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다음날인 26일은 ‘블랙 프라이데이’였다. 그리고 이튿날인 27일은 ‘스몰비즈니스 새터데이’, 29일은 ‘사이버 먼데이’였다. 바야흐로 연중 최대의 쇼핑 시즌이 시작되었다.
전국소매연맹(NRF)은 올 연말소비가 작년에 비해 8.5~10.5% 증가해 역대 최고인 8,5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는 소비자들이 일찍 연말쇼핑을 시작했고, ‘보복 소비’와 ‘폭풍 구매’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록적 매출을 달성할 공산이 크다.
그런데 이렇게 쇼핑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한 편에서는 ‘아무것도 사지말자’는 ‘바이 나씽’(Buy Nothing) 운동도 조용히 펼쳐지고 있다. 이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에게 ‘블랙 프라이데이’는 ‘바이 나씽 데이’이다. 이날 하루만큼은 아무것도 사지말자는 ‘바이 나씽 데이’는 1992년 9월 캐나다의 사진작가 테드 데이브가 과소비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며 시작됐고, 97년부터 연중 최대 쇼핑날인 추수감사절 다음날로 정착됐다.
그런가 하면 ‘바이 나씽 크리스마스’도 있다. 성탄절의 상업화에 반대하는 엘리 클락 가족이 1968년에 시작한 이 운동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2001년 캐나다의 메노나이트 교단이 공식적으로 시작했으며, 2011년 ‘크리스마스를 점령하라’(Occupy Xmas) 이벤트로 거듭났다.
하지만 이런 일회성 단발성의 소비 자제가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안사기 운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것도 안사기 프로젝트’(Buy Nothing Project) 회원들이다. 자신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버리거나 쌓아두지 않고, 이웃과 주고 받고 나누며 살아가는 이들은 현대사회의 나쁜 화두인 소비와 낭비와 오염과 쓰레기를 줄이는 첨병이자 파수꾼이다.
미국식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기)라 할 수 있는 ‘바이 나씽 프로젝트’는 워싱턴 주에 살고 있는 레베카 록펠러와 리즐 클라크가 시작했다. 북서부 태평양 해안에 떠밀려오는 오만가지 플라스틱 쓰레기를 보면서 환경문제를 걱정해온 두 사람은 2013년 네팔과 티벳 국경 인근의 산골마을을 방문했을 때 극도로 제한된 자원을 공유하며 꼭 필요한 만큼만 소유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최초의 ‘바이 나씽’ 그룹을 만들었다. 이 ‘안사기’ 운동은 차츰 미국을 넘어 세계 각국에서 동참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코로나 팬데믹 봉쇄기간에 회원이 10% 이상 늘어나 현재 44개국에 회원 427만명, 각 지역관리자 1만3,000명으로 활발하게 번져나가고 있다.
‘바이 나씽’의 운영방식은 간단하다. 페이스북 앱을 통해 자기 동네 ‘바이 나씽’ 그룹에 가입한다. 회비도, 의무도, 조건도 없고, 모든 참여는 자발적이다. 이 앱은 주고(Gift), 받고(Ask), 빌리고(Lend), 감사하는(Gratitude) 포스트로 나뉘어있다. 주고 싶은 것, 필요한 것, 빌려 쓰고 싶은 것, 기증하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 여기에 공지하면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공유하여 물건을 나눠 쓰게 된다.
회원들은 옷, 책, 장신구, 가구, 식재료, 정원기구, 전자제품, 심지어 자쿠지나 자동차까지도 무료로 나눈다. 한 여성은 중요한 파티에 초대받았는데 마땅한 드레스가 없다는 사연을 올리자 드레스는 물론이고 화장과 머리치장, 장신구까지 제공받았다. 생일파티를 하려는데 식기와 와인잔이 모자라는 경우, 이를 알리면 곧바로 한 동네에 사는 이웃에게 빌릴 수도 있다.
바이 나씽 회원들은 사재기나 물류대란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화장지가 동이 났던 작년 팬데믹 초기에도 이들은 앞 다퉈 “화장지 필요한 사람 알려주세요”를 공지하며 나눠 쓰는 미덕을 보여주었다. 양심적 자원 공유다.
‘사지 않고, 팔지 않고, 교환하지 않고, 거래하지 않는다’는 신조를 가진 이들은 물건의 가치보다 이웃 간의 신뢰와 유대감을 더 큰 가치로 여긴다. 모든 선물의 가치는 같고, 인간적 연결이 그 가치를 대변한다. 결과적으로 ‘안사기’ 운동은 단순한 소비절제운동에서 벗어나 동네주민들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들 ‘기쁘게’ 이 일을 한다는 것이다. 주는 기쁨, 돕는 보람은 전염성이 있어서 더 베풀고 싶고 더 돕고 싶은 마음을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만든다. 가진 것을 나누는 관대함, 남의 필요를 헤아리는 친절함,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절제하는 정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공동체에 훈훈한 정과 인간미를 불어넣는 것이다. 자선이 아니라 선물이고, 절약이 아니라 절제인 이 운동은 최소한의 것들만 가지고도 풍요롭게 살아가는 미니멀리즘 라이프와도 맞닿아있다.
연말 선물이 고민인 계절이다. 가족친지에게 줄 선물을 고르다보면 실상 대개가 필요 없는 물건들이다. 없는 것이 없는 이 시대에 우리는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의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온갖 상품과 물품은 차고 넘치지만 사람 사이의 진정한 소통이 부재한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선물은 물건이 아니라 마음 아닐까? 친구나 가족 이름으로 자선기관에 도네이션 하거나,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해온 물건을 건네주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나누는 일 같은 ‘진짜 선물’들이 점점 더 필요해지는 세상이다.
오늘, 1,813명의 회원들이 있는 ‘바이 나씽 미드윌셔’ 그룹에 조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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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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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지금가입합니다. 나는 매일을 내일죽을수있다 하고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