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는 물을 마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물을 마셔 독을 만든다.' 먼 옛날, 초발심 때, 부처님의 이 말씀을 대하고 잘 살아야겠구나, 란 생각이 두서없이 확 떠올랐던 기억이 있다. 같은 물도, 누가 마시냐에 따라 그 회향처가 전혀 다르게 발현되니, 귀한 부처님 법을 마시고 독을 내놓는 이는 되지 말아야 한다, 순정으로 그리 생각했었다. 최근 이 글귀를 다시 대할 기회가 있었는데, 처음 그 때완 느낌이 많이 달랐다. 최근 이 중에게 좀 심각한 이슈가 하나 생겼는데, '미국 물 먹고 사는 사람'에 대한 것이다. 한마디로 교포, 모든 교포 말고, 적어도 내가 만난 이곳 사람들 얘기다. 미국 물 먹고 산 지도 꽤 오래되었는데, 절에만 있다보니, 이 중은 '미국물'이 전혀 들지 않는다. 여전히 한국 산사에서의 행을 거의 그대로 하고 있다. 중이 변함없이 중 일을 하는 것이야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데도, 중도 '미국물'이 좀 들어야 되는건가, 싶은 때가 종종 있어서 불편했다. 왜냐하면, 미국 사는, 미국 물 좀 오래 먹었다, 싶은 사람들은 '미국물'이 많이 들어 있고, 그 '미국물'이 들지 않은 이 중에겐, 그 '미국물' 든 사람들과의 소통이 갈수록 어려웠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들이 하는 행이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최근에서야 그것이 그들 구성원이 가진 공통점이란 걸 비로소! 알게됐다. 한국, 미국, 중간 그 어디쯤에서 새롭게 탄생한, 그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십 사년 만에 그들이 낯설어진 순간이기도 하다. 그들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순전히 한국 스님의 정서로 바라본, 개인적인 지점이고, 그들은 이상한 게 아니고, 한국인이지만, 이 중이 익히 아는, 그 한국 불자같은 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 지점에서 벼락 같이 느낀 것은 나는 그들을 모른다, 였다. 그 지점 어디 쯤에서 '우음수성유...'를 우연히 다시 대하곤, 부처님 웃으실 일이지만, 같은 물을 먹고 어떤 행을 하느냐, 이전에 그 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만큼, 그들의 변함 없는 낯선 행에 대해, 최근 골몰하고 있었다. 미국 물을 먹는다고 해서 다 미국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물을 마시고도 우유도 되고 독도 되는 것처럼, 미국 물이든 뭐든, 사람은 다 같은 걸 먹어도, 만들어 내는 행은 다 다르다. 반면에 인연법상 같은 것을 공유하면 비슷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미국 물을 먹고 살면, 미국 사람처럼 되는 것 또한 맞다. 조금씩 '미국물'이 드는 것이다. 물이 드는 관점에서 보면, 이런 변화는 동화의 과정이다. 푸른 물과 붉은 물을 섞으면 점점 변화하다가, 서로 동화가 되면, 보라색 그 어디쯤에서 서로 물들기가 멈춘다. 이곳 사람들도 한국, 미국 그 어디쯤서 멈춰있다. 미국인도, 그렇다고 한국인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모습 다 다르고, 성격 다 다르지만, 그 '미국물' 든 측면의 행은 마치 짠듯이 똑같다. 그 '물' 든 모습이 독이냐 우유냐 묻는다면 답이 없다. 그냥 그 구성원 자체로서 특별하고, 인정 해야 하는 부분이지, 시비를 가릴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다만, '미국물' 뿐만 아니라, '속세 물'은 다시 들어서도 안되는 사람이 '중물' 든 사람들이다. 미국에선 원래 이방인이었지만, 우리 신도들 사이에서도, 갑자기 이방인이 되었다. 그것이 그간 소통의 어려움이었단 걸 비로소 찾고,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완전히 잘못 안 내탓임을 알고, 늘 답답했던 속이 후련해지긴 했지만, 하루아침에 새로운 이방인이 되어버린 이 중에겐 어려운 숙제가 생겼다. 그 숙제 마칠 방법이 새로 필요해진 것이다. 소통 방법, 이다. 소통이 안되면 뜻 전달이 어렵고, 뜻 전달이 안되면, 일 진전이 안되고, 일 진전이 안되면, 성과가 없게 된다. 그들이 이 이방인의 말을 통해, 그 뜻을 알 수 있을 때까지, 혹은 그들이 불자의 물이 들기까지, 얼마의 시간과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할까, 이다. 오던 날로 부터, 이국땅이니 개척불교라 생각하고 살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낯설어진 이 공간에서 이 중은 묻는다. 당신은 어떠신가. 이 이방인이 설하는 부처님 법이, 당신에게 밝은 지혜를 만들어줄 물이 되고 있는가. 그저 못알아 듣는 이방인의 말로만 들리는가.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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