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병원 야간경비원이다. 한 여성이 곤경에 처해있어서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콩고는 몬순 시즌. 엄청난 폭우를 뚫고 병원으로 향한다. 도착해 보니 당장 제왕절개를 하지 않으면 산모와 아기의 생명이 위태롭다. 수술 준비 후 환자의 배를 절개하는 데 갑자기 불이 나간다. 칠흑 같은 어둠, 전기는 돌아오지 않는다.
내 앞에는 두 생명이 놓여있고, 들리는 것이라곤 지붕 위로 쏟아지는 빗소리뿐. 무력감이 엄습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 침대 머리맡에 빛이 나타난다. 마취사가 후두경을 들어 내게로 비춰준다. 그러자 수술실 간호사가 셀폰을 켜서 환자를 비춘다. 곧 이어 여러 사람이 셀폰을 들고 들어온다. 6개의 셀폰과 후두경 하나, 수술할 만한 빛이다. 여성과 아기는 무사했다.”
국경없는의사회(Medecins Sans Frontiers) 홍보물에 담긴 데이빗 쿠와야마라는 외과의사의 편지이다. 집으로 날아드는 기금모금 편지들에는 가끔 이런 감동적인 내용이 있다.
그는 의사 아버지 슬하에서 자랐지만 정작 자신을 의사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은 MSF였다고 썼다. 고등학생 때 MSF에 매료된 후 지금까지 이 단체에서 일하는 것이 그에게는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길이라고 한다. 그는 말한다. “앞의 이야기는 국경없는의사회 그 자체이다. 팀으로서, 조직으로서, 함께, 우리는 캄캄한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한 줄기 빛이 된다.”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 가 떠오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빛이었느냐”고 묻는다면 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창립 50주년을 맞는 MSF는 비아프라 내전을 계기로 탄생했다. 나이지리아의 동남부 지역, 비아프라는 1967년 분리 독립선언 후 죽음의 땅이 되었다. 무자비한 나이지리아 정부군과의 교전으로 사상자가 속출하고, 지역봉쇄에 따른 기근으로 주민들이 죽어갔다. 구호에 나섰던 프랑스 의사들은 현지의 참상을 본 후 인종, 민족, 국가, 종교를 초월하는 긴급의료구호 단체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렇게 설립된 국경없는의사회는 지난 50년 전쟁과 재난지역 어디든 환자가 있는 곳이면 달려갔다. 모두가 기를 쓰고 탈출하는 곳으로 그들은 목숨 걸고 들어갔다. 그들은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걸까.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던 MSF의 위그 로베르 구호팀장은 “큰 보상을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을 살리는 일 자체가 보상, 크나큰 보람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험 마슬로는 사람의 욕구에 단계가 있다고 했다. 생명유지에 필요한 생리적 욕구에서 시작해 안전의 욕구, 애정·소속 욕구,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 욕구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자아실현 욕구까지 이루고 나면 보통 성공한 인생으로 인정받는다. 그런데 거기서 한 단계를 더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앞의 편지를 쓴 쿠와야마는 실력을 인정받는 미국의 혈관전문의이지만 틈나는 대로 MSF 봉사에 참여한다.
이런 욕구를 자기초월의 욕구라고 마슬로는 후에 추가했다. 자신을 넘어 타인과 세계에 기여하고자 하는 숭고한 욕구이다. 자신과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타인의 아픔을 아파하고 그들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사람들이 드물지만 있다.
1942년 사우스조지아의 한 시골에 코이노니아라는 농장이 세워졌다. 교제와 상호공유를 바탕으로 한 초대 기독교인들의 공동체 생활을 본뜬 농장이다. 농업전문가이자 성서학자인 클레어런스 조단 박사가 인종적 경제적 불평등 없는 세상을 꿈꾸며 시작했다.
조단 박사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안락한 삶이 보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늘 딴 데 가있었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흑인들, 구조적 불합리로 아무리 일해도 빚과 가난의 사이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작농들이 항상 눈에 밟혔다.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돕고 싶은 마음에 그는 농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코이노니아 공동체를 시작했다. 공동소유, 비폭력, 하느님 아래 평등을 원칙으로 삼았다.
백인과 흑인이 나란히 농사짓고 함께 거주하며 함께 소유하는 실험이 평탄할 리가 없었다. 툭하면 KKK를 위시한 백인주민들의 테러가 잇달았다. 그런 역경 속에서도 조단은 신앙과 사랑으로 꿋꿋이 코이노니아를 지켜냈고, 이를 모태로 탄생한 것이 해비타트 운동(Habitat for Humanity)이다. 1969년 첫 집이 지어진 후 50여년 미국 50개주와 전 세계 70개국에서 인종과 종교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보금자리를 얻고 있다. 비범한 존재들의 자기초월 욕구 덕분이다.
올 한해 삶의 들판에서 무엇을 추수했는가. 무엇에 감사하는가. “하느님, 추워하며 살게 하소서./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을/ 고마워하게 하소서.”<마종기 ‘겨울 기도 1’ 중> 우리의 감사는 이러해야 할 것 같다.
올 한해 추운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람이 되어준 적이 있는가. 캄캄한 누군가에게 빛이 되어준 적이 있는가. 모두가 그러했기를, 그래서 추수감사의 계절에 삶의 의미와 보람을 가득 추수하기를 바란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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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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