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내 나름대로 미국분, 미국인, 미국놈을 분류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복중에 복은 인복이라한다. 난 인복이 많아 그분들은 든든한 빽이 되어준다. 세월이 흘러 어떤 분은 다시 뵐 수 없어도 고맙고 멋진 미국분이 대부분이다. 그분들이 내내 건강하셔서 오래도록 만나고싶다. 또한 나도 누구에겐가 몇몇에게는 미국분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아니면 그냥 미국인이어도 괜찮고 혹시라도 나를 미국놈으로 기억한다면 용서를 구하고 꼬옥 만나서 풀어 미국인이라도 되고싶다.
베로니카 자매님 잘지냈지요? 칠십이 넘었으니 아마 마지막 휴가일거야! 다음엔 사모님 옆자리로 다시 올거라며 아르헨티나로 돌아가기전에 만나자고 하신다. 나의 미국분 1순위는 성당에서 만난 박용득 아저씨다.
아들 셋을 의사와 군인으로 잘 키우고 그만 사모님을 먼저 보내고 좋은 집, 좋은 차, 안락한 생활을 훌훌 뒤로 하고 로마에서 사제교육을 받고 처음 이민 오셨던 아르헨티나에서 수사님이 되어 치과 일도 하며 한인노인들을 위해 사신다. 몇년전 남미여행때는 계시는 수도원에서 주교님, 신부님, 커다란 개와 함께 먹고 자는 영광을 주고 지금도 항상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신다. 본인은 봉사로 하는 기쁜 삶이라지만 남이 보기엔 거지동냥 하는거라고 하시는데 마음이 아팠다. 차도 없이 타박타박 걸어다니며 기부를 받는 낡은 신발을 보았다. SAS신발과 운동화와 공구를 보내드렸지만 한동안은 물건을 살 때마다 이 돈이면--- 하면서 함부로 살 수가 없었다.
텃밭농사가 처음인 우리가 푹 파인 고랑에다 온갖 과일과 야채를 촘촘히 심고 물도 안주고 소쿠리만 들고 다니는 우릴 기초부터 가르쳐준 농사법을 해마다 떠올리며 이젠 잘 키운다고 한번 오시길 바랬는데 정말 꿈같이 며칠 전 전화가 왔다.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내내 건강하시길 기도드린다.
나이 들어 이민 온 우리에게 미국생활의 기초를 알려주며 부끄러움없이 뵐 때마다 질문을 하는 나의 억망인 영어발음도 고쳐주셔서 맥도날드에서 커피대신 콜라가 나오는 일이 없도록 해주고, 올베이 듬뿍 뿌린 미국식 크랩 맛, 따님 결혼식에 초대해서 파티에 간다면 돈보다 하루종일 시간을 내야하는 제대로 된 미국문화를 알려주시고, 세계은행에서 노래를 제일 잘 하셨던 사모님과 함께하며 이젠 은퇴하신 이O화 선생님은 가끔씩 어긋나는 갈비뼈를 달래며 살살 골프도 치고 노인센터에서 고스톱이랑 카드도 하시며 아들 딸네로 다녀오신다.
나의 영원한 윤지현 부제님은 포토맥 성당에서 오랫동안 봉사하시다가 지금은 사모님만 혼자 남으셔서 부제님의 뜻을 따라 틈틈이 기부하시는 모습을 기사를 통해 뵙는다
이제는 따뜻한 서부로 가신 문O길 선생님은 여전히 온화하고 멋지다는 걸 글을 통해 만나며 오래전 서울대동창회에서 받아서 주신 조수미 CD를 착각이지만 나를 예뻐해서 특별히 주신거라 자랑하며 아직도 간직하고 있고 무척이나 친하고 싶었다는 걸 그분은 아실까?
버지니아 한사랑학교에서 남편에게 여러가지 미국기술자 자격증을 따게 해준 선생님들 덕에 공무원으로 자리잡고 내 생각으로는 부자가 된 남편은 이제는 기쁜마음으로 실기교사로 봉사하는 기쁨을 알게 해주었다. 그분들은 남편에겐 영원한 미국분이다.
그런데 나에게도 미국놈이 처음으로 2016년에 생겼다. 그 당시에 대놓고 미국인의 민낯을 보여준 트럼프를 은근히 괜찮다던 남편과 그나마 교양이 조금있던 나는 투표장에 가서도 어떤 미국인을 찍을지 망설였다. 그의 얼굴을 보면 깜짝깜짝 놀래며 저놈이 이번엔 어떤 일을 벌일까 불안했다. 코로라19때는 대놓고 마스크를 안써서 매일 천명이 넘게 죽이다가 나까지 걸리게하고, 경제는 곤두박질시키고, 미국을 양아치같은 3류로 만들었다고 나쁜놈이라고 욕을 하고 지냈고 지금도 불안하다.
정말 싫지만 미국놈이 또하나 생기고 말았다. 2년전 친구 아들 결혼식 가는 길에 아주 소소한 접촉사고가 있었다. 밀려서 살살 가는 내 차를 살짝 뒤에서 박은 4중추돌이 있었고 경찰이 준 경위서를 나누고 헤어진 뒤 2년이 지나 그 집 애기 돌반지를 보낸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내 앞 운전자가 클레임을 걸었다고 한다. 지날 6월에는 증인신문을 하러 4명의 변호사가 온라인으로 만나서 하루종일 진을 빼고나니 욕이 저절로 나왔다. 한국과 미국을 통털어 과속티켓만 5장뿐이고 그 흔한 접촉사고도 없이 안전운전하던 나는 마구마구 화가 나서 그러니 인종차별을 받는다고 내앞의 까만 나쁜 미국놈을 욕하고 있다.
욕먹으면 오래산다니 더이상의 욕은 말아야겠고 그동안 욕먹은 만큼만 살고, 혹시라도 어쩌다가 개과천선하길 바라지만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듯이 사람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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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희 /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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