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에서도 드물게 갯벌이 흔한 나라다. 서남해안 곳곳에 넓디 넓은 진흙 밭이 펼쳐져 있다. 한 때 이곳은 쓸모 없는 버려진 땅으로 인식된 적이 있었다. 한 번 들어가면 발이 빠져 걷기도 힘들고 건물을 짓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다.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갯벌의 중요성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지구의 ¾이 바다지만 갯벌은 아무데서나 볼 수 없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경사가 완만한데다 퇴적물을 실어나르는 강이 많아야 한다. 갯벌이란 결국 강에서 흘러온 토사가 쌓여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서남해안은 갯벌이 만들어지기에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곳이 미국과 캐나다 동부, 북해 연안과 아마존 하구와 함께 세계 5대 갯벌의 하나로 불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며 이루어진 이곳은 영양분이 풍부해 생명 다양성이 큰 곳이다. 얼핏 황량하게 보이는 이곳에 수많은 미생물과 갯지렁이, 게 등 생명체가 살고 있다. 전문가들은 갯벌이 농경지보다 3배에서 20배까지 생산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하천을 거쳐 흘러 들어온 오염 물질을 정화하는데도 탁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0평방 킬로미터의 갯벌은 10만 명 거주 도시의 수질 정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또 홍수와 태풍의 피해를 줄이는 역할도 한다. 갯벌의 흙과 모래는 수분을 흡수했다 서서히 배출하며 이곳에 살고 있는 해초들은 강풍과 해일의 힘을 약화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갯벌은 또 지구의 허파 노릇도 하고 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산소의 70%는 숲이 아니라 바다에서 만들어지는데 이곳에 살고 있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갯벌에는 1그램당 수억 마리의 플랑크톤이 살고 있다.
이들은 또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돼 갯벌의 생명 다양성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남 신안 갯벌에는 멸종 위기 희귀종 14종을 비롯 90종의 물새가 살고 있다. 이곳에는 한국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갯벌 생태 교육 공간인 갯벌 센터가 있고 인근에는 갯벌 위에 설치된 나무 다리를 걸어다니며 생태계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짱뚱어 다리’도 있다. 짱뚱어란 갯벌에서 사는 물고기로 바다에 살던 생명체가 뭍으로 올라오는 중간 단계의 모습을 갖고 있다.
이 신안 갯벌과 전남 보성, 순천, 전북 고창, 충남 서천의 갯벌들이 지난 주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국은 문화 유산은 석굴암과 불국사, 8만 대장경, 종묘, 창덕궁, 수원 화성, 경주 역사 지구,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조선 왕릉, 하회와 양동의 역사 마을, 남한 산성, 백제 역사 지구, 산사, 서원 등 많지만 자연 유산은 제주도와 이번에 등재된 서남해안의 갯벌 둘뿐이다. 이들 갯벌에는 황새와 흑두루미 등 희귀종 2,150종이 살고 있다.
유네스코가 보존할 가치가 있는 자연과 문화 유산을 지정하기 시작한 것은 이집트의 아스완 댐 건설이 계기가 됐다. 1954년 이집트가 이 댐을 짓기로 해 나일 강변에 있는 고대 이집트 유적지가 물에 잠기게 됐다. 이집트 정부가 도움을 요청하자 유네스코는 발굴에 들어가 수백개의 유적지를 발굴했으며 이 중 중요한 것은 수몰 지역에서 이주시켰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부 심벨 신전이다.
이와 함께 세계 자연 문화 유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인도 모헨조다로 등 유적지 보존 작업이 시작됐으며 1972년 세계 유산 위원회가 구성돼 매년 보존할 가치가 있는 세계 자연 문화 유산을 지정하고 있다. 그 결과 지금까지 800여개의 문화 유산과 200여개의 자연 유산이 등재됐다.
가장 많은 유산을 가진 나라는 이탈리아(58), 중국(56), 독일(51), 프랑스와 스페인(49) 등이며 한국은 15개를 갖고 있다. 이번 한국 갯벌의 세계 자연 유산 등재는 한국의 환경 보호 노력과 함께 한국이 생태계의 보고임을 세계가 인정했다는 점에서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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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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