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정보 브리핑 담당자들이 공개적으로 고위 정치인들을 평가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중앙정보국은 이례적으로 ‘대통령 파악하기’라는 제목의 짓궂은 폭로성 연재물을 펴냈고, 이번에 최신 에피소드를 추가했다. 여기엔 비밀의 장막에 쌓인 최고위 정치인들의 행동거지에 대한 브리핑담당자들의 재미있는 뒷담화가 담겨있다.
가장 주목을 받는 인물은 유난히 말이 많고 아는 척하기 좋아하는 도널드 트럼프다. 정보 브리핑 담당자들은 그를 “대하기 힘든 독특한 존재”로 묘사한다. 정보전문가들의 능력을 ‘미심쩍어하는’ 트럼프는 정기적인 브리핑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전임자들보다 훨씬 적은 주당 두세 차례의 브리핑을 받는데 그쳤다. 트럼프는 대통령에게 제공되는 ‘일일 정보 보고서’를 통독하지 않았다. 가끔 보고서를 ‘만지작거리며’ 읽는 시늉을 할 뿐이었다. 그의 브리핑 담당자인 CIA 정보분석관 테드 지스타로에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거나 질문을 하지 않았다. 국가정보국 수장이었던 제임스 R. 클래퍼는 트럼프를 “팩트로부터 자유롭고, 증거를 믿지 않는 대통령”으로 평가했다.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에 대한 CIA 정보 브리핑의 시초는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브리핑 담당자들을 상대로 CIA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서베이 내용은 CIA 소속 정보연구센터에 의해 지난 10월 내부문건으로 정리된데 이어 비밀해제를 통해 일반에 공개됐다.
트럼프와 CIA의 관계는 매끄럽게 시작됐다. 2016년 8월, 공화당 대통령 후보자격으로 첫 번째 정보브리핑을 받은 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11월 대선 승리직후, 그는 정보 보고를 받을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였다. 헬저슨은 “트럼프 자신도 선거승리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그는 10주간 이어진 정권인수과정에서 단 14차례의 정보보고를 받는데 그쳤고, 취임식 이후에도 브리핑을 기피했다.
CIA와 대통령 사이의 균열은 러시아가 대선에 개입했다는 정보 브리핑을 받은 2017년 1월6일부터 시작됐다, 헬저슨의 설명에 따르면 CIA를 비롯한 미국의 정보기구 수장들은 “미국 대선 개입 공작을 승인하고 관리하는데 블라디미르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의 고위 관리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논의”했다. 이들이 제시한 증거는 “트럼프 진영 내부에서 조사결과를 반박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을만큼 견고했고, 트럼프도 정보보고를 경청했다”고 지스타로는 회고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당시 연방수사국(FBI) 국장이었던 제임스 B. 코미는 전직 영국 정보원 크리스토퍼 스틸이 클린턴 선거팀으로부터 돈을 받고 작성했다는 문서파일의 존재를 트럼프에게 귀띔해주었다. 지금 문건의 내용은 거의 전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고, 당시에도 FBI와 주요 언론은 문서에 담긴 중요한 세부내용의 진위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코미는 신뢰할 수 없는 소문을 트럼프에게 풀어놓았다.
그 이후 트럼프의 태도가 돌변했다. 지스트로가 정보 브리핑을 하기 위해 백악관 집무실로 들어가자 그는 “CIA가 나를 망가뜨리려 작심했다”며 “10분 동안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 그에게 험악한 말폭탄 세례를 퍼부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트럼프는 곧바로 “우리가 지금 나치 독일에 살고 있느냐?”는 트윗을 날렸다.
다른 정치인들에 대한 헬저슨의 기술은 신선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예컨대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비밀공작의 피비린내 나는 ‘폭력성’을 알고 싶어했다. 2000년 9월2일,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첫 정보 브리핑을 받는 자리에서 부시는 중동문제 전문가로부터 “차기 대통령 재임중 미국 본토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테러공격”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9/11 사태가 발생하기 1년여 전에 일찌감치 사전경고를 받은 셈이지만 부시는 ‘피 튀기는 액션이 결여된 정보’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정권인수기에 매일 정보 브리핑을 받기를 원했고, 추수감사절에도 거르지 않고 보고를 받았다. 클래퍼는 그에게 특별한 ‘전문가 브리핑’을 제공하려했지만 “절반은 하품 유발 정보”였다고 헬저슨은 한 배석자의 말을 인용해 밝혔다.
부통령과 부통령후보들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등장한다. 딕 체니 부통령은 대통령 일일정보 브리핑에 등장하는 내용에 관한 맞춤형 배경설명을 추가로 요구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정권 인수기에도 평일에는 빠짐없이 정보브리핑을 받았고, 아들의 결혼식 날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CIA 브리핑 담당자들과 유달리 좋은 관계를 유지한 펜스는 이임을 앞두고 이들 전원을 관저로 불러 특별한 환송파티를 열어주었다.
브리핑 담당자들의 ‘고객평가’는 엇갈리는 측면이 있다. 2004년 민주당 부통령 후보지명자였던 존 에드워즈는 브리핑 전에 “피자를 먹으러 갈 수 있도록 빨리 끝내자”고 스탭진에게 한 말이 담당관의 귀에 들어가는 바람에 구설수에 올랐다. 2008년 공화당 부통령후보 지명자였던 새라 페일린은 뜻밖에도 “주의 깊게 브리핑을 경청했고, 그 중요성을 이해했다.” 2012년 공화당 대통령후보 지명을 받은 밋 롬니는 “품위있고, 진중하며 당파성에 연연하지 않는 원로정치인다운 면모를 과시했다”고 헬저슨은 높게 평가했다.
그렇다면 바이든 대통령은? 2008년 부통령에 당선된 그는 “브리핑 담당자들이 감탄할 정도로 중요 이슈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대답하기 어려운 많은 질문을 던졌으며, 수시로 추가 관련정보를 요구했다.” 헬저슨은 브리핑 담당자들의 반응으로 보아 “졸리운 조”라는 일부의 비아냥은 터무니없이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CIA 브리핑 담당자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고객’을 가리지 않았다. 1968년 CIA는 무소속 대통령후보이자 인종차별주의자인 조지 월러스에게도 정보 브리핑을 해주었다. CIA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다른 모든 대통령후보와 마찬가지로 잠재적 ‘고객’이었다.
대통령과 CIA는 어떤 관계인가? 물론 정보부는 정치적 편견을 배격한다. 그러나 ‘대통령 파악하기’를 통해 드러난 분명한 사실은 브리핑 담당자들 역시 그들을 진지하게 대하는 정치인들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 그들도 다른 무엇보다 자신을 얕잡아보는 상대를 싫어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이며 워싱턴 포스트의 부편집장이자 칼럼니스트이다. 그는 Ridley Scott 감독이 영화로 각색한 Body of Lies를 포함하여 11개의 소설을 썼다.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의 전 겸임 강사이자 현재 미래 외교 프로그램 선임 연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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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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