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게으른 사람이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있었다. 어쩌다 방에 들른 학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교수님 연구실에 오면 꼭 헌책방 온 것 같아서 좋아요.” 필자는 이 말이 아첨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기분 좋다. 나이 들수록 아첨에 길들여지나 보다. 객관적 사실은 아마도 “전혀 정리 정돈이 돼있지 않아서 어지러워요”가 아닐까. 2~3년마다 자리를 옮겨야하는 검사나 판사 생활을 했다면 아마도 나처럼 방만하게 연구실을 운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늘 옮겨야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용품을 간소화했으리라. 대학에 들어왔을 때부터 30년 가까이 같은 장소에서 평생 근무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게으르게 사는 것이 용납됐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청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청소의 철학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청소는 세 가지 요소로 이뤄진다. 청결하게 하고 정리 정돈하는 것이다. 그런데 핵심은 쓸데없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 청소를 잘하는 사람은 잘 버리는 사람이다. 잘 버리기 위해서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것과 여전히 필요한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요즘 중고마켓에서 물건을 사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사기만 하지 팔지를 못하는 것이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럴까’라고 생각해본 결과 ‘나는 욕심이 많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좋은 물건을 싼 가격에 사게 되면 짜릿한 쾌락이 온다. 문제는 그 쾌락이 우리를 노예로 만든다는 사실이다. 욕심이 많을수록 모셔야할 주인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이다. ‘무언가를 자꾸 더해나가야 점점 더 완전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더 이상 뺄 수 없을 때까지 뺐을 때 완벽해진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한 말이다. 이 말을 진작 알았더라면 훨씬 더 단순한 삶을 살았을 텐데. 과거를 후회하지 말자. 지금부터라도 그것을 실천하면 된다.
전문가 수준의 사진을 찍는 지인이 언젠가 이렇게 물었다. “교수님, 사진은 언제 제대로 배우는지 아시나요.” “잘 모르기는 하지만 빛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을 때 아닌가요. 조리개와 셔터의 오묘한 조합을 이해하고 난 후에 구도를 잘 잡을 수 있으면 된 것 같은데요.” 돌아온 대답은 “사진을 다 찍고 나서 편집할 때 제일 많이 배웠습니다. 간직할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할 줄 알게 되면서 사진을 배웠죠. 지우는 게 배우는 겁니다.” 뒤통수를 한 방 제대로 맞았다. 글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초고에 써놓은 것을 많이 지울수록 글은 좋아진다. 학생들 논문을 지도해보면 초고에서 점점 줄여 나갈수록 좋은 논문이 나온다. 강연도 마찬가지다. 준비한 것의 80%만 말할 때 최고의 성과가 나온다. 선배 교수한테 들은 조언 중 하나가 “어떤 명강의도 시간을 넘겨서는 안 된다”였다.
최고경영자(CEO) 대상 강연에서 “1년에 책 몇 권을 읽으셨나요”라고 물어보면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여론조사하겠다고 하면 노골적으로 대드는 사람들이 있다. “교수님은 몇 권을 읽으셨나요.” 이쯤에서 휴전하는 것이 낫다. 더 밀어붙이면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때문이다. 대개들 많이 못 읽는 것 같은 눈치다. 그래서 이유를 물어보면 하루하루 관심가지고 지켜보고 시켜야 할 현안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대체 몇 개나 되느냐. 구체적으로 적어 봐달라”고 물었다. 많게는 40개, 적어도 15개는 써낸다. 평균 25개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다섯 개만 골라 달라”고 요구한다. 그리고는 “바로 그 나머지 20개가 여러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5개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중입니다. 그 20개 다 잊어버리세요”라고 조언한다. 현안을 다 끌어안고 있는 리더는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않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줄여야 몰입한다.
멀쩡한 노트북에서 키보드를 빼버렸다. 그랬더니 훨씬 휴대하기가 편해졌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만든 아이패드의 탄생 스토리다. 태블릿은 정보와 지식을 소비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 반면에 정보와 지식을 생성하려면 아무래도 노트북이 필요하다. 키보드가 꼭 있어야할 필요 없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탄생한 것이다. 완벽은 뺄셈의 미학에서 나온다. 빼고 또 빼고 더 이상 뺄 수 없을 때까지 빼면서 살아라.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탐욕도 이제는 줄일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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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 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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