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의 하나다. 민화에 산신령과 종종 함께 등장하며 ‘산군’으로 불릴 정도로 영험한 동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호랑이에는 두가지 이미지가 존재한다. 한편으로 영물로 추앙을 받는 존재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뭔가 부족하고 못 된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단군 신화에 따르면 곰과 호랑이가 환웅을 찾아와 사람이 되기를 청하자 쑥과 마늘을 먹으며 동굴에서 100일을 견디면 인간이 되리라 일러준다. 곰은 삼칠일만에 사람이 되지만 호랑이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가 결국 동물로 남았다는 것이다. 호랑이의 급하고 참을성 없는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조선 말기 대표적 판소리 작품의 하나인 ‘수궁가’에도 호랑이가 등장한다. 이 시기에 나온 민중 예술중 가장 정치적인 이 작품은 용왕이 새 궁궐을 짓고 잔치를 성대하게 벌이다 병을 얻어 토끼의 간을 구하는 이야기다. 용왕이 뭍에 나가 토끼를 잡아오라고 신하들에게 지시하지만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 주부 벼슬을 하고 있는 자라가 자원한다. 육지에 나온 자라가 토끼를 부른다고 ‘토생원’을 외친다는 것이 발음을 ‘호생원’이라고 하는 바람에 호랑이가 내려온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생이 내려온다/ 누에머리 흔들며 양귀 쭉 찢어지고/ 몸은 얼쑹덜쑹 꼬리는 잔뜩 한발이 넘고/ 동이 같은 앞다리 전동 같은 뒷다리/ 새 낫 같은 발톱으로 엄동설한 백설 격으로/ 잔디 뿌리 왕모래 좌르르르르르 헛치고/ 주홍 입 쫙 벌리고 자라 앞에 우뚝 서/ 워리렁 허는 소리 산천이 뒤엎고 땅이 툭 꺼지난듯/ 자라가 깜짝 놀래 목을 움치고 가만히 엎졌것다” 사실적이면서 해학적인 민중 문학의 백미인 이 부분은 최근 ‘이날치’라는 밴드에 의해 ‘범 내려 온다’라는 제목으로 새롭게 해석돼 세계적인 히트를 쳤다.
호랑이가 자라를 잡아먹으려 하자 자라는 자신이 두꺼비라고 둘러대지만 통하지 않는다. 호랑이가 덤벼드는 순간 자라는 잽싸게 뒷다리를 물자 호랑이는 걸음아 날 살려라고 내빼고 만다. 천신만고 끝에 자라는 토끼를 잡아오고 토끼는 간을 뽑힐 위기에 놓이지만 기지를 발휘해 자유의 몸이 되는데 성공한다.
여기서 흥청망청 잔치를 벌이다 탈이 나자 토끼의 간을 빼서라도 살아나려는 용왕은 부패한 조선 왕조를, 자라는 어떻게 해서라도 나라를 살려 보려는 우직하고도 충성스런 신하를, 호랑이는 그런 산하를 잡아 먹으려는 탐관오리를, 토끼는 영리한 민중을 상징한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구토지설’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것으로 봐서 부패한 권력 집단과 이와 싸워 살아남는 민중의 스토리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후기 호랑이는 민화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한다. 이 때 함께 나오는 것이 까치다. 호랑이는 까치보다 훨씬 힘이 세지만 무서운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익살스런 모습으로 희화화 돼 있다. 까치는 호랑이를 놀리지만 호랑이는 까치를 어쩌지 못한다. 호랑이는 지배 계급, 까치는 민중의 상징임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랑이는 어떤 동물보다 위엄 있고 강하며 아름답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런 짐승을 동물원이 아니라 길가에서 마주쳤을 때 보통 사람이 느끼는 공포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호랑이가 이야기나 그림 속에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런 두려움을 희석시켜 보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감정은 서양 사람도 비슷했던 것 같다. 영국 낭만파 시인으로 첫 손에 꼽히는 윌리엄 블레이크는 ‘호랑이’(The Tygre)라는 시에서 “밤의 숲 속에서 밝게 불타는 호랑아, 호랑아, 어떤 영원한 손 혹은 눈이, 너의 무서운 조화를 만들어 내었느냐” (Tygre, Tygre, burning bright/ In the forests of the night/ What immortal hand or eye/ Could frame thy fearful symmetry?)고 읊었다.
이 위대한 동물이 지금 전 세계 곳곳에서 무분별한 서식지 파괴와남획으로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와 자바에서는 이미 사라졌고 말레이시아에서는 150 마리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랑이 중에서 가장 크고 ‘백두산 호랑이’로도 불리는 시베리아 호랑이는 광활한 북만주와 러시아 일대에 350 마리 정도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에 대한 보호가 강화되면서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다니 다행이다.
‘검은 호랑이’를 뜻하는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실제로 검은 호랑이는 없지만 개체 수가 제일 많은 벵갈 호랑이가 그나마 이와 유사하다고 한다. 웅혼한 호랑이의 기상을 본받아 지긋지긋한 코로나를 마침내 이겨내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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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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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지나간곳은 다른 동물이 살수가 없다고 한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자연과 생태계는 파괴가 되고 있고 환경보호를 외치는 사람들도 매일 그런 문명을 즐기면서 생활한다. 인간들의 사회생활과 생산활동은 자연을 파괴할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