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존인물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호응을 받고 있다. 다큐멘터리(documentary)란 단어가 사용된 것은 1930년대 영국 다큐멘터리 창시자인 영화감독 존 그리어슨에 의해서다. 허구를 사용하지 않고 사건이나 인물에 관한 사실을 보여주는 TV프로그램이나 사실적 영화를 다큐멘터리라 한다.
한국은 1980년대 중반부터 사람과 사람, 인간시대. 인간승리, 인간만세 등의 다큐들이 인기를 끌었다. 무엇을 기록하느냐에 따라 휴먼, 시사, 역사, 모험, 자연, 스포츠, 과학 다큐멘터리로 나눠지는데 일단 다큐의 생명은 리얼리티다. 잘 된 다큐는 사람들에게 느끼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최근에 본 두 편의 다큐가 있다. ‘송해 1927’(감독 윤재호)과 ‘화장’을 찍는 과정을 담은 임권택 다큐연작 ‘백두번 째 구름’(감독 정성일)이다.
나이 95세 최고령 현역 송해는 1988년부터 35년째 KBS-TV ‘전국 노래자랑‘ 진행을 맡아 ‘영원한 오빠’로 전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올해 영국 기네스협회 심사를 통과하면 국내뿐 아니라 세계 최고령 진행자로 공식 인증을 받는다.
‘송해 1927’ 다큐는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송해가 트로트를 직접 부르면서 시작된다. 1927년 황해도 재령군에서 태어난 송해는 한국전쟁 때 연평도에서 미군 군함을 타고 부산으로 피난 갔다, 1955년 유랑극단 ‘창공악극단’을 통해 가수 활동을 시작해 당대 톱스타들과 쇼 무대에 서며 코미디 시대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다큐 내용 중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뺑소니 사고로 숨진 22세 아들의 노래 테이프를 듣는 장면이 나온다. 가수가 되고 싶어 한 아들의 꿈을 반대한 이유가 자신이 예인으로 살면서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아서 그것만은 아들에게 물려주기 싫어서였다고 한다. 누룽지탕과 김치찌개, 계란후라이의 소박한 밥상을 받은 그는 ‘아비노릇 못했다’는 회한을 남긴다.
임권택은 1934년 전남 장성 출신으로 20세 되던 해에 집을 떠나 먹고살려고 부산을 거쳐 충무로 영화판에 뛰어든다. 1962년 데뷔작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시작하여 ‘잡초’, ‘아제 아제 바라아제’, ‘만다라’, ‘씨받이’, ‘장군의 아들’, ‘서편제’, ‘태백산맥’, ‘춘향뎐’, ‘취화선’ 등 50년이상 102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우리 모두 이 영화들을 보면서 성장했다.
‘백두번 째 구름’은 임감독이 2014년 개봉된 영화 ‘화장’의 촬영현장 다큐다. 한국영화의 전설 임권택은 어느 배우나 스태프보다 한시간 일찍 현장에 나오는 것은 기본, 최선의 한 컷을 담고자 어눌한 말투로 이렇게, 저렇게 지시를 한다.
죽어가는 아내를 간호하면서 젊은 여자에 대한 상념이 계속되는 중년남성 오상무(안성기 분)의 마음의 추이를 다루는 영화는 그의 102번째 영화로 ‘화장’ 김훈 소설이 원작이다. 임권택은 “영화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적된 삶을 찍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말한다.
송해와 임권택 두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평생 해왔고, 각각 95세, 87세로 건강하게 살아있으니 오랜 기간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뉴욕 한인사회 이민 1세들의 이야기도 책으로 쓰면 이민 역사가 된다. 후러싱 제일교회가 ‘이민 삶과 신앙이야기’ 프로젝트로 75세 이상 교인 100여명의 삶을 다룬 다큐를 제작 중이라고 한다. 2017년에는 ‘스토리 핸드-손에 담긴 삶의 이야기’ 사진책자를 출간. 75세 이상 교인 90명이상의 삶이 소개되었다.
송해와 임권택의 삶처럼 성공한 삶은 아니지만 낯선 땅에서 우리도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왔다. 자녀교육, 비즈니스, 신앙세계, 나름 이룬 것도 많다. “단돈 200달러 들고 이 땅에 내려서”로 시작되는 굴곡 많은 삶을 살아온 1세의 진솔한 이야기, 실패했거나 외롭거나 내세울 것이 없다 할지라도, 평범한 우리 이웃, 바로 나의 이야기이기에 모두 다 귀하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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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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