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청한 가을이다. 손대면 물들 것 같은 맑은 하늘에서 갖가지 모습의 구름이 미동도 하지 않고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늘 높고 물 맑은 계절, 가슴속에 사랑과 낭만이 숨겨져 있고 단풍잎 속에 별과 달이 감춰져 있는 계절이다. 모두를 시인으로 만들고 소년 소녀로 만드는 낭만의 계절이다. 과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멋지게 황혼 낭만으로 가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봄이 설렘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다. 가을은 봄의 설렘과 여름의 열정을 뒤로 하고 흘러간 날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한 계절이다. 가을이라는 이름 속에서 그리움의 냄새가 난다. 가을비를 맞으며 강가를 걸으면 그 냄새가 더욱 짙어진다.
개나리가 봄의 전령이라면 코스모스는 가을의 전령이다. 코스모스의 하늘거림과 청초한 들국화의 뽐냄이 고상하고 숭고하다. 하늘도, 바람도, 햇살도 자연의 모든 것들이 향기롭다. 들판은 온통 황금빛이고 풍요롭다. 산과 들은 앞 다퉈 불타고 있다.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 결실의 계절, 독서의 계절, 낭만의 계절, 사색의 계절, 사랑의 계절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낌없이 예찬했다.
여러 예찬 중 으뜸은 역시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가을은 땀의 마침표다. 봄부터 농부는 풍년을 기원하면서 땀을 흘린다. 농부에게 있어 수확은 기쁨이고 보람이다. 삶의 존재 의미다.
꽃에는 향기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으나, 그 속에 생명이 없다. 농부가 수확한 열매 속에는 생명이 있다. 결실의 계절이 없다면 인류는 생존하기 어렵다. 인류 문명과 역사는 찬란한 꽃을 피우지 못했을거다.
하늘은 높지만 낮은 곳을 알려주는 계절이 가을이다.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고, 나뭇잎이 떨어져 나목(裸木)이 되고, 비움과 떠남을 묵묵히 보여주는 가을이 있기에 사람들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된다. 낮아지는 법을 터득하게 되고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혹독한 겨울이 오기 전에 마무리하는 법도 알게 한다.
봄이 ‘여자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다. 가을만 되면 괜히 센티멘탈하고 외로워지는 사람들도 있다. 기분이 울적해져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남성들에게서 이런 증상이 많다고 해서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가을은 낙엽의 계절이다. 추풍낙엽(秋風落葉)을 보면서 인생의 처량함을 느낀다. 그러나, 낙엽을 통해 배워야 하고, 낙엽처럼 살아야한다.
낙엽은 봄에는 푸르름으로 산에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린다. 여름에는 녹음으로 시원한 그늘을 선사한다. 가을에는 노랑, 빨강으로 멋진 수를 놓는다. 뿌리에 내려앉은 낙엽들은 뿌리를 감싸주고, 알몸으로 엄동설한을 외롭게 보내는 나무들에게 따뜻한 담요가 되어 준다. 그리고 다시 봄이 되면 퇴비가 되어 새싹을 틔우는데 필요한 영양을 공급해 준다.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걸 보고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一葉落天下知秋 일엽락천하지추)고 했지만, 가을의 선구자는 역시 풀벌레 울음소리다. 그중 대표적인 곤충인 귀뚜라미 우는 소리다. 휘영청 드높이 떠오른 달빛 아래 끊일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지는 귀뚜라미 울음 소리가 애절한 가을 서정을 느끼게 한다.
귀뚜라미 우는 계절의 서글픔이 잠깐이듯 무상(無常)한 인생도 잠깐인 것을 왜 그렇게 과욕을 부리고 발버둥 치며 살고 매달리며 사나. 부(富)를 산더미처럼 축적하고 신도수(信徒數)가 세계 최고라며 기네스북에 실렸던 목사도 결국은 죽어서 수의(壽衣) 하나 덜렁 걸치고 빈 손으로 가던데.
돈이 많아 금싸라기 땅 무덤에 들어가면 영생하나? 가슴위에 황금빛 십자가 올려 놓고 관속에 들어가면 천국에 가나? 인생은 누구나 생로병사(生老病死) 네박자에 맞춰 춤추다 가는데. 귀천이나 지위고하 상관없이 결국은 모두 평등하게 흙으로 돌아 갈텐데. 가을 아침 된서리에 무너지는 꽃과 같은 인생인데.
만물이 좋은 때를 만나 좋아하듯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면서 살고, 아옹다옹하지 않고 추풍낙엽처럼 베풀고 나누며 살다 가는게 보람찬 인생 아닐까?
아침 저녁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이런 저런 가을 이야기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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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모 / 워싱턴산악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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