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 김 어드미션 매스터즈 대표
올 가을학기부터 중·고교생 자녀를 둔 한인 부모들, 특히 맞벌이 부부들에게 골치 아픈 일이 생기게 됐다.
캘리포니아주 공립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첫 수업 시작시간을 각각 오전 8시, 오전 8시30분 이후로 늦추는 법(SB328)이 7월1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개빈 뉴섬 주지사가 서명한 SB328은 공립 중·고등학교의 수업시작 시간을 지금보다 늦추는 것으로, 이 같은 법은 50개주 가운데 캘리포니아주가 처음 시행하게 됐다.
SB328시행으로 차터 스쿨을 포함한 공립 고등학교들은 오전 8시 30분보다 일찍 수업을 시작할 수 없으며, 중학교는 8시 이후에 첫 수업을 시작해야 한다.
SB328을 발의한 민주당의 앤소니 포르탄티노 가주 상원의원에 따르면 이 법은 청소년들의 수면 부족이 야기하는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 고안됐다. 스트레스와 불안증, 우울증 등 청소년 웰빙을 해치는 여러 정신건강 문제들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수업 출석률을 높이고 지각을 줄이려는 목적도 수반하고 있다.
이 법을 적극 지지하는 북가주 로스알토스의 한 12학년생은 이 같은 변화가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삶의 질을 높여줄 것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현재 오전 8시에 첫 수업을 시작한다는 이 학생은 “주위에 매일 밤잠을 충분히 자는 친구들이 거의 없다”면서 “무려 9시간을 잔다는 학생을 만난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면 전문가들도 이에 대해 환영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스탠포드 대학의 소아과 부교수이자 ‘스탠포드 칠드런스 헬스’에서 소아 수면 전문가인 수밋 바르가바 박사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뇌는 성인과는 달리 여전히 발달 단계에 있으며 만성적인 수면 결핍은 성인이 된 뒤에 질병을 일으킬 위험을 증가시킨다.
잠을 한 시간 더 자면 학생들이 우울증이나 불안증과 같은 심리적 불안정을 덜 겪게 되고, 학업적으로 더 나은 성과를 내는 경향을 보인다고 바르가바 박사는 설명했다.
그러나 이 법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맞벌이 부부들은 수업시작 시간이 늦어지면 아침에 자녀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픽업하는 시간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첫 교시 시작이 늦으면 마지막 수업도 늦게 끝날 수밖에 없어 방과 후 과외활동 시작도 늦어지게 된다. 이로 인해 저녁 시간까지 영향을 끼친다고 맞벌이 부부들은 지적한다.
알 미하레스 오렌지카운티 교육감은 “일부 가정은 자녀 픽업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이 쉬울지 모르나, 맞벌이를 하는 부모들은 근무 일에 자녀가 학교 수업을 늦게 시작한다면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일간지 기고를 통해 주장했다. 선택적 수업으로 정규수업 전에 시작하는 ‘0교시’ 수업은 SB328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0교시 수업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택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의 절대다수는 첫 수업 시작이 늦어지게 된다.
남가주 일부 중·고교는 이미 SB328이 7월부터 시행된다는 것을 알리는 이메일을 학부모들에게 발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법은 교육구들이 자체 웹사이트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수면 부족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리서치 내용을 공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수면 전문가들은 이 법의 시행으로 학생들의 학업 컨디션이 좋아지고, 전체적인 웰빙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2011~2012년 실시된 한 조사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에는 300만명이 넘는 중·고교생이 있으며, 이들의 4분의 3이 오전 8시 30분 이전에 첫 수업을 시작한다. 현재 캘리포니아주 공립 중·고교의 평균 첫 수업 시작시간은 오전 8시 7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법은 예외가 해당되는 일부 시골지역 학교들 외에 전체 학생의 80~90%에게 적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소아과협회’(AAP)는 2014년 ‘청소년들에게 부족한 수면과 공공 건강’을 주제로 스테이트먼트를 발표했는데, 이를 통해 대부분 학교들이 오전 8시 30분보다 일찍 수업을 시작하지 말도록 권고했다. ‘국립 수면 파운데이션’(NSF)의 2006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청소년 중 45%가 주중의 수면이 충분하지 않다고 답변했으며, 19%는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학교에서 졸음에 빠져든다고 말했다.
미네소타 대학이 2017년 발표한 연구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학교 시작 시간이 각기 다른 5개 교육구 산하 학생9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첫 수업을 늦게 시작하는 교육구의 학생들이 더 많은 수면을 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잠을 더 많이 잔다고 대답한 학생들이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고, 알코올이나 담배 사용률이 더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잠을 더 자는 학생들은 학교 출석률과 등록률이 높았고, 운전 중에 졸음 운전을 하는 비율도 더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2014년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 내 고등학교의 약 90%, 중학교의 약 80%가 오전 8시 30분 이전에 수업을 시작한다. 그런데 미국 학생들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8시 전에 학교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으며, 정규 수업이 끝난 후에도 과외 등 추가 수업을 밤까지 지속한다. 한국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높은 상황에서 미국의 전문가들 역시 수면 부족이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이에 비해 호주와 뉴질랜드의 일부 중·고교들은 아예 학교 시작 시간을 오전 10시 또는 그 이후로 늦추려고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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