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식 원로목사와 김수자 사모 (REV. JOHN JOUNG-SEEK KIM, MRS. ELIZABETH SOOJA KIM)
“매일매일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김정식 원로목사와 김수자 사모.
부부는 나날이 서로 닮아가고 있다. 삶의 고비마다 은인이 있었음이 모두 주님의 섭리요 사랑이라고 입을 모은다. 은인의 덕을 입었음에도 모르고 살고, 잊고 사는 세상인데 8순 부부는 이래서 ‘진국’ 이란 말을 교인들로부터 들었던 것일까. 김정식 원로목사·김수자 사모의 삶을 들여다본다.
■ 1982년 모친 사망후 40넘은 나이에 목회자의 길로
■ 미들빌리지 커뮤니티교회^스태튼아일랜드 한인교회서 사역
■ 2002년 은퇴후 AWCA 영어성경공부반 개설 봉사활동에 적극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1959년 연세대에 입학하여 대강당 중앙, 맨위 비로드 천위에 금색으로 수놓인 이 글귀에 사로잡혔다. 처음 책을 많이 읽으라는 뜻인가 했는데 곧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란 걸 깨닫게 됐다.”
그때부터였다. 1959년 19살의 김정식 학생은 매 수요일마다의 채플 예배가, 신앙을 새로운 눈, 새로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더 없는 은혜의 시간이었음을 안 것이다.
1940년 종로구 묘동에서 출생한 김정식은 해방 후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무명옷에 나무 비녀를 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입학한 곳이 성북초등학교, 4학년때 6.25가 터지고 혜화초등학교를 거쳐 휘문고,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1963년 졸업했다.
ROTC 제1기 육군장교로 복무 후 1965년 9월 삼일물산주식회사에 입사, 1966년 2월 동방해상보험회사로 옮겼는데 바로 이곳에서 평생 반려자가 된 아내 김수자를 만났다. “ 아내는 이화여고 시절 종교부장을 할 만큼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몸에 배인 사람이다. 나는 천주교 집안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런데 아내를 만나면서 나는 주님을 만나기 전의 청년 사울에서 주님을 만난 후의 바울로 달라졌다.”
1968년 가을 폐결핵을 앓게 된 그에게 약혼녀는 6개월간 매일 생달걀, 로얄제리, 참기름 한숟갈씩 마시게 했고 드디어 건강한 몸으로 1969년 3월22일 결혼식을 치렀다.
1970년 8월 동방해상보험의 AIG ( American International Group ) 주재원 겸 뉴욕사무소장으로 뉴욕에 왔다.
1971년 8월22일 온가족이 뉴욕으로 왔다. 1979년 2월, 김정식은 39년 지켜온 주일 미사대신 개신교회 아스토리아 한인교회에 주일예배에 참석하면서 신앙의 행로가 바뀌었다. 특히 그해 3월 춘계부흥회는 “내 인생에 깊이 잠들어 있던 신앙의식을 새롭게 깨워 일으켜주는 놀랍고도 고마운 집회였다” 고 고백한다. “내가 왜 죄인인지, 회개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나니 주님이 내 앞에 웃으며 서계셨다”고.
한인 이민자들이 몰려들던 시절, 김정식·김수자 부부는 평신도로서 주일학교 봉사를 시작했다. 미연합 감리교 동북부 지역총회가 주최하는 교사 훈련회 강습을 6개월간 받은 뒤 주일학교 교사 훈련 자격증을 받았고, 그후 5년간 본부의 강사진과 함께, 한인교회 교사수련회를 직접 개최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18년 부활주일에 성경필사 표창과 상을 받은 김정식·김수자 부부.
▲드디어 목회자의 길로
1982년 11월 서울에서 어머니 장례식을 마치고 늦은 저녁 김포공항에서 가족과 함께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허전한 마음을 이루 가눌길이 없어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빛 되신 주 저 본향집을 향해 가는 길 비추소서”하는 찬양이 절로 우러나왔다.
김정식 목사는 “하나님이 나의 인생길을 처음부터 예비하고 계획하셔서, 목회의 길로 인도하셨음이 80대에 들어선 이제, 눈에 환히 보인다” 고 소회한다.
그는 40이 넘어서 1983년 뉴욕 유니온 신학교 목회학 석사과정에 들어갔던 것. 학교 입학시 추천서를 써준 김이곤, 노정선 목사, 수많은 리포트와 논문, 졸업논문까지 완전한 문장으로 바꾸어준 여학생 앤 콕스(Ann Cox 등등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고 이 곳에서 들은 세계적 석학들의 명강의는 늘 잊지못한다.
졸업 후 1987년 7월, 당시 218년 역사를 지닌 Community Church in Middle Village의 최초의 외국인이자 한국인 담임목사로 4년간 목회활동을 했다.
Walter Kienzle, Margaret, Davis, Nancy 등등 온교인들은, 동양 사람이고 영어도 완전치 않은 그를 받아주고 늘 담임목사를 보호하고 지켜주었다.
1991년 스태튼 아일랜드 한인교회로 파송 받았다. 목회 사역 중 특히 성경공부에 많은 공을 들였고, 또한 전도에도 많은 열매를 거두며 교회는 부쩍 성장했다. 교인들은 신년카드, 때마다 정성 가득한 편지는 물론, 마음과 축복, 사랑을 주는 김정식 목사와 김수자 사모를 ‘진국’ 이란 말로 표현했다.
“하나님께, 모든 분께 감사하는 마음에서 출간” 한 김수자의 “어두움을 밝히는, Cell of love “ 저서 앞면(왼쪽)과 뒷면.
▲은퇴후 봉사의 삶
김정식 목사는 2002년 7월 연합감리교회 뉴욕연회를 은퇴, 2004~2010년 AWCA 특별영어성경공부반에서 봉사했고 현재 뉴저지연합교회와 구세군교회의 예배에 참석 중이다.
김수자 사모는 팬데믹 기간동안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워, 믿음의 유산을 주신 어머니 김기황 권사님을 기리는 영상도 만들었다. 현재 “ 하나님이 우리의 ‘길벗’ 되신다” 는 마음으로 사는 부부는 뉴저지에 살며 여러 한인봉사센터와 교회는 물론, 미국 선거때마다, 자원봉사자로도 일한다.
김정식·김수자 부부의 슬하엔 1남1녀가 있다. 딸 마가렛 김은 사위 브라이언 리 낫소카운티 부장검사와 의 사이에 딸 셋을 두었다. 아들 죤 김은 호주 Macquarie Group의 투자담당 이사이며 역시 딸 셋을 두었다.
삶에서 만난 고마운 분들의 이름을 잊지 않고 그들의 선행을 칭찬하는 부부, 아마도 깊은 신앙심에서 나오는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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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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