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종사자인 마리아는 목수인 요셉의 정혼녀다. 마리아와 요셉 모두 언젠가 자녀를 가져야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약혼 이후 이 문제를 의논한 적은 없었다.
어느 날 오후 나사렛 사람 요셉은 약혼녀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마리아, 당신은 어떨지 모르지만 난 늘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루어야한다고 생각해왔소. 그건 인생의 중요한 이정표 가운데 하나이니까요.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돌아보니 좀처럼 확신이 서지 않는구려. 우리 마음을 터놓고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봅시다.”
마리아는 머리를 끄떡여 약혼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둘은 카우치라 불리는 곳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세상이 온통 난장판이요. 아이를 낳아 기르기에 적합하지 않은 듯싶소.” 요셉의 말에 마리아가 다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요. 주변을 돌아볼 때마다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주 무서운 세상이지요. 게다가 요즘은 몹쓸 괴질까지 나돌고 있어요. 설상가상으로 우리가 속한 소수 종파는 심한 박해를 받고 있구요.”
“그러면 아이를 낳기 좋은 때가 언제일까요?” 요셉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때가 아닌 듯합니다. 우리 공화정도 제 기능을 상실했죠.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아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요. 벌써 수십 년째 그 모양이지요. 아우구스투스가 집정관에 선출됐다지만 예전처럼 시민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공화정체제는 아닌 듯해요. 하긴 신분과 거주 지역 탓에 애초부터 우리에겐 진정한 발언권이 주어지지도 않았지만….”
“맞아요” 마리아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도 이론상으론 제 기능을 하는 대의정치제가 왕정보다 낫지요.”
한 동안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살기가 너무 팍팍해요. 게다가 여성들의 권리는 크게 제한되어있어요. 조만간 변화가 있을 것 같지도 않구요.”
“그러게 말이요,” 요셉이 마리아의 푸념에 맞장구를 쳤다.
“당장 여행 계획만 해도 그래요. 앞으로 9개월 후 먼 길을 떠나야하는데 우리가 예약한 여인숙 환경은 아이에게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적대적이지요.”
요셉은 약혼녀의 말에 속으로 아차 싶었다. 마리아에게 여인숙 예약을 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차일피일 미루다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난민과 빈민은 몸을 누일 곳조차 없는데다 제대로 분배되지 않는 필요한 물품을 구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여야 하는 암울한 세상이에요,” 마리아가 말을 이어갔다.
“난 당신이 출산을 한다해도 육아휴가를 받지 못할거요,” 우울한 어조로 요셉이 말했다.
“그래서 사촌에게 미리 도움을 청해두려 했는데 그녀가 막 임신을 했다지 뭐예요.” 마리아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맙소사, 엘리자베스가 그 나이에 임신을 하다니!”
요셉의 탄식에 마리아가 눈을 뒤집어 보였다. “엄밀히 말해 35세 이후의 출산은 노산으로 간주된답니다. 게다가 엘리자베스가 털어놓은 양육계획은 더더욱 가관이에요. 엘리자베스의 말대로라면 앞으로 태어날 아기는 수영을 정말 좋아하면서도 실제로 마음껏 수영을 즐기는 데에는 관심이 없는 아이로 자라게 될 거예요.”
“흠,” 요셉이 신음을 토해냈다.
“이야기가 점점 어두운 방향으로 흘러가네요. 출산의 유불리를 목록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럽시다. 기대수명도 썩 좋지 않아요.” 마리아는 글머리 기호를 써넣으며 요셉의 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지금 태어난 아기가 우리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어요. 그건 생각만으로도 서글픈 일이죠.”
요셉과 마리아는 정리된 목록을 훑어보았다.
“긍정적인 것은 없을까요?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화과요,“ 마리아가 소리쳤다. ”또 있어요. 해가 떨어진 직후 시기각각 변화는 하늘빛은 너무 황홀해요. 사람들도 좋구요.“
“그런가요?” 요셉이 되물었다. “하지만 전반적인 상황이 이처럼 암울하다면 아기를 갖는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야할 것 같소,”
마리아가 옷자락의 풀어진 실밥을 만지작거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도 우린 희망을 품고 망가진 세상을 고치는데 도움을 주는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
“목수 일을 통해서 말이죠!” 요셉이 상기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요. 뭐 그런 걸로요,” 마리아가 맞받았다.
“이 세상엔 늘 변하지 않는 좋은 것들도 더러 있지요. 기후는 여전히 좋아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마리아가 덧붙였다.
“맞아요. 기후가 어떻게 변할 수 있겠소?” 요셉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현재 상황이 나쁘다곤 해도 사실 과거엔 더 나빴지요. 송수로 건설 이전까지 줄곧 그랬을 거예요.” “어두운 상황을 뒤집으려면 모두가 낙심하지 말고 희망을 지닌 채 다같이 협력해야만 해요. 그게 유일한 해결책이에요. 바로 그것이 누군가를 이 세상으로 내보내는 이유가 되야 해요. 망가진 세상의 수리를 돕기 위해서요.” 마리아가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요셉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야겠지요. 그건 가치있는 일이요.”
그들은 앉은 자리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황실을 상징하는 자줏빛이 피처럼 번져가는 푸르스름한 저녁 하늘에 별들이 반짝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마리아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꼭 들려드려야 할 말씀이 있어요.”
알렉산드라 페트리는 유머작가이며 칼럼니스트로서 2010년 22세 때 워싱턴포스트의 최연소 칼럼니스트가 되었다. 시사적인 뉴스를 가벼운 풍자를 곁들인 오피니언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뉴요커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와 라디오, TV, 블로그, 팟캐스트 등에 출연하는 한편 다수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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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라 페트리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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