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북가주 어느 한인사찰에 몇 달 머물렀던 00 스님. 그는 영어도 운전도 안돼 신도의 도움으로 몇 번 샌프란시스코 등지 관광을 한 것 빼고는 거의 절만 지키다 돌아갔다. 그런 그가 접속자가 꽤 많은 한국의 불교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미국과 미국인들의 형편없음을 개탄하면서 부처님 가르침을 미국사회에 더 빨리 더 널리 보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었다. 열혈 추종자들에 의해 생불이라 불릴 정도로 탁 트인 수행자로 알려진 또 다른 00 스님은 뉴욕 지하철의 불결과 서울 지하철의 청결을 비교하거나 미국에서 발생하는 엽기적인 사건들을 나열하면서 미국에 어서 빨리 부처님법을 전파해야 한다는 식의 발언을 하곤 했다. 북가주에서 사찰을 하다 뜬금없는 곳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한 뒤 신도들이 흩어지는 등 지켜보는 눈이 줄어들자 절을 슬며시 처분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제3의 00 스님도 믿거나 말거나 자신의 전법활동 경험담을 곁들이며 미국땅 포교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일부 한국스님들의 미국 내지 서양 걱정은 지난해 초 들이닥친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더 심해진 듯하다.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지난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내놓은 법어를 통해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지도 않은 채 코로나 사태는 서양 물질문명이 빚은 것이라며 동양 정신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동양 정신문화의 요람 같은 중국에서 인위적으로 배양되고 유출됐다는 세계 의학계 과학계의 의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었다. 종정뿐 아니다. 불교매체 등에 소개된 스님들의 ‘코로나 기고문’은 대개 이런 기조였다. 이들의 상투적이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발언을 듣노라면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탈레스 등 고대 그리스의 위인들부터 니체 프로이트 등 근현대 서양철학, 아니 세계철학의 거두들이 죄다 동양인들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불교로 좁혀보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서양에는 제대로 된 불교가 아예 없는 것처럼 진단한다. 그리고는 포교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강조한다. 무지가 빚어내는 촌극이다. 한국의 1700년 불교사에 비해 고작 150년 안쪽인 서양의 불교사가 현저히 짧은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이 곧 불교의 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중국화된 한역불경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빨리어/산스크리트어로 된 초기경전 바로읽기가 대세로 자리잡은 요즘 추세에 비춰보면 길고 짧은 판단 또한 180도 달라진다. 서양은 불교를 처음 접할 때부터 초기경전, 즉 부처님의 원음에 가깝게 접한 반면 한국불교의 경우 1970년대에 들어서야 초기경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아직도 “다른 건 몰라도 불교는 아무래도 우리가...” 우월하다는 생각에 젖은 이들이 있다면 독일출신의 세계적 불교학자 에드워드 콘즈(1904–1979)가 1951년에 펴낸 역작 ‘불교의 길’(원제 Buddhism: Its Essence and Development)을 읽어볼 일이다. 24세 때 쾰른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콘즈는 산스크리트어 등 무려 14개 언어를 구사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인 1941년 불교로 개종해 대부분의 반야부 경전을 번역했고, 불교명상(Buddhist Meditation), 인도의 불교사상(Buddhist Thought in India), 불교의 지혜(Buddhist Wisdom) 등 많은 명저를 남겼다.
70년 넘도록 세계 불교학자들과 독자들이 열독하는 스테디 셀러 ‘불교의 길’이 올 여름에 한국어로 새로 번역돼 나왔다(도서출판 뜨란 펴냄). 역자는 청화 큰스님의 유발상좌 배광식(법명 경주) 전 국제포교사협회 회장(전 서울대 치의학대학원장)이다. 이 책에 대해 영국의 동양학자 아더 웨일리는 “오늘날 영어 또는 다른 어떤 언어로든 불교에 관해 콘즈의 책만큼 포괄적이고 읽기 쉽게 설명한 글은 없다”고 격찬했다.
불교의 길은 △서장 불교의 길에 들어서며 △1장 불교의 공통 기반 △2장 승단불교 △3장 대중불교 △4장 옛지혜학파 △5장 대승불교와 신지혜학파 △6장 신앙과 귀의불교 △7장 유식파 △8장 탄트라 혹은 주술불교 △9장 인도 밖에서 발전한 불교까지 망라돼 있다. 이밖에도 옮긴이가 ‘불교사의 주요 연표’ ‘불교사상의 갈래와 흐름’을 꼼꼼하게 덧붙여 알찬 공부가 되도록 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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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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