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조선 최고의 여류시인이자 예술가 황진이가 부른 시조창이다. 황진이는 조선 중종 때 활동했던 기생으로 출중한 외모와 더불어 시인, 작가, 음악가, 무용가이자 서예가였다. 황진이는 양반가의 서녀로 태어났으나 당시 조선의 법에 따라 천민 출신이던 어머니의 신분 때문에 천출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양반 못지않게 예의범절과 학문을 익혀 성리학을 비롯한 고전 지식에도 능통했다고 하는데 당대의 명사들과 교류하며 시문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녀가 지은 시조들은 높은 문학성을 인정받아 현재에도 고전 문학작품으로 다수의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는 것은 물론 시조창으로 악보와 함께 전해진다.
처음에는 간단한 형식의 평시조 형태로 시작한 시조창은 여러 형태로 확산하며 선율을 얹어 음악적 특징이 두드러지는 시조창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고려 중엽 발생한 시조는 조선 시대에 다시 유행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가야금, 거문고, 대금, 해금 등의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곡조가 생겨나게 되며 시조창으로 발전했다. 가곡, 판소리, 범패를 한국 전통 3대 성악으로 꼽는데 시조창은 조선 중기 이후 가곡에서 파생되어 일반인들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평이하게 만들어 유행가처럼 널리 퍼지게 되었다.
시조창은 시절가, 단가, 시절단가라는 명칭으로 불렸는데 서울과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제시조, 전라도의 완제, 경상도의 영제, 충청도의 내포제 등 지역마다 다른 특색을 띠며 발전하였다. 악기 없이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며 박자를 맞추는 무릎 장단으로 노래하는 완제 시조와 달리 악기들이 반주하는 경제시조는 장단이 잘 정립되어 있고 가성을 가미해 아름답게 노래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방의 시조를 모두 묶어 향제시조라고 하는데 경제와 향제시조 구분 없이 일반적인 시조를 평시조라고 부른다. 평(平)이라는 명칭은 첫 시작 부분을 높지도 낮지도 않게 평이하게 부른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황진이가 지어 부른 ‘청산리 벽계수야’는 경제 평시조이다. 조선 영조 시대에 가곡을 모아 엮은 가곡집으로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시조집인 ‘청구영언’에 수록되어 있다. 시조의 뜻을 풀어보면, ‘청산에 흐르는 푸른 시냇물아, 쉽게 흘러감을 자랑하지 마라. 한번 넓은 바다에 이르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우니, 밝은 달이 빈 산에 가득 비치니 쉬어가면 어떻겠냐.’로 해석할 수 있는데 덧없는 인생을 즐기며 살자는 뜻을 내포한다. 청산은 영원히 변함없는 자연을 뜻하고 벽계수는 쉬지 않고 변해가는 인간의 삶을 뜻한다. 늙어서 이 세상을 떠나면 돌이킬 수 없으니 잠시라도 영원을 간직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자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황진이의 문학적 재치와 감각을 볼 수 있는데 초장의 벽계수는 흐르는 물과 왕족인 벽계수를, 중장의 명월은 밝은 달과 기생으로 활동할 당시의 예명인 명월로 황진이 자신을 의미한다.
황진이는 당시 박연폭포, 서경덕과 함께 송도삼절로 불릴 만큼 뛰어난 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기생이었다. 이렇듯 명성이 자자한 황진이에게 흔들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한 왕족이 있었는데 바로 세종의 서자인 영해군의 손자 벽계수 이종숙이었다. 벽계수는 자신은 지조가 곧으니 황진이의 유혹따위에는 굴하지 않으며 오히려 쫓아버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였다. 이러한 벽계수의 소문을 들은 황진이는 자신의 사람을 보내어 벽계수를 유인해 오도록 일렀고 그는 걸인 행세를 하며 유려한 언변으로 벽계수를 송악의 가을 경치를 구경시켜주겠노라 인도한다.
이때 황진이가 우연을 가장하여 청산리 벽계수야를 부르는데 아름다운 여인이 달밤에 부르는 청아한 노래에 도취한 벽계수는 급기야 나귀에서 떨어지게 되고 벽계수의 이러한 일화는 당시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며 이 곡은 벽계수 낙마곡이라고 불리게 된다. 조금 과장된 일화일 수 있겠으나 온 나라에 명성이 자자했던 황진이의 미모와 뛰어난 시조 창작 실력을 잘 보여준다.
시조의 곡조는 기본 틀이 있다. 초장, 중장, 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초장과 중장은 5.8.8.5.8 박자, 종장은 5.8.5.8 박자의 총 94 박자로 이루어진다. 창법은 서울, 경기의 경제시조가 여성적인 창법이며 지방의 향제시조는 남성적인 창법으로 노래한다. 김월하 명창은 한국의 시조를 노래할 때는 각기 다른 4~5가지 분위기를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첫 시작은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것과도 같은 분위기를 내며 노래해야 하고 이어서 높은 산에서 돌이 쏟아지듯 노래한다. 그다음 모래밭에 기러기가 앉듯 사뿐한 곡조로 불러야 하며 마지막은 먼 부두에서 돌아오는 배와 같이 유유히 부르는데 이러한 기본만 익힌다면 사설시조나 가사도 응용하여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조선의 풍류 음악, 시조에 곡조를 얹어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게 긴 호흡으로 부르는 절제되고 깊이 있는 예술성을 지닌 시조창의 매력이다.
‘읊조리는 시에 도취하여, 그 음성에 곡조를 얹어 부르다 보면 그 음성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그 멋은 이루 말할 수 없다.’ – 김월하 명창
<
손화영(가야금 연주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