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요요마의 ‘바흐 프로젝트’ 무대는 덩그러니 놓인 의자 하나가 전부였다. 일찌감치 할리웃보울 객석에 자리잡고 앉았던 1만7,000여 청중들 앞에 마스크를 쓰고 등장한 요요마는 2시간30분 간 거의 쉬지 않고 6개의 바흐 첼로 모음곡을 혼자서 연주했다. 클래식 공연은 백발 성성한 노년층만 가득하다는 지론이 이날 저녁 만큼은 무참히 깨졌다. “원래 오케스트라 없이 하는 연주였어?”라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렸지만 “팬데믹으로 잃어버린 우리 모두의 존엄성을 위해 6번째 스위트를 바친다”는 요요마의 헌사에 객석은 숨죽여 음악과 교감했다.
요요마는 지난 2018년 8월 바흐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세계 곳곳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가 바흐를 듣는다면 사회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6개 대륙 36개 도시에서 36회 공연, 36일의 ‘행동’으로 문화가 우리를 어떻게 연계하는지 탐구하는 대장정에 돌입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요요마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공연하는 장소로 클래식 홀이 아닌 수천 명 이상 수용 가능한 광장이나 할리웃보울과 같은 야외음악당, 공원을 선택했다. 그리고 자신의 콘서트가 열리는 날을 ‘Days of Action’으로 정하고 아티스트와 컬처메이커, 문화 및 커뮤니티 단체, 각 분야의 리더들과 파트너를 맺어 대화하며 협업하고 퍼포먼스를 함께 해나갔다.
“지금처럼 분열된 시기에 문화가 만들어내는 서로 간의 이해가 우리를 하나의 세계로 묶어주고 종족 전체에 이익이 되는 정치적, 경제적 결정을 내리도록 인도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문화적 존재’이다. 문화가 어떻게 우리를 연결하고 더 나은 미래를 형성하는데 어떻게 도움을 줄지를 탐구해보자”는 것이 요요마가 전 세계 36개 도시에서 ’행동의 날’ 행사를 여는 취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연기된 ‘LA 행동의 날’은 지난 13일이었다. 이날 아침 요요마는 사우스LA 론 핀리의 갱스타 가든에서 ‘원예의 힘’ 행사를 했고 야외원형극장인 할리웃 포드 극장에서 변화해가는 새로운 사고 방식에 대해 5명의 아티스트들과 토론의 장을 펼쳤다. 그리고 보일하이츠 홀렌벡 공원과 마리아치 플라자에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과 함께 치유와 희망, 그리고 미래를 나누는 셀러브레이션과 힐링 축제를 열었다.
늦은 저녁 드디어 할리웃보울에서 ‘바흐 프로젝트’가 열렸다. 바흐의 첼로 모음곡 연주에 몰입하기에 야외음악당은 좋은 환경이 아니다. 그러나 할리웃보울 무대에 홀로 선 요요마는 6개 바흐 모음곡을 간략한 설명과 함께 장시간 첼로와 한 몸이 되어 연주를 했다. 서두르는 기색 없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관대함이 첼로 선율에 귀기울이게 만들었다. 연주자도, 관객도 주변의 움직임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요요마는 4년 전 할리웃보울에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한 적 있다. 3개의 모음곡을 연주한 후 10분의 쉼이 있었는데 그는 첼로의 거장 파블로 카잘스가 13살 때인 1890년 바르셀로나의 한 상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중고 악보에 호기심을 갖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없었을지 모른다며 경의를 표했다. 첼로 모음곡은 바흐가 독일 라이프치히로 옮겨오기 직전인 1720년 무렵 작곡했다고 한다. 지금은 음악적이고 감성의 시금석이 된 작품이지만 1900년 초까지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고 이 곡을 아는 사람조차 단순히 에튀드로 여기며 공개적으로 연주하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요요마는 1983년 처음으로 바흐의 첼로 모음곡을 녹음했다. 파리에서 음악 신동으로 알려졌던 요요마가 뉴욕으로 건너와 패기 넘치던 20대 시절이었다. 파블로 카잘스가 ‘새로운 우주로 향하는 문을 열어 준 작품’이라고 표현한 이 음악에 빠져든 요요마는 중년에 접어든 1990년대 ‘바흐에서 받은 영감’이라는 제목으로 두번째 녹음 음반을 출시했다. 그리고 2021년 그는 바흐를 연주하며 음악의 힘을 전파한다. 정치, 환경, 교육, 기술 등 모든 것이 문화와 커넥트되어 사회가 변화하기를 기대한다. “오늘날 전 세계인들이 많은 걱정과 불안 속에 살아갑니다. 기후 변화, 전쟁, 악화되는 경제 환경…. 너무 많은 걱정이 부유하는 세계 속에서 저는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후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그의 생각을 밝힌 후 늘 첼로를 잡는다.
바흐 프로젝트이 진행되면서 요요마는 첼로의 거장에서 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옮겨가는 느낌이다. 바흐 음악이 세계인의 경계를 허물 수 있다는 가치를 갖고 프랑스에서 태어나 중국계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그 자신 역시 ‘경계’를 넘는 일을 하면서 말이다.
코로나19로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바이러스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테크놀러지의 혁신이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로 존엄한 가치를 보장받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간의 존엄성’ 마저 위협하는 시대를 살아가게 한다. 사람마다 각자 다른 가치로 무장해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요요마의 바흐 프로젝트가 강조하는 ‘우리는 문화적 존재’라는 가치는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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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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