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자 교육섹션에 김성식의 ‘미국 들여다보기’ 시리즈를 게재한다. 이 시리즈는 미국에 이민 와 살면서 알게 된 미국의 시시콜콜한 것들로 그래도 알고 있으면 미국 생활이 풍성해지는 내용들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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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 지역의 우리말 라디오 방송국 뉴스를 듣다가 깜짝 놀랐다. “오늘 밤은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서…” 꽤 오래전 이야기다. 오늘 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고? 이 지역에서 그 정도 추위면 비상사태가 선포될 재난에 해당할 텐데?
기온을 말할 때 영하는 기온이 영(零)도 아래(下)라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화씨를 사용하니까 영하라 함은 ‘화씨 0도 아래’를 말하는데 화씨 0도는 섭씨 -17.8도에 해당한다. 밤사이 기온이 섭씨 -17.8도 아래로 떨어져서 -18도, -19도, -20도가 된다고? 워싱턴 DC 지역에서? 잠시 후 전후 맥락이 잡혔다. 아… 섭씨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화씨에서 사용했구나…
온도를 말할 때 널리 쓰이는 기준은 섭씨온도(°C) 와 화씨온도(°F)이다. 기온을 섭씨로 말할 때에는 ‘영하(零下)’와 ‘빙점(氷點) 아래’를 서로 바꾸어서 사용해도 된다. 섭씨는 0°C에서 물이 얼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씨로 말할 때에는 둘을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 화씨에서 영하의 기준인 0도는 0°F이지만, 물이 어는 빙점은 0°F가 아니라 32°F이기 때문이다.
온도를 말하는 기준으로 섭씨와 화씨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이 두 가지가 널리 쓰인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섭씨를 사용했고 미국 와서는 화씨를 사용한다. 섭씨가 무슨 뜻일까? 섭씨온도를 적을 때 °C라는 것을 적으니까 °C의 앞에 있는 °가 섭이고 뒤에 있는 C가 씨인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화씨는? 화씨의 °F는?
섭씨와 화씨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씨’는 한자다. 김씨, 이씨, 박씨의 그 씨와 같은 글자이다. 한자로 氏라고 쓰는 그 글자인데 영어의 미스터(Mr.)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섭씨와 화씨 둘 다 한자다. 攝氏와 華氏. 즉 섭씨는 미스터 섭, 화씨는 미스터 화라는 뜻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섭씨 온도는 미스터 섭이라는 과학자가 제창한 온도 기준이고 화씨온도는 미스터 화라는 과학자가 제창한 온도 기준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화씨온도가 섭씨온도보다 먼저 나왔다.
온도를 숫자로 적은 후 그 뒤에 °F를 덧붙이는 방법으로 표기하는 것이 화씨온도이다. 한자로 쓰면 華氏인데 ‘화렌하이트씨(氏)’의 줄임말이고 영어로 말하면 ‘미스터 화렌하이트’가 된다. 여기의 화렌하이트는 사람 이름이다. 다니엘 가브리엘 화렌하이트(Daniel Gabriel Fahrenheit, 1686년 ~ 1736년), 독일 사람이다.
이 이름을 중국 사람들은 화륜해특(華倫海特)이라고 적고 ‘화룬하이터’라고 읽는다. 화렌하이트에서 화룬하이터면 퍽 괜찮은 음역이다. 이 화룬하이터의 첫글자를 가져와서 ‘화씨(華氏)’가 된 것이다. 미스터(Mr.) 화렌하이트, 화렌하이트씨(氏), 화씨(華氏).
화씨에서는 물이 어는 점(빙점 氷點)을 32도(32°F)로 하고 물이 끓는 점(비등점 沸騰點)을 212도(212°F)로 한다. 사람의 체온은 대략 98°F(약 36.7°C)가 된다. 그래서 체온이 100°F가 되면 섭씨로 37.8°C가 되는 것이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체온에 주의를 기울이는 기준이 숫자 100이어서 기억하기 좋다. 그리고 화씨온도를 사용할 때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소수점을 사용하지 않는데 어떤 병원의 코로나 관련 질문지에서 100.3°F라는 표현을 본 적은 있다.
화씨는 미국과 미국령, 미국과 아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서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 정도에서만 사용한다. 영국과 캐나다도 섭씨를 사용한다.
섭씨는 한자 攝氏를 우리말로 읽은 것이다. 섭씨의 섭은 셀시우스의 첫 글자이다. 스웨덴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안데르스 셀시우스(Anders Celsius, 1701년 ~1744년)가 이 온도를 제창하였다. 우리말로는 섭과 셀시우스가 연결되지 않지만 중국어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중국 사람들은 이 셀시우스를 서얼시우쓰(攝爾修斯)로 음역하였다. 이 한자 섭이수사의 첫 글자인 섭을 따온 것이 섭씨인 것이다. 섭씨, 미스터 섭, 미스터 서, 미스터 셀시우스.
섭씨 온도는 숫자 다음에 °C를 적는 방법으로 표기하는데 셀시우스는 물이 어는 점을 0도로 하고 물이 끓는 점을 100도로 정하고 그 사이를 100등분하였다. 우리 체온을 36.5°C로 표기하는 것처럼 섭씨 온도에서는 소수점 이하의 온도를 사용하기도 한다.
처음에 얘기했던 그 방송국 이야기 계속한다. 방송국에 전화를 해서 그 아나운서에게 ‘영하’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안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빙점’이라는 표현을 제안했다. 빙점은 섭씨와 화씨를 가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아나운서는 그 후에 두 어 번 ‘빙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더니 얼마 가지 않아 ‘영하’로 돌아갔다. 워싱턴 DC 지역에 ‘화씨 0도(0°F 즉 -17.8°C) 이하’라니…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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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은
지난해 한국일보 문예공모전 수필부문 가작에 입상한 수필가로 버지니아 스프링필드에 거주 중이다. 서울 출신으로 중앙대학 법대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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