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것 중 하나는 남가주에는 강이 없다는 것이다. 강변 찻집, 이런 한적한 이름을 들은 적이 없는 듯 하다. LA 강이 없는 것은 아니나 바닥이 시멘트로 발라져 있다. 홍수에 대비한 수로 이상의 의미가 없다. 강의 다양한 표정들, 강이 있으므로 가능한 정서를 찾기 어려운 곳이 남가주라고 할 수 있다.
강이 없는 LA의 현실적인 어려움은 식수와 생활용수 확보에 있다. 지하수를 파지 않는 한 물이 나올 데가 없다. 알려진 대로 LA의 식수원은 이스턴 시에라의 오웬스 밸리와 콜로라도 강, 이 두 곳이다.
오웬스 밸리는 LA북쪽으로 395번을 타고 가면 펼쳐 진다. 비숍, 론 파인, 인디펜던스 등이 알려진 인구 밀집지다. 오웬스 레익이라는 지명은 있으나 밸리 어디를 둘러 봐도 물을 찾기 힘들다. 산에서 내려 오던 이스턴 시에라의 눈 녹은 물은 호수에 닿기 전에 모두 LA로 빠져 나간다. 이름만의 호수가 남는 것이다.
오웬스 밸리 4분의 1은 LA시 수도전력국(DWP)이 땅 주인이다. LA는 수자원 확보를 위해 120여년 전부터 이 일대의 땅을 비밀리에 집중 매입했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목장주나 농장주인 것처럼 가장했다고 한다. 이렇게 확보된 물은 240마일의 송수로를 통해 LA로 빼간다. 이 때문에 만성적인 물부족을 겪는 오웬스 밸리와 LA의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인요 카운티 당국은 한 때 LADWP 소유 땅을 환수하기 위해 강제 수용령 발동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스턴 시에라의 물만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LA가 급팽창하자 콜로라도 강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강물을 끌어들이기 위한 공사가 시작됐다. 파커 댐 위쪽에서 퍼 올려진 콜로라도 강물은 산을 뚫고, 사막을 건너 리버사이드의 저수지(레익 매튜스)에 이른다. 240여 마일의 터널과 송수관 시설은 대공황 때 이뤄진 남가주 최대의 토목공사였다. 이렇게 모아진 물이 LA와 글렌데일, 베벌리힐스와 태평양 연안의 샌타모니카까지, 남쪽으로는 오렌지카운티의 풀러튼과 애나하임 등에도 공급되고 있다.
지난 주 보트를 타고 콜로라도 강을 여행하는 일정이 있었다. ‘폭염으로 바다생물 떼 죽음’ ‘산불 최소 80곳… 소방관 순직’. 이런 으스스한 제목들이 날씨를 전했다. 모하비 사막 가운데를 흐르는 강을 찾기에는 좋지 않은 때였다. 쏟아지는 땡볕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지만 콜로라도 강을 따라 거슬러 오른다는 것은 드문 기회였다.
해발 3,100미터, 로키 산맥의 라 푸드리 패스에서 시작되는 콜로라도 강은 콜로라도, 네바다,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주경계를 지나 바하 멕시코의 캘리포니아 만으로 흘러가는 국제하천이다. 길이1,450마일에 그린 리버 등 16개의 지류가 인근의 물을 모아 합류한다. 콜로라도 강물의 85~90%는 로키 산군의 눈 녹은 물이라고 한다. 결국 시에라네바다와 로키 산맥의 스노우 팩이 남가주 주민들의 식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콜로라도 강이 없었다면 라스베가스는 태어날 수 없었다고 하지만 콜로라도는 한강, 센 강, 다뉴브 강처럼 큰 도시를 끼고 흐르거나 비옥한 평야를 펼쳐 보이는 강은 아니다. 대신 거친 고원과 협곡, 황야와 사막을 흐르며 거대 산맥이 태평양의 습기를 막아선 건조한 땅에 생명줄 역할을 하고 있다.
콜로라도는 15개의 댐으로 관리되고 있다. 강의 일부는 거대 호수가 되기도 한다. 글렌 캐년 댐으로 레이크 파웰, 후버 댐 위는 레이크 미드, 파커 댐 위에는 하바수 레익이 각각 형성됐다. 멕시코 국경을 넘은 콜로라도 강은 1960년대 후에는 바다로 유입되는 수량이 거의 없다. 남은 강물은 모두 농업용수로 빼쓰기 때문이다.
생활하수나 폐수의 유입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콜로라도 강은 청정했다. 간단한 정수과정을 거치면 바로 식수로 사용 가능하다고 한다. 애리조나의 파커 댐 아래부터, 네바다 접경의 높이 221미터 후버 댐에 이르기까지 보트로 거슬러 오른 강은 어디나 할 것 없이 바닥이 비칠 정도로 맑았다.
가뭄은 날씨만큼 심각했다. RV를 타고 레이크 미드 호숫가로 내려가면 미처 업데이트 되지 않은 내비게이션에는 수중을 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전에는 수면 아래였다는 뜻이다. ‘서부 최악의 가뭄…미드 호 사상 최저수위’ ‘현재 담수량 최대 저수량의 36%’라는 보도가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강의 일부 구간은 보트를 타고 오는 게 아니었다는 후회가 될 정도로 물이 빠져 있었다. 보트 엔진을 위로 들어 올렸는데도 스크류가 바닥의 돌을 칠 정도로 수심이 얕았다. 이런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인간에 의해 순치되기는 했으나 콜로라도는 하류도 여전히 야성의 강이었다. 강물에 이는 풍랑 때문에 배를 돌리기도 했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번개가 치고 굵은 빗방울이 강물 위에 떨어지기도 했다. 뜨겁던 강바람은 협곡 하나를 돌면 냉풍으로 돌변했다.
콜로라도 강변은 정치적으로는 트럼프였다. 강변의 저택에는 심심치 않게 트럼프 깃발이 나부끼고 바이든의 앞에는 F워드를 붙여 놓기도 했다. 정치적 단층은 콜로라도 강이라고 비껴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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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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