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직장 생활 30년 중 거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냈다. 그동안 여러 나라를 거치면서 지금처럼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무르익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이는 세계 문화의 총아라고 하는 뉴욕에서 더욱 실감하게 된다.
손쉽게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또 다른 분야가 소비재 산업이다. 식품과 뷰티·패션·캐릭터상품에 이르기까지 K소비재의 인기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최근 뉴욕 맨해튼의 코리아타운에 가면 한국식 콘도그와 치킨 가게 앞에 미국인들이 줄을 길게 서 기다리는 광경을 언제나 발견할 수 있다. 핫도그와 치킨이 진정 미국인의 소울푸드였나 싶을 정도다. 한식당에 가도 한인보다 더 많은 현지인들로 북적댄다.
KOTRA는 지난해 11월 초 미국 북동부 지역의 최대 쇼핑몰인 아메리칸드림에서 소비재 판촉전(K-Lifestyle)을 개최했다. 쇼핑몰 측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리오프닝을 준비하면서 대형 프로모션 행사를 기획하고 한국 제품을 중심으로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수만 명의 미국 현지인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한국 상품의 우수한 품질에 만족했고 제품에 녹아있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참신한 디자인에 흥미를 보였다.
특히 행사장에서 QR코드를 찍으면 바로 아마존 등 온라인 구매가 가능하게 한 점이 주효했다. 뷰티 제품을 판매한 한 참가 기업은 행사 기간 제품의 판매량이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웹사이트 방문에서 바로 구매로 이어지는 구매 전환율은 무려 94%에 달했다.
그간 우리가 미국에 수출하던 주력 상품은 자동차·가전제품·반도체·스마트폰 등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K팝·영화 등과 같은 문화 상품을 기반으로 한 한류 열풍과 함께 일반소비재에까지 영역이 급속히 확대된 것이다.
이제는 더욱 거대한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할 때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1조 2,000억 달러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의 인프라 환경은 손볼 곳이 많아 현지에서 지내다 보면 종종 낭패를 경험하기 일쑤다. 폭우가 오면 기차가 끊기고 지하철이 물에 잠겨 직원들이 출근하지 못하는 때도 있다. 정전도 종종 발생한다. 도로 곳곳에 패어있는 곳이 많아 타이어가 펑크 나기 십상이다.
이런 열악한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가 발주되면 거대한 시장이 열리게 되는데 우리 기업이 이런 대형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기에는 장벽이 존재한다. 바이아메리칸(미국산 우선 구매법) 조항을 통해 외국 기업의 참여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지혜롭게 우회해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나 매우 어려운 일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대형 프로젝트에서 파생되는 소형 프로젝트부터 참여하는 것을 제안한다. 일본의 히타치 사례를 살펴보자. 이 회사는 지난해에 워싱턴시 교통국의 전동차 800량 생산 수주에 성공하며 북미 철도사업의 주요 공급 업체로서 확고한 지위를 구축했다. 히타치의 수주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간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꾸준히 다른 다양한 소형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장기적인 수주 실적을 쌓아왔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대형 프로젝트가 발주됨에 따라 신호체계·가로등·보안시스템 등 소형 프로젝트도 다수 생겨날 것으로 기대된다. 연방정부의 자금이 투입되지 않는 소형 프로젝트의 경우 앞서 언급한 바이아메리칸 등의 적용을 받지 않아 우리 기업도 참여가 가능하다. 이러한 프로젝트부터 차근히 접근해 실적을 쌓아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며칠 전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우리 차가 여섯 개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한국 콘텐츠인 ‘지금 우리 학교는’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미국을 포함해 여러 국가에서 1위를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미국이 만들어낸 좀비마저 K좀비로 재탄생돼 인기다. 2022년은 미국과 수교 14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확대돼 소비재부터 인프라까지 각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의 선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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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KOTRA 북미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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