다. 물론 전처럼 다 차지는 않았지만 오케스트라 석부터 테라스, 발코니 석까지 고루 사람들이 들어앉았다. LA가 사랑하는 살로넨이 2년 만에 포디엄에 섰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주로 노인들이 몰리는 일요일 낮 공연에 젊은이들이 많았던 것도 아마 그래서였지 싶다.
오랜만에 오케스트라의 튜닝 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뛰었다. 처음으로 팬데믹 이전의 ‘정상’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무대 위에서 단원들이 혼신을 다해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들을 수 있음에 새삼 감정이 벅차오르도록 감사했다.
이날 콘서트는 북구의 웅혼한 바람이 휘몰아친 차갑고 아름다운 연주회였다. 기이하고 신비한 바르톡의 ‘현, 타악기, 셀레스타를 위한 음악’에 이어 아이슬랜드 작곡가 비야르나손의 피아노협주곡 ‘향연’(Feast)이 아이슬랜드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 협연으로 초연됐다.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붉은 죽음의 가면’에서 영감을 받아 팬데믹 동안 작곡했다는 이 곡은 전염병과 죽음의 창궐 속에서 더욱 꽃피는 생명에의 찬가로, 비킹구르의 날카로운 연주는 뇌우가 몰아치듯 환호작약했다. 비야르나손은 3년전 LA필의 100주년 기념공연 때 생존한 역대 음악감독 3인(주빈 메타, 살로넨, 구스타보 두다멜)이 한 무대에서 지휘했던 작품 ‘우주에서 지구를 보았다’를 작곡한 사람이다.
마지막 레퍼토리는 시벨리우스의 마지막 교향곡 7번이었다. “시벨리우스를 지휘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평을 듣는 살로넨은 짧지만 가장 응축된 교향악이라는 단악장의 7번을 깊고 수려하게 연주했다. 한국인이 ‘아리랑’을 연주하는 것에 비할 수 있을까. 한 많은 핀란드 역사를 짊어지고 작곡했던 시벨리우스의 민족주의 음악이 정점에 이른 작품, 북구 대자연과의 숭고한 교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물결쳤다. 기립박수가 5분도 넘게 끝없이 이어졌다.
한편 1월 공연을 취소했던 카메라타 퍼시피카는 2월부터 다시 남가주 4개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재개했다. 이 실내악단에서 오랫동안 수석 비올리스트로 활약했던 리처드 용재 오닐은 2019년 유서 깊은 타카츠 사중주단(Takacs Quartet)에 합류하면서 떠났고, 지금은 타악기(마림바) 연주자 정지혜와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틴 리가 핵심 단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 17일 지퍼홀에서 열린 2월 연주회는 정지혜의 밤이었다. 레퍼터리 전체가 그를 중심으로 짜여진 현대음악들이었는데 언제나처럼 신들린 듯, 춤을 추듯 악기를 다루는 정지혜의 연주는 매혹적이고 최면적이어서 듣는 이 모두가 음악에 풍덩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아주 특이한 티에리 드메이의 ‘침묵’(Silence Must Be)이 압권이었다. 이 작품은 악기 없이 연주자 자신이 타악기가 되어 심장 박동에 따라 다중적 리듬을 지휘하는 행위예술 같은 작품인데 정지혜는 강렬하고 폭발적인 동작과 에너지로 모든 이의 넋을 빼놓았다.
두 콘서트 모두 마스크를 착용한 채 감상했다. LA필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목관과 금관을 제외하곤 모두 마스크를 썼다. 열린 공간인 디즈니 홀은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이 있으면 눈에 띄게 마련인데 이를 위반한 청중은 한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지퍼홀은 객석이 모두 앞을 향한데다 조명이 어두워서인지 카메라타 퍼시피카 연주회에서는 공연 중 살짝 내린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띄었다. 공연 시작 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안내원으로부터 지적받은 자들은 두 한인남자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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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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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한인 남자노인이라 영감들이 문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