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밥보다 더 좋아하는 옛 직장동료가 지난주 외딴 전원주택에서 단란한 추석 주연을 베풀었다. 그는 전날 코비드-19 ‘부스터 샷’을 놔주는 간호사에게 “내일 술 마셔도 되느냐”고 딱 한 가지만 물어봤다며 좌중을 웃겼다. 그게 하나마나한 질문이었다는 그는 술 마시면 안 된다고 간호사가 말했더라도 어차피 그날 술을 마셨을 것이라며 와인을 맛있게 홀짝였다.
그의 질문은 원래부터 하나마나였다. 음주가 백신접종에 영향을 미치느냐는 애주가들의 질문이 팬데믹 초기부터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쏟아졌지만 의료당국은 그 방면의 연구내용이 없다며 똑 떨어지게 대답하지 못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연방 질병통제센터(CDC)도, 한국의 질병관리청도 “접종 전후엔 음주를 피하는 게 좋다”는 상식적 권고만 되뇌고 있다.
그래선지 한국의 애주가들 중 절반은 음주 수준이 팬데믹 이전과 비슷했으며 13%는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지난주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밝혀졌다. 음주 상대를 묻는 항목에선 대작할 사람이 없어 혼자 마신다는 ‘혼술’이 30%로 가장 많았고, 음주 장소도 술집과 식당이 문을 닫아 집에서 마시는 ‘홈술’이 70.7%로 단연 1위였다. 혼술과 홈술을 겸한 경우도 27%에 달했다.
미국 상황도 비슷하다. 랜드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인들의 음주 빈도는 팬데믹 전보다 14%(여성 폭음빈도는 무려 41%) 증가했다. 지난 4월 해리스 설문조사에선 폭음했다는 응답자가 거의 5명 중 1명꼴이었다. 폭음 기준은 여자는 하루 4잔, 남자는 5잔 이상이며 폭음빈도 기준은 폭음하는 날이 이틀 이상인 주가 30일 사이에 두 차례 이상인 경우이다.
술을 많이 마실수록 혈중알코올 농도가 높아져 바이러스가 얼씬 못한다는 술꾼들의 익살이 있다. 알고 보면 대부분의 술꾼들은 술자리를 즐기려고 일찌감치 접종을 마쳤다. 음주로 인한 본인의 건강위험은 몰라도 코비드 전파위험은 낮다. 오히려 술꾼의 익살보다 더 맹랑한 이유로 백신접종을 완강히 거부하며 대중에게 감염위험을 안겨주는 공무원들이 더 문제다.
LA경찰국과 LA소방국의 전체 직원 중 절반가량이 백신접종을 보이콧하고 있다. 일부 경찰관들은 에릭 가세티 시장이 전체 시공무원들에 내린 백신접종 의무화 조치가 연방헌법에 보장된 사생활 보호권을 침해했다며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회원 500여명을 둔 한 소방관 단체는 주 법원에 가세티를 제소하고 “우리를 정치무대 장기판의 졸처럼 취급 말라”고 항변했다.
더구나 LA 경찰관 4명중 1명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백신접종 면제신청서를 제출할 태세다. 하지만 신도들의 백신접종을 금지하는 종파는 없다. 미국복음주의협회(NAE)의 한인회장 월터 김 목사는 4만5,000여 회원교회 교인들에게 “백신접종으로 대면예배를 회복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자”고 호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백신접종이 ‘사랑의 행위’라며 적극 권장했다.
코비드-19 백신 원료가 탯줄의 줄기세포라는 가짜뉴스를 내세워 백신접종을 거부하는 자칭 낙태 반대주의자들도 있다. 일부 병원은 이들에게 “종교적 신념이 그처럼 확고해 백신접종을 거부한다면 타일레놀·펩토 비스몰·텀스·리피토어·베나드릴·이부프로펜·클라리틴·알부테롤 등 탯줄 줄기세포가 일부 원료로 들어간 상비약 처방도 거부하겠다고 서약하라”고 다그친다.
백신접종 저항률이 높은 미주리에선 사람들이 약국에 은밀히, 심지어 변장까지 하고 찾아와 백신을 맞는다는 보도도 있었다. 백신 반대자들의 조롱이나 해코지를 피하기 위해서다. 하긴 트럼프도 몰래 맞았다. 내 생각엔 그 많은 LA 경찰관과 소방관이 백신접종을 기피하는 것도 종교적 신념보다는 자기네들의 ‘마초’ 이미지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 같다.
“예수님도 백신을 맞았을 것”이라고 어느 목사가 말했단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 교훈을 LA경찰관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지난주 농장 주연에서 매화나무 숲을 바라보며 막걸리 잔을 기울인 일행 8명의 얼굴이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만큼 밝았다.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고 했다. 모두 백신접종을 마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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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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