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우리’(Me, We)라는 두 단어가 시가 되었다. 위대한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아니었다면 이 간결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린 두 단어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가 되진 않았다. 1975년 하버드 대학교 졸업반 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했던 무하마드 알리에게 한 청중이 시를 읊어달라고 청했다. 그는 간결하게 화답했다. “Me, We”
올해 서른 두살의 데이빗 클레이 디아즈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오스트리아 영화 ‘나, 우리’(Me, We)는 무하마드 알리의 시를 제목으로 삼았다. 비엔나에서 망명 신청자들을 위한 난민 수용소를 운영하며 노모를 돌보는 제럴드, 난민을 위한 임시 캠프의 자원봉사를 자청해 직접 지중해로 가는 마리, 위험한 이주자들로부터 젊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에스코트 단체를 설립한 아직은 힘이 약한 십대 마르셀, 미성년 난민을 집으로 데려와 오스트리아로의 망명을 도와주는 중년의 TV에디터 페트라, 이렇게 4편의 에피소드가 얽혀서 이주 위기에 부딪힌 유럽의 현실상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디아즈 감독의 첫 영화 ‘에고니’(Agony) 만큼 감각적 연출이 돋보이는 수작은 아니다. 그래도 오스트리아 출신의 30대 감독이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국제 사회의 최대 이슈인 난민 수용 문제를 깊이 고민한 흔적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영화는 인종·종교·국적·정치적 견해 등으로 인한 박해를 피해 고국을 탈출한 ‘난민’(refugee)과 가난을 피해 더 풍요로운 인생을 누리려 외국으로 떠나온 ‘이주자’(migrant)의 차이를 정확히 보여준다. 유럽은 유엔난민조약에 의거해 난민으로 인정되는 이들은 보호받도록 되어 있다. 행여나 불법 입국했더라도 도착한 국가에서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거나 임시 보호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주자는 불법 체류일 경우 강제 추방된다. 일반적으로 유럽으로 유입된 이들은 이주자이지만 시리아 등 분쟁 지역에서 온 이주자는 난민으로 인정된다. 한 가지 문제는 유럽으로 몰래 들어온 난민 10명 중 3명이 ‘난민을 가장한 불법 입국자’라는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영화 속 페트라가 17세의 시리아 난민으로 추정해 집으로 데려온 모하마드가 바로 그런 존재다. 함께 생활하면서 난민이 아니라 22세의 처자식까지 있는 모로코 출신 이주자인걸 알게 된 페트라와 감정 싸움에 진 마수르(모하마드의 본명)는 망명을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간다. 그 순간 페트라가 묻는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를 아냐”고. 당연히 모른다고 답한 마수르에게 그녀는 손짓과 더불어 “Me, We”라고 답한다.
디아즈 감독은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태어나 페루 리마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뮌헨 TV 영화대학을 다녔다고 한다. 디아즈 감독이 학창 시절을 보낸 오스트리아는 2015년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으로 유입되었을 때 통로가 된 국가다. 터키, 그리스와 같이 ‘난민 갈등’을 겪으며 아프간 난민을 더 이상 수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눈총을 받기도 했다. 디아즈 감독은 영국의 브렉시트, 오스트리아의 반 난민정책을 통해 ‘나에서 우리로’가 아니라 ‘우리에서 나로’ 다시 이동하는 유럽의 현재를 보여주고 있다.
또 한명의 주인공 마리를 통해서는 지중해가 새 삶을 찾으려는 중동·아프리카 이주민이 유럽 대륙으로 가는 주요 루트임을 보여준다. 이들은 통상 리비아나 튀니지를 기항지로 삼고 낡은 고무보트에 의지해 바다를 건너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넜다 하더라도 유럽에서 난민 지위가 인정되는 사례는 극히 적고 대부분은 애초 출발지로 추방되지만 그래도 인간다운 삶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인간다운 삶을 찾아 나선 이주민과 난민의 인권 보호를 다시 한번 호소하며 “리비아와 같은 불안전한 국가로 돌려보내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국제사회에 촉구했다. 교황은 “(리비아에서) 많은 남성과 여성, 아이들이 비인간적인 폭력에 노출돼 있다. 그 곳으로 되돌아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고통받고 있나. 그곳에는 (나치 수용소와 같은) 진짜 ‘수용소’가 있다”고 했다.
‘나, 우리’는 역사상 가장 짧은 시다. 그래도 공감 메시지 만큼은 그 어느 시보다 강력하게 전해진다. 영국 문화사상가인 로먼 크르즈나릭이 쓴 글처럼 우리는 모두 더 큰 전체의 부분이며 타인들과 연대를 형성함으로써만 우리의 인간성을 완전히 실현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 우리’라는 짧은 시에 담긴 철학은 우리에게 직접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타인들에게는 함께하도록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대중적 공감을 창출하는 과제에 기여하라고 요구한다. 이제 다시 ‘나에서 우리로’ 돌아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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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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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정말 중요하며 나를 나만을 내가 전부라 우겨대지만 우리없인 내가 존재할수도 존재 가치도 존재자체가 무의미한것 우리라는 걸 다시한번 염두에두는 정신 영혼 양심 염치라도 잇어야 하것만 트 라는 엉터리가 이모두를 무시하고 정신이상증상으로 지구촌을 흙탕물로 만드는걸보면 서 잉간들의 어리석음 이 잉간들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연약한가를 알것같으면서도 슬픈현실 정신바짝차려 내가할일만이라도 열심히 나를 이웃을 나라를 지구촌을위해 자유를 권리를 행복을위해 정성을 모두다 다하길 하늘에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