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짓눌려 살았다. 뭣 좀 시원한 이야기 없습니까. 바이러스에 지친 사람들이 묻는다. 얼마 전 남가주의 두 한인이 2박3일 몽블랑을 도는 알프스의 등산로를 뛰고 왔다. 거의 자지 않았으니 ‘무박 3일’ 동안 171킬로미터(106마일) 산길을 달린 것이다.
‘시원한 고생담’을 청해 들었다. 주인공은 샨 리(51, 세리토스)씨와 이재훈, 리처드(55, 라크레센타)씨. 평소 마라톤과 철인 3종 등으로 체력을 다져 지방은 싹 빠진 근육질의 ‘50대 청년’들이다.
이들은 이번에 순 등반고도 1만미터가 넘는 산길을 뛰었다. 산등성이 11개를 넘었다고 한다. 지난 8월27-29일 이들이 참가한 울트라 마라톤은 프랑스 샤모니에서 열린 UTMB(Ultra-Trail du Mont-Blanc).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3개국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산악 마라톤의 월드컵, 혹은 꿈의 대회로 불리는 이벤트다.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4,810m)과 그랑 조라스(4,208m) 연봉의 거대 설산을 끼고 돌기 때문에 우선 절경이다. 오후에 출발해 뛰면서 2번의 석양과 2번의 해돋이를 맞는다. 시시각각 바뀌는 장엄한 풍경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체력과 정신력이 되는 극소수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행운도 따라야 한다. 참가 기회를 잡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참가 인원의 10배이상이 신청하는 데다, 자동출전권이 주어지는 UTMB 해외경기 참가자와 스폰서 등을 빼면 남는 자리가 많지 않다. 두 사람은 전에 각각 100킬로와 100마일 산악 마라톤 두 개 이상을 완주한 기록이 있어 참가 자격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2년 전에는 추첨에서 떨어졌다.
이번에 행운이 온 것은 코로나 덕이었다. 코로나 창궐로 프랑스 입국이 어려운 나라의 선수들이 불참하게 되면서 대회 얼마 전에 추가 모집이 있었다. 무조건 잡아야 하는 기회였다.
산악 마라톤은 ‘뛰는 등산’이라고 할 수 있다. 울트라가 붙는 것은 정규 마라톤 보다 길어서다. 보통 50킬로, 100킬로, 100마일(160킬로)짜리가 많다. 꼴찌에게도 환호가 쏟아지는 것이 이 대회다. 우승자와 함께 꼴등 완주자를 단상으로 불러내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한다. 도전에 대한 찬사와 격려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많은 질문은 밤새 뛰면서 잠은 어떻게 자나 하는 것이다. 샨 리씨는 3번 잤다고 한다. 2~3분씩 2번, 15분 토막잠 한 번을 더해 이틀간 20분 정도 눈을 붙였다. 잤다기 보다 잠깐 졸았다는 표현이 나을 것 같다. 그나마 리처드 리씨는 졸 수도 없었다. 80마일 지점에서 당한 인대 부상 때문이었다. 컷 오프 타임은 46시간 30분. 눈까지 붙였다가는 탈락 걱정이 컸다.
정 졸음을 참을 수 없으면 앉아서 엎드린 채 잠깐 눈을 붙인다고 한다. 등을 댔다가는 다시 일어나지 못할 수 있다. 밤에는 앞선 사람의 불빛을 따라 뛴다. 헤드 랜턴 불빛만 줄지어 검은 산을 오르는 풍경이 펼쳐 진다.
식사도 궁금하다. 등산로에 설치되어 있는 스테이션 중에 빵, 치즈, 초콜렛, 쿠키, 바나나 등이 준비된 곳이 있다. 대부분 여기서 “후다닥-” 해결한다. 주로 단 것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기 때문에 뛰고 난 뒤에는 속이 뒤죽박죽 엉망이 된다.
날씨는 산악 마라톤에서 가장 큰 위험 요소다. 지난 6월 중국에서 열린 100킬로 산악 마라톤에서는 갑작스러운 기상변화로 21명이 숨졌다. 저체온증이 원인이었다. 긴 바지와 긴 팔 상의 등 따뜻한 옷과 아래위 방수복은 필수로 지참해야 한다. 없으면 실격된다. 셀폰도 켜져 있지 않으면 감점요인이다. UTMB는 지난 20년새 두 번 취소됐다. 지난 해는 코로나, 그 전에는 기상 때문이었다. 비는 흔하고, 눈발이 뿌리기도 한다. 올해 낮기온은 화씨 50~60도대였으나 시간에 따라 영하로 떨어진 곳도 있었다.
대회가 열린 샤모니는 97년전 제1회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곳. 매년 8월말이면 인구 1만명의 이 산간 마을에 주민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 7개의 산악 마라톤이 한 주 동안 열리기 때문이다. UTMB는 7개 대회중에서 개인전으로는 가장 긴 거리다.
샨 리씨는 울트라 마라톤에서도 기록의 사나이로 알려져 있다. 100마일 산길을 25시간 반에 주파한 기록이 있다. 기록에 의미를 두지 않았던 이번 대회에서도 30시간대를 넘기지 않았다. 2,300명 출발에 800여명은 중도 탈락한 이 대회에서 중간 이내의 성적으로 골인했다.
부상으로 뻐쩡다리가 되어 내리막에서는 무릎을 굽힐 수 없었던 리처드 리씨도 46시간 26분여 만에 완주에 성공했다. 컷 오프 3분20여초 전, 기록상 그보다 뒤진 사람은 38명이었다. 골인할 때 그만큼 더 큰 박수가 쏟아졌다. “완주 후 성취감이 그동안의 모든 고생을 날려버릴 만큼 컸다”고 그는 전한다.
왜 산악 마라톤과 같은 운동에 도전하는 걸까. 달리는 순간에는 달리는 것만 남게 될 것이다. 급경사를 오를 때는 가쁜 숨을 고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극한을 통해 본질과 만나게 되는 스포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회 나들이에는 부부가 동반했다. 대회 후에는 1주일여 남부 프랑스 관광을 즐겼다. 운동 잘하는 남편을 둔 덕에 답답한 때 알프스 산바람을 쐴 수 있었던 부인들에게도 즐거운 여행이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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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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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동네에서 하기를 바란다.이렇게 돌아다니는 인간들이 세상을 오염시키고 더럽히는 겁니다. 나만 스트레스 해소하려고 하는 이기심도 자제하고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