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상 가장 어질고 지혜로운 황비가 있었다. 진종 황제의 황비인 ‘유아’이다. 진종 황제가 20대 태자 시절에 요나라와의 전쟁에 출정하여 산속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녀와 하룻밤을 보낸 태자는 유아에게 전쟁이 끝나면 황궁으로 불러 귀빈으로 삼을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황후와 결탁한 조정의 세력들이 유아의 미천한 신분을 문제 삼고 귀빈 책봉을 차일피일 한다. 2년이 지나 태자는 태자비를 설득하여 조건부로 귀빈 책봉을 받아내어 태자의 서신을 내시가 유아에게 전했다. 유아는 눈물을 흘리며 태자에게 답신을 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당신 먼저 생각하고, 저녁에 별이 뜨면, 별을 보면서 당신을 그리워하고, 샘물을 마실 때면, 솟아오른 샘물에 뜬 당신의 얼굴을 보며,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유아가 황궁에 들어간 후 근처의 마을에서 천연두가 발병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죽어나갔다. 유아는 오랫동안 의서를 공부하며 얻은 지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건졌다.
그러던 중에 황제가 된 진중 황제로부터 황비의 유일한 아들인 태자 우가 천연두에 걸려 위독하다는 기별을 받았다. 과거 황비는 백성들의 추앙을 받는 유아를 질투하여 자객을 보내 암살하려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유아는 지난 과거를 잊고 태자 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황비에게 달려갔다. 태자의 병세는 너무 심해 유아는 자신의 힘으로서는 완치시킬 수 없음을 알았지만 태의와 함께 밤, 낮으로 지성을 다해 치료에 전념했다. 하지만, 태자 우는 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태자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은 황비는 중병에 걸리고, 몇 개월이 지나 사망했다.
임종 전 황비는 한 통의 유서를 써서 황제에게 전했다. “귀비 유아를 저주한 저를 용서해주세요, 귀비 유아를 황비로 삼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원수인 황비를 용서한 귀비 유아는 온 백성의 추앙을 받으며 황비에 오른다.
황비 유아의 중국 고사를 읽으며 나의 유일한 친구였던 고 전영철을 생각한다. 내가 큰 아들을 중병으로 잃고 방황하고 있었을 때, 친구는 암으로 아내를 여의고, 위암에 걸려 2차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에 있었다.
동병상련일까.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는 가운데 서로를 좋아하게 되었고, 어느덧 깊은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아들 죽음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에게 늘 기도하며 교회 울타리 안에 있는 황폐한 꽃밭을 가꾸었다.
매주 금요일에 하는 노숙자 봉사활동을 마치면 나는 지하실 단칸방에 살고 있는 영철을 데리고 교회 꽃밭으로 가서 거동이 불편한 영철을 차 안의 좌석에 앉혀놓고서 잡초를 파내고 봄, 여름, 가을에 피는 꽃들을 심었다. 그때 영철이 호미를 들고 내 옆에 앉아서 잡풀을 캐낸다. 친구의 건강을 위해 한사코 꽃밭 일을 말리며 그냥 내 옆에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영철은 막무가내였다. 가을이 되어 7가지 형형색색의 국화꽃들이 만발하는 장면을 보면서 영철은 눈물을 흘리며 미소 지었다.
그해 겨울이 되었다. 영철의 병세가 악화되었다. 식음도 불가능하고 링게르와 고무 호스를 통해 묽은 죽을 위에 받아 연명을 했다. 해가 바뀌어 6월이 되었다. 오전 7시 경에 영철의 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가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것 같아요. 오늘 중으로 오셔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세요.”
영철이 누워 있는 요양병원으로 차를 바쁘게 몰았다. 넓은 독실에 누워 있는 영철의 침대 옆에 앉았다. 가만히 영철을 불렀다. 가느다랗게 눈을 떴다. 가죽만 남은 손을 들어 나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한다.
“나 이제 죽겠지. 너와 함께 오래 동무하며 살고 싶었는데…. 병이 나으면 너와 함께 노숙자 봉사활동을 하려 했지….”
“자네가 사모했던 예수 그리스도가 자네 옆에 서 계시네. 주님과 함께 하늘나라에 가서 고통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시게나.” 나는 친구의 손을 꼭 잡은 채로 흐느꼈다.
영철의 오른 손이 나의 얼굴에 닿았다. 그의 손을 보았다. 현금 40달러를 쥐고 있었다. 영철은 그날 밤에 내 곁을 떠났다. 암의 고통을 딛고 그 아픔을 얼굴에 내색도 하지 않으며 꽃을 심은 내 친구 전영철, 그는 깊은 산 속의 옹달샘에서 솟아오르는 사랑의 샘물이었다. 친구가 그립고, 그립고 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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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김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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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