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머리에 헤어롤을 만 채 거리를 활보한다는 내용이 뉴욕 타임스지에 실렸다. 이는 젠더에 대한 관념 및 미적 기준의 변화이자 세대 구분의 상징이 되고 있다는 분석과 함께 젊은 세대들이 독립적이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지하철을 탄 적이 있다. 내 바로 앞에 앉은 젊은 여자가 핑크색 헤어롤을 앞머리에 떡하니 꼽고 있었다. 순간 나는 그녀에게 “저기요, 구르프를 안 빼셨어요..."라며 조심스럽게 말해줄 뻔했고 자연스럽게 그 여자 쪽으로 시선이 갔다.
자세히 그녀의 행동을 보았다. 일단 자리에 앉자마자 얼굴만 한 거울을 한 손으로 잡고 커다란 파우치 백을 열더니 화장품을 꺼내 바르기 시작했다. 어? 비비크림을 지하철에서? 라는 생각에 힐끗 보기 시작했는데 어라? 정성껏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두드리다 세밀한 눈 화장도 흔들림 없이 능숙하게 하더니 마지막 핑크 볼 터치까지 완벽하게 다른 얼굴로 화장을 마쳤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포커스는 정확히 한사람인 ‘그녀’이고 그녀의 주변은 흐릿하게 보이는 사진을 촬영하듯 지하철 안에는 오로지 그녀 혼자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화장을 다 마치고 나서야 나도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런 모습이 아주 흔한 것처럼 아니면 나 아닌 다른 사람의 행동에는 정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그 누구도 나처럼 호기심 있게 보는 이가 없었다.
왜일까?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은 긴 시간이었다. 립스틱을 바를 시간이 없었다거나 깜박 잊고 립밤을 바르지 못해서 사람들 눈을 피해 살짝 바른다는 건 이해가 아니라 누구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대놓고 거울을 보며 내 입술에 무언가를 바르는 행위를 서슴없이 하지는 못한다. 꼭 육감적인 입술이 아니더라도 눈 화장을 하고 볼터치를 하는 행위나 얼굴 어딘가에 치장을 위한 행위 자체를 금기시했고 그런 일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매너로 생각되었다.
그러한 행동이 이제는 문화가 되었다는 보도를 지금 미국, 그것도 가장 영향력이 있는 NYT 신문에서 다루었다는 자체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최근에 BTS를 비롯한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 등 문화의 패러다임을 이끌고 있는 한국에서 젊은 여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헤어롤을 하고 길거리를 활보한다는 자체가 비상식적인 행동이지만 어느 기자에게는 재미있는 하나의 콘텐츠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나 보다.
여기에서 문제는 그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개성을 지극히 중시해왔고 누구나 똑같은 모양으로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함께하는 것에 식상함을 느끼고 있다. 서태지가 출몰하고 나름 개성시대가 열렸고 더 나아가 ‘이쁘다'는 소리보다는 '매력 있다'라는 말이 더 근사해졌고 지금은 매력보다도 ‘개성 있다' 혹은 ‘섹시하다’라는 말을 조금 더 쳐주는 그런 세대가 되었다.
단적으로 고현정이 오징어 게임에서 나오는 정호연에게 밀리는 시대가 되어 공장에서 막 찍어낸 듯한 똑같이 이쁜 인형 같은 얼굴이 촌스럽지만 독특하게 나만의 개성이 넘쳐나는 얼굴에 밀려난 지 오래다. 그만큼 이쁨의 기준도 달라진 것도 사실이고 남의 이목보다는 나 자신의 삶에 충실한 홀로의 삶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지도 오래다. 그런 의미에서 헤어롤이 자신만의 개성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결국 ‘내가 헤어롤로 국을 끓이든 밥을 말아 먹든 아무도 상관하지 말아라'라는 말인데, 헤어롤의 목적은 머리를 부풀리는 기능이고 그 기능은 집에서 끝내야 맞는 말이다. 공공장소에서 타인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남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만 주지 않으면 무슨 상관이야’라는 말은 마치 귀에 커다란 꽃을 꼽고 다니는 사람을 우리는 정신이 나간 여자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듯 이를 이해하려면 같이 미쳐야 되는 세상이다.
NYT는 그럼에도 ‘아직까지’ 기성세대는 헤어롤을 공공장소에서 하고 다니는 것을 못마땅해한다며 과거 한국 여성들의 꾸밈은 사적이고 남성의 시선을 숨겨야 하는 행위로 생각했지만 젊은 여성들은 이제 주변의 시선을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고 전했다. 작은 하나가 전체를 매도한다. 잠옷을 입고 마트를 가는 미국과는 달리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과 어느 나라보다 멋과 흥을 아는 나라이기에 지금의 한국이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건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상의 변칙 논리가 존재한다. 부모를 공양하고 타인에게 예절을 지켜야 하고 친구에게 신의를 져버리지 않는 등 인간이기에 절대 변하지 않는 상식선에서의 논리가 분명 내재되어 있다. 그런 마음이 우리 몸에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불변의 수식어가 되어야 한다. 한국의 문화가 이제는 세계를 선도하는 거대한 콘텐츠가 되어버린 이상 헤어롤이 아닌, 작지만 커다란 힘이 느껴지는 모습으로 보여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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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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