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는 “이번 인플레이션과 유사한 역사적 사례”라는 제하의 글을 CEA 공식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경제자문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여섯 차례의 물가급등 사례를 소개하며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1970년대의 것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현재의 인플레이션과 가장 유사한 사례로는 1945년에서 1948년 사이의 물가급등을 불러온 2차 대전 종전이후의 첫 인플레가 꼽혔다.
지난 수요일에 나온 물가동향보고서는 달갑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예컨대 현재의 물가상승률은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러나 보고서의 내용 가운데 CEA의 분석과 상충되는 대목은 전혀 없다. 반면 종전 후 첫 인플레이션과의 유사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인플레는 1979년도가 아닌 1947년도의 물가급등세와 닮은꼴을 이룬다.
우선 1946-1948년의 인플레이션에 관해 알아보자. 당시의 인플레는 장기적인 임금-물가 동반상승의 시작이 아닌, 일회성 물가급등 사례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책입안자들은 이것이 일시적 상황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놓쳤다. 인플레를 더 이상 문제 삼을 필요가 없는 시점에 도달한 이후에도 이들은 줄기차게 강경조치를 이어갔고, 결국 1948-49년의 경기침체를 불러왔다.
이제 수요일의 물가동향보고서를 들여다보자. 보고서를 읽어보면 이번 인플레이션은 경기과열에 기인한 전형적 케이스임을 알 수 있다.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이 턱없이 부족한데 비해 현금 구매력은 차고 넘친다. 올해 초반의 물가상승은 음식, 에너지, 중고차와 함께 팬데믹 이후 수요가 반등한 항공여행 등 서비스 분야에 집중됐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 전반에 걸쳐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 모양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의 전반적인 수요가 사실상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상품과 용역에 대한 실제 지출을 의미하는 실질 GDP는 팬데믹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가정할 경우 예상되는 경제적 능력보다 약 2%가 낮다. 그러나 팬데믹 전에 비해 소비자들의 용역구매가 줄어든 반면 상품구입이 늘어나면서 수요가 왜곡됐고, 이로 인해 항만과 트럭수송, 창고 등에 과중한 하중이 실렸다. 이같은 공급망 이슈는 전 세계적인 반도체 칩 부족과 근로자들의 직장복귀 거부감과 맞물리며 더욱 과장됐고,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물가급등현상이다.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다. 취업을 원하는 이들에게 이처럼 풍부한 일자리가 제공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상투적인 말과 달리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빈민층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는다. 임금은 저소득 근로자들 사이에서 가장 빠르게 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1946-1948년의 물가급등이 2021년의 인플레와 관련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전쟁기간 중 억눌렸던 소비욕구가 폭발하면서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소비자 지출이 급증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경제가 거대한 수요변화에 적응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1940년대의 두드러진 변화는 군에서 민간분야로의 수요 이동이었다. 그리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결과는 1947년, 20% 선을 넘어선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났다. 당시의 인플레이션은 현재의 물가급등 추세와 달리 음식과 에너지, 제조업분야의 임금성장에 국한되지 않았다. 이처럼 전반적 경제상황을 반영한 1947년도의 인플레이션은 22%로 정점을 찍었다.
당시 인플레이션은 오래 가지 않았지만 곧바로 끝나지도 않았다. 물가는 1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그러나 1948년 한 해동안 물가는 급속히 떨어졌고, 1949년에 이르러 일시적인 디플레이션까지 발생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급속한 인플레이션에 대해 역사가 일러주는 교훈은 무얼까? 첫 번째 교훈은 일시적 경기과열이 반드시 1970년대식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1946-1948년의 경기과열은 장기적인 인플레를 초래하지 않았고, 우리의 현 상황을 야기한 일련의 사건과 상당한 유사점을 지닌 1차 세계대전과 한국전 역시 장기적인 물가급등을 불러오지 않았다. 지금 우리에겐 인내심이 필요하다. 1940년대에 발생한 사건들로 미뤄볼 때, 수 개월간 지속된 이번 인플레이션이 결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주장은 우스꽝스럽다.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채권시장은 이번 인플레이션이 일시적 현상임을 가리킨다. 2년 후 만기가 되는 물가연동채권은 현재 마이너스 이자율을 기록 중이다. 이는 투자자들이 가까운 시기에 물가가 빠르게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시장의 장기적 인플레이션 전망은 여전히 안정적이다.
현재의 상황에 걸맞는 또 하나의 교훈은 물가급등이 장기적 투자계획을 취소해야할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나 민주당의 맨친 상원의원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1940년대의 고도 인플레이션은 주간고속도로망 건설처럼 미국의 미래를 위한 장엄한 서사시적 공공투자에 뒤이어 나왔다. 바이든 행정부 지출안도 단기수요를 거의 확대하지 않은 채 장기 공급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1940년대의 대규모 공공투자와 흡사하다.
물가동향보고서의 내용이 달갑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우리 모두 앞으로 나올 보고서가 좀 더 개선된 내용을 담기를 원한다. 그러나 1970년대와의 억지 비교를 통해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성을 외치는 것은 역사의 번지수를 제대로 찾지 못한 결과이다. 올바른 역사적 선례는 현재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공황상태에 빠질 이유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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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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