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거 좋아하면서 하자”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도쿄 올림픽에서 양궁 3관왕이 된 안산(20) 선수가 경기 후 차분한 어조로 한 말이다. 메달 중압감에 짓눌려서, 평소 좋아하는 활쏘기를 즐기지도 못하며 하고 싶지는 않다는 말로 들린다. 금메달을 단번에 세 개나 거머쥐며 양궁계의 산으로 우뚝 선 그는 대회 내내 “후회 없이 시합을 즐기자”는 생각이었다고 덧붙였다. 소셜미디어에 올린 그의 신조는 “좋아하는 거 좋아하면서 살자”이다.
양궁 2관왕이자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된 김제덕(17) 선수 역시 ‘즐기는 양궁’을 이야기했다. 그는 도쿄 하늘이 무너져라 외쳐댄 “파이팅!”으로 메달 획득 이전부터 눈길을 끌었다. 이겨도 져도 “파이팅을 외치면서 경기의 흐름을 즐기자”는 자세로 경기에 임했다고 말했다.
그는 올림픽 출전에 앞서 마음 다스리는 법을 써놓고 자주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우승의) 욕심을 갖자, 욕심에 앞서 자신을 믿자, 자신을 믿기보다 즐기면서 쏘자”이다.
한국 양궁 대표팀의 남녀 막내들이 모두 올림픽이라는 막중한 대회에서 즐김을 이야기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산전수전 겪은 노장들도 경기 직전에는 긴장감으로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새내기 선수들은 어떻게 어린 나이에 대범하게도 즐기는 경지에 오른 것인가. 구김살 없이 자란 한국 젊은 세대의 여유로운 문화인가 싶기도 하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는 공자의 말이 떠오른다. 배워서 알고 난 후에야 좋아하게도 되고, 좋아하고 나서 깊이 익히며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즐기게도 된다는 이치이다. 즐긴다는 것은 그 분야에서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즐김을 최고봉의 수준으로 본다면 앎에서 즐김까지의 거리는 1만 시간이라는 것이 서양과학의 계산이다. 신경과학자인 대니얼 레비틴은 어느 분야에서든 세계수준의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는 내놓았다. 그 정도의 노력 후에야 뇌가 최적의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로 널리 알려진 1만 시간의 법칙이다.
운동선수, 피아니스트, 체스 선수 혹은 숙달된 범죄자 등을 대상으로 연구를 거듭할수록 확인되는 수치는 1만 시간이라고 레비틴 박사는 말한다. 이는 하루 세 시간, 주 20시간 씩 꼬박 10년 동안 연습하는 분량. 천재, 모차르트가 어려서부터 협주곡을 작곡했지만 전문가들이 걸작으로 평가하는 것은 21살 때 작곡한 피아노협주곡 9번부터이다. 작곡 시작한 지 10년이 된 시점이다.
한국에서 양궁 신동으로 불려온 김제덕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활을 잡았다. 장난이 심해 양궁장에 가서 차분함을 좀 배우라고 체육교사가 권했다는데,초반부터 집중력이 범상치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잘 못했다. 노력하면서 재미 붙여가면서 차근차근” 발전했다고 그 자신은 말한다. 옆에서 지켜본 코치들은 ‘지독한 연습광’이라고 그를 평가한다. 엄청난 연습량에 더해 너무 패기 있고 대담하게 경기를 해서 섬뜩할 정도라고 한다.
그는 지금 마음 편한 상황이 아니다. 6살 때 어머니를 여읜 후 할머니 손에 자랐는데,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고 아버지는 지난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 와중에 올림픽에 출전하고 2관왕까지 되었으니 ‘강심장’이라는 말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안산 역시 초등학교 3학년 때 양궁을 처음 접했다. 학교에 양궁부가 생기면서 치킨과 유니폼을 나눠준다고 해서 호기심에 가봤다고 한다. 처음에는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는데, 광주체육중학교로 진학해 매일 700발의 화살을 쏘며 연습에 매진하자 실력이 일취월장 빛을 발했다고 한다. 연습량에 더해진 것은 강한 정신력. 승패가 갈리는 숨 막히는 순간에도 그의 심장박동은 평소보다 약간 빠른 정도로 평온해서 ‘강철 멘탈’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어느 분야든 재능은 기본이다. 재능이 있어야 재미가 붙고 재미가 있어야 훈련을 견딘다. 매번 올림픽 끝나고 나면 많은 어린이들이 스포츠에 관심을 갖는다. 많은 수는 재능을 발견하고 좋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중 75%는 13세 이전에 그만둔다. 싫증이 나서, 연습이 힘들어서 … 끈기와 의지의 문제이다. 그리고 나면 끈질긴 집념과 승부욕. 집중력 등 정신력이 승자를 걸러낸다. 이 모든 단계를 거친 후 찾아드는 것이 즐김의 경지일 것이다.
네덜란드의 문명사가 요한 호이징하는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호모 사피엔스), 제작하는 존재(호모 파베르), 놀이를 즐기는 존재(호모 루덴스)의 3가지 특성으로 정리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으로 그는 놀이 본성을 꼽았다. 일하며 먹고 사는 데 급급해 우리가 잊어버린 본성이다.
이제 올림픽은 끝나고, 우리는 스스로의 즐김을 찾아야 하겠다.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여유를 가진 자야말로 인생의 메달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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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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