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목사가 되기 전에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사를 전공하였다. 미국에서도 한국사를 공부했으니 족히 10여 년은 된다. 가장 고루한 국사로부터 미국 최첨단 실리콘 밸리에서 목회를 거의 이제 마치기까지 먼 여정을 넘나든 것 같다. 중학교 때부터 유난히 관심을 가졌던 국사, 집안 식구 모두가 남자는 공학, 여자는 이학(화학, 생물)을 전공해 나 혼자만 별난 취급을 받았다. 또 공돌이 이순이가 뭘 알아 하는 쓸데없는 우월감을 가져 나의 열등의식을 커버하기도 했다.
40년 전, 미국에 처음 와서 켄터키 주 볼링그린이라는 작은 대학도시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였다. 동양 사람이 거의 없는 그곳에서 나는 대부분의 너무도 친절한 사람들과 극소수지만 차를 타고 가다가 욕설을 하거나 가운데 손가락을 거꾸로 드는 사람들을 겪으며 너무도 다른 문화권에서 혼자 방황하곤 했다. 역사의 연구 방법론을 배워 조국에 돌아가 식민 사관에 찌든 한국사를 다시 쓰리라는 큰 포부를 가지고 주립대 대학원에 입학하였으나 현실은 너무 참혹했다. 영어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고 도무지 수업 시간에 무엇을 하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학기가 끝날 때가 되어서야 겨우 이런 건가 하는 막연한 감을 잡았으니 맨땅에 헤딩을 해도 유분수지 하여간 그렇게 시작한 역사 공부. 한참이나 지나서야 내가 공부한 과목이 미국 남부사 중에서 어떤 주제에 관한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미국은 남부지방의 역사인 남부사가 따로 있구나... 서양사도 간단히 한두 과목 들었을 뿐이지 미국사 강의조차 못 들어 보던 터라 나는 남부사가 따로 존재하는지 자체를 몰랐었다. 그러다가 캘리포니아에 와서 대학에서 한국사도 전공할 수 있고 박사학위도 받을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첫 학기 가장 어렵다는 유대인 교수의 일본사 세미나를 듣게 되었다. 유대인이 일본사를 전공했다는 것도 신기했고 더구나 일본 문화에서 응석(어리광)이 일본 정치 외교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세미나는 신선하기도 했으나 솔직히 별 걸 다한다는 코웃음이 나왔다. 일본은 서양인들에게 응석 문화가 있다. 그래서 매어달리고 칭얼대어 외교적 이득을 취한다는 것인데 이해하려면 이해할 수 있겠으나 그것을 일본 4대 일간지 (아사히, 요미우리, 마이니치, 니혼게이자이) 영어판 사설을 모두 읽고 분석하라는 과제였다. 140년의 역사를 가진 신문 사설을 모조리 읽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 랭귀지 스쿨 다닐 교수님이 해주시던 말이 생각났다. 문과 공부는 주어진 책을 몽땅 읽으면 안 된다. 대충 대충 넘어갈 줄 알아야 한다. 책 전체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알아 가장 관심 있는 챕터를 한 두 곳 읽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서론 읽고 결론 읽고 그러면 두 세 시간이면 책 한권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제는 책이 아니라 신문 사설이었으나 그 방법을 쓰겠다고 작정했다. 뒤적뒤적 읽는 둥 마는 둥 눈에 뭔가 느낌이 오면 그것을 뽑아 적었다.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그것들을 취합해 그럴 듯하게 문장을 꾸몄다. 클래스에서는 수업을 시작할 때 무조건 손을 들고 내가 공부한 쪽으로 말을 시작했다. 대학원 세미나라는 것이 누군가가 문제 제기를 하면 그것으로 주제가 잡힌다. 역사 교수님들은 여유가 넘치고 넘쳤다. 내가 말하면 신기해하며 들었다. 나는 내가 공부한 내용을 30여 분간 말할 수 있었고 그렇게 되면 그 세미나 시간은 내가 제일 잘하는 쪽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이렇게 겨우 한 학기를 마쳤을 때 나는 해냈다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이제는 어떤 클래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교수님이 뭐 대단한 것을 기대했겠나 싶다. 그냥 한번 빡세게 도전을 주지 않았나 한다. 이 일은 그 후에 나의 미국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가면 되는구나. 한참 후에 나의 지도 교수님에게 그 교수님이 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고 자신의 논지를 군더더기 없이 분명하게 전해서 인상 깊은 학생이었다고.
신앙생활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고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또 너무 감당하기 힘들더라도 설렁설렁 견디다 보면 해결책이 보일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러면 주시겠다고 하셨다. 어떤 경우에도 용기를 잃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전진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강순구 목사 (성령의 비전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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