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는 관점을 사관이라 한다. 일제 강점기 때에 일본이 우리나라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사관이 식민지 사관이다. 이에 따르면 우리 민족은 타율적이고 종속적이어서 늘 외세에 의해 지배와 영향을 받음으로 발전을 이룩해 왔다는 것이다. 또 역사적으로 많은 사회 정치적 변동을 겪었음에도 사회 질서나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여 근대 초기까지도 고대 사회에 머문 정체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타율성과 정체성을 가진 민족이기 때문에 일본이 식민 지배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이 잘못된 사관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의 20세기 전반기는 암흑의 시대가 되고 말았다. 또한 그 후에도 식민지 사관의 영향을 극복하기 위한 진통이 계속되곤 하였다. 사관이 잘못되면 나라가 멸망하기도 하고 식민 지배를 받기도 한다. 우리는 바로 역사를 보는 눈을 가져야 하고 바른 사관을 가져야 한다. 바른 사관을 가졌는가에 따라 국가, 사회, 개인이 번영, 발전할 수도 쇠퇴, 몰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중국도 잘못된 사관으로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바로 동북공정이라는 왜곡된 사관에 기초한 작업으로 한국 고대사를 빼앗으려는 것이다. 한국의 고대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규정하여 한국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도이다. 고구려나 발해의 역사를 중국사의 일부라고 규정함으로써 북한에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영유권을 주장하거나 개입할 명분을 가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그릇된 사관이 현실 속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는 예이다. 우리는 두 눈 부릅뜨고 바른 사관을 견지해 모든 도전들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기독교는 어떤 사관을 가지고 있을까? 이를 살펴보기에 앞서 일반 역사의 사관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많은 역사학자들은 역사를 돌고 도는 것, 즉 반복 되어지는 것으로 인식했다. 이를 순환사관이라 한다. 20세기 영국의 세계적 석학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에서 세계사를 21개 문명으로 분류했는데 이 문명들은 발생, 성장, 쇠퇴, 해체의 공통된 과정을 통하여 명멸은 반복했다고 분석했다. 즉 역사는 돌고 돈다는 것이다. 독일의 문화 철학자 오스왈드 슈팽글러도 이 순환사관으로 서양사를 분석하여 서유럽이 계속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몰락한다는 주장을 했다. 이에 반해 기독교의 사관은 직선사관이다. 인간의 역사는 돌도 돌아 무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직선으로 진보하여 나아간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때부터 마치는 날까지 역사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직선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이끄신다는 것이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나는 이 기독교의 직선사관이 옳다고 믿는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 종말의 시점이 있다고 믿을 때 우리 인생은 하나님 앞에 의미가 있게 되며 성장 발전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반복되는 순환사관으로 해석한다면 인간은 어떤 꿈도 이상도 가질 수 없다.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이나 요셉이나 모세, 또 신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은 이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모두 하나님 앞에서 치열한 인생의 의미를 찾는 삶을 찾았고 그것을 사명으로 인식했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 3:8-9)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을 깨닫게 되니까 자신이 이제까지 공부하고 경험했던 것은 배설물과 같은 것이며 자신은 새 인생, 즉 주님 안에서 발견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역사는 반복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산다. 인생의 목적이 달라지는 것이다. 직선 사관은 낙관적 인생관을 갖게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인생의 목적을 찾아 나아갈 때 보람과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역사는 케케묵은 과거의 죽은 기록이 아니다. 우리의 현실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이다. 바른 사관의 정립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강순구 목사 (성령의 비전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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