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은 두 말할 필요 없는 우리 설날의 대표 음식이다. 떡국에 들어가는 떡은 가래떡을 썰어서 준비한다. 가래떡은 그 모양이 긴데 모양이 긴 것은, 국수가 그렇듯이, 수명이 긴 것을 떠올린다. 그래서 떡국은 장수의 소망을 담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떡국에 들어가는 떡이 그 옛날의 엽전처럼 동그랗기 때문에 많은 재물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고도 한다. 떡국을 뭐 그렇게 해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떡국의 다른 얼굴 즉 떡국의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여기에 적어 본다.
때는 설날, 가까운 곳에서 그리고 먼 곳에서 많은 친인척들이 온다. 이웃 사람들도 세배를 오고. 이럴 때 어떤 음식을 준비하는 게 좋을까? 보통 때의 음식으로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왜 불편한지는 설날의 조건을 생각해보면 된다.
여기서 고려해야 할 것은 시대적 조건인데 지금을 기준으로 생각하지는 말자. 그렇다고 해서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자는 것은 아니다. 그저 1950년대쯤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먼저 생각해보는 것은 음식 준비의 조건이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음식을 전기로 준비한다.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고, 전기(또는 가스)를 사용해서 반찬을 준비하고, 전기로 만든 고주파를 이용한 전자레인지로 냉동식품을 조리한다.
그런데 이게 1950년대 이전에는 상상이나 가능했던 일인가 말이다. 1960년대에 석유를 사용하는 석유곤로가 부엌 한켠에 자리했을 때 이웃 아주머니들이 어머니를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기억난다. 그럼 그 이전에는? 연탄불에 밥 짓고 반찬 만들고 했다. 내친김에 더 가보자. 연탄 이전에는? 외갓집에서 그랬듯이 나무를 때서 밥 짓고 반찬 만들었겠지. 이 조건으로 겨울인 설에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방문객의 숫자도 생각해 보자. 설날에 찾아오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추정하기가 몹시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대략 추산을 해볼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오차의 폭이 너무 크다. 설날은 추석과 더불어 큰 명절이라서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데 거기에다 세배라는 풍습이 있으니 잠시 잠깐 들러가는 사람까지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먼 곳에서 방문하는 친척의 경우에는, 휴대폰은 커녕 전화도 없던 시절이니 몇 명이 올 것인지 미리 알려 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 하물며 손위의 집안 어른이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반찬 가짓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손님을 맞이하는 상은 평상시의 밥상보다는 아무래도 푸짐해지기 마련인데, 떡국을 준비하면 다소 부담이 준다. 평상시에도 7첩 반상이니, 9첩 반상이니 하는데 명절이면 그 가짓수가 더 늘어난다. 그런데 떡국을 준비하면 밥을 준비할 때보다는 반찬 가짓수를 줄일 수 있다.
게다가 떡국을 준비할 때에 밥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다. 그것도 일반적 선택이 아니라, 밥을 달라는 것이 좀 이상한 것이 되는, 예외적 선택이 된다. 그러니 그 바쁜 명절에 밥 안 해도 된다는 게 그게 어딘가 말이다.
이제 다시 얘기를 떡국으로 돌리자. 나무를 때서 음식을 하던 시절, 추운 한 겨울에, 몇 명이 될지도 모르는 손님을 맞이할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게 당면한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떡국을 선택한 선조님의 지혜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떡국으로 준비하면 손님을 오래 기다리지 않게 하고도 손님에게 항상 따스한 음식을 낼 수 있다. 손님이 도착한 후에 떡국을 국물에 넣어도 손님이 자리한 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정도의 시간이면 낼 수 있다. 손님이 도착한 후에 밥을 짓기 시작하는 경우와 비교해보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물론 밥을 미리 해 두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그 겨울 한기에 밥이 금방 식어버릴 것이고 그 식은 밥을 기쁜 명절에 집을 찾은 손님에게 낼 수 없다.
그러나 떡국은 손님이 그 언제 도착하더라도 따뜻하게 낼 수 있다. 그리고 굳이 밥을 찾는 손님이 있다고 해도, 떡국에는 따뜻한 국물이 있으니 떡국을 기본으로 하는 설날 상차림에 남들이 찾지 않는 밥을 찾는 손님에게 식은 밥을 내도 덜 미안하다.
물론 떡국이라고 해서 마냥 쉬운 음식은 아니다.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절대로 절대로 만만하지 않다. 지금이야 떡국떡을 가게에 가서 봉지에 든 것으로 산다. 조금 더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라면 떡집에서 받아오거나 쌀을 들고 방앗간에 간다. 그런데 1950년대쯤으로 가면 도시가 아닌 곳에서는 떡메로 떡을 쳐야 한다.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말이다. 떡만 만든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떡국 국물을 만들기 위해서 며칠이고 가마솥에 불을 지펴야 한다.
떡국에 얹을 고명은 또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는 게 아니다. 이런 사전 준비를 거쳐서 떡국 한 그릇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힘들고 긴 시간이 걸리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설날에 떡국을 준비하는 것은 설날 당일의 손님 치르기 편리함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실용적인 이유로 설날에 떡국을 먹게 된 것은 아닐까? 마치 결혼 잔칫날에 잔치국수를 준비하듯이 말이다.
<
김성식 / 스프링필드, VA>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