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 아직은 8월입니다. 8월의 꼬리를 물고 상큼한 바람 속에 묻어있는 국화꽃 향기가 황금 들녘의 풍요로움과 함께 산등성이부터 그렇게 9월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이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있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함과 쪽빛 하늘은 우리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입니다. 무심히 걸어온 길이었습니다. 태권도를 통해서 시작된 암 퇴치 기금모금 행사가 많은 분들의 관심과 애정 속에 어느새 29주년을 맞이했고 골프대회도 23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가난과 고통 속에 살아온 인생의 황혼에서 찾아온 암과의 사투 끝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을 비통해 하며 아픔과 죽음의 길목에서 고통 받는 분들을 위해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어보자는 생각에 40대 초반의 젊은 패기 하나로 무모하게 시작한 기금모금 행사가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험한 길도 있었습니다. 어느 땐 지루하고 쓸쓸한 길이기도 했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몇 번이고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어차피 힘든 일이 될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처음의 취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려고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허무의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걷다가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나이쯤 돼서야 빨리 걷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천천히 멀리 걷는 지혜를 조금이나마 터득했습니다.
힘들 때마다 나에게 힘이 되는 구호가 있습니다. '안되면 되게 하라.' 3년간의 특전사령부 복무 시 가슴에 새겨놓은 구호입니다. 살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 어둠속에서 혼자 되뇌이며 마음을 잡았습니다.
히말라야 정상에 오르는 산악인들이 고산병으로 괴로울 때 진통제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좋은 생각과 함께 긍정적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힘들다' '괴롭다' '두렵다' '짜증난다' 같은 부정적 생각을 하면 머리가 더 아파지지만 '괜찮다' '할 수 있다' '버틸 만하다' 같은 긍정적 생각을 하면 한결 나아진다고 합니다.
나쁜 생각은 좋은 생각보다 더 많은 산소와 에너지를 소비함으로써 체력을 저하시키고 고통을 만들어낸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금년 암 퇴치 기금모금 골프대회 행사에도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이민자인 우리도 이 사회를 위해 동참하며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노력의 결실이 엿보였습니다. 이번 행사의 참석자 중에는 30%가 넘게 미국인이 차지하여 이 행사가 한국인만의 모임이 아닌 지역사회의 작은 행사로 발돋움 되어가는 현상에 매우 기뻤습니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변함없이 동행해준 친구들, 그리고 선후배와 지인들, 멀리는 뉴욕에서 5시간의 장거리 운전을 마다하지 않고 함께 해준 원수(?) 같은 친구도 있습니다.
해마다 내 일 보다 더 큰 관심을 가지고 행사의 진행을 맡아준 친구들, 도장의 어린 관원들의 참여와 함께 일면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문광고를 보고 생명을 지키는 일에 동참하여 주신 동포 여러분은 행사의 결정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도 여럿이 힘을 합치면 큰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누구라도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해 떠돌게 됩니다. 그 길이 언제나 평탄한 길일 수만은 없지만 험하고 힘든 길이라고 하더라도 그냥 머물거나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되돌아 갈수 없는 인생의 길 위에서 혼자 통곡하며 울기보다는 때로는 웃으면서 때로는 울면서 함께 걷고 싶습니다.
맑은 날에도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에도 앞만 보고 걸어왔고 내가 걸어보지 못한 다른 길에 대해 때로는 미련을 가져보기도 하였지만 내 능력에 비해 지금까지 세상에서 받은 행운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이 길을 계속 가겠습니다.
무엇이 내 앞에 있다는 것을 기대한다는 것, 그리고 아직은 해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그것이 내 앞의 인생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길의 걸음걸음마다 그 과정을 즐기고 감사하고 싶습니다.
창피하고 부끄럽지만 남편의 길을 위해 30년의 긴 시간을 불평 한 번 없이 행사 때마다 식단을 책임져준 아내에게 처음으로 솔직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함께해준 소중한 사랑은 생명을 지키는 밑거름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
최응길 / US태권도 마샬 아트 아카데미 관장, VA>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